지난달 30일 아침 출근길 서울 여의도 인도에서 최우리 기자가 시각장애 보행 체험을 하고 있다. 안대를 하고 흰 지팡이를 짚으며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을 따라 걷던 최 기자가 점자블록에서 벗어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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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ㅣ 커버스토리] 후천적 시각장애인으로 살기
“25년 전 고향 울진으로 가며7번 국도에서 바라본 바다
그 그리운 코발트빛 바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고파요
재활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시각장애인 중 전맹은 5% 불과
후천적 발생 경우가 90.3%다
안압 상승으로 인한 녹내장과
당뇨망막증·황반변성등 질환이
50대 이후 급격히 늘고 있다 “최대한 도수를 높인 안경을 끼었지만, 이 모든 것들의 세부를 이제 나는 보지 못합니다. 형상과 동작들은 덩어리로 뭉개어져 있고, 디테일은 오직 상상의 힘으로만 선명합니다.” 한강의 소설 <희랍어 시간>의 남자주인공은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자신이 보는 세상을 그렇게 소개했다. 세상을 “찬란한 것, 어슴푸레하게 밝은 것, 그늘진 것”으로만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 사회는 이들을 시각장애인이라 부른다. 시력이 소실되거나 시야가 결손된 이들이다. 보건복지부가 펴낸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시각장애인은 전국에서 28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그중 남자가 16만8000명, 여자는 11만7000명이다. 정부는 시각장애인을 1~6급으로 등급을 나눠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양쪽 교정시력을 기준해 판단하지만 한쪽 눈이 완전히 실명한 경우(나쁜 눈의 교정시력이 0.02 이하)도 시각장애인(6급)에 포함한다. 양안의 교정시력이 0.02 이하면 맹, 0.02~0.04이면 준맹, 0.04~0.8이면 약시로 분류한다. 시각장애인 중 전맹인 사람은 약 5%로 소수다.
시각 장애인이 읽는 점자입니다. 검은색이 볼록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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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책을 읽는 시각장애인의 손. 점자는 집게손가락 첫째 마디 중간 부분으로 읽는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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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은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한 경우와 자라면서 볼 수 없게 된 경우로 구분된다. 후천적으로 발생한 경우가 90.3%로 대부분이다. 절반 이상이 질환, 그중에서도 눈 질환인 이유가 가장 많다. 대한안과의사회는 안압이 상승해 시신경을 누르는 녹내장과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망막의 미세혈관이 손상되는 당뇨망막증, 망막의 일부분인 황반이 손상되는 연령 관련 황반변성에 따른 시신경 장애를 대표 원인으로 꼽았다. 발생률은 연령과 비례했다. 특히 50살 이후 남녀 모두 급격히 늘어난다. 사물을 선명하게 볼 수 없음이 나이 앞에 장사 없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현상이라면, 어느 순간 시각장애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빛과 소리와 온도로 소통하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궁금했다. 정안인인 기자가 직접 안대를 하고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되어보기로 했다. 보행, 점자와 컴퓨터학습, 화면해설드라마 시청취(시각장애인은 시청과 청취를 동시에 한다) 등을 체험했다. 짧은 시간 경험한 간접체험만으로 장애를 기사로 쓴다는 것이 ‘오만’이라 생각했으나, 시각장애인들이 사는 세상의 소통법을 정안인들과 나누고픈 욕심이 앞섰다. 시각장애인과의 인터뷰로 짧은 체험을 보충했다. 지난달 30일 아침 8시45분. 서울 여의도 출근길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길이 125㎝의 4단으로 접히는 성인용 흰지팡이를 들고 인도로 나섰다. 안대를 착용하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온몸을 통과하는 바람이었다. 사색에 잠길 새가 없었다. 의지로 앞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두려움에 정신이 압도당했다. 온 신경이 두 귀와 다리 끝에 집중되는 기분이었다. “딱. 딱.” 어깨너비로 발 앞 왼쪽과 오른쪽을 지팡이로 짚으며 걷는 것이 시각장애인 보행법이다. 서울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 앞길은 열번은 넘게 걸어본 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평정심은 쉽게 무너졌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겨우 20m를 갈지자 보행을 했다. 바로 대리석 볼라드에 지팡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났다. “횡단보도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최우선이니 걱정하지 말고 건너세요.” 보행체험을 지도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재활지원센터 박승만씨가 말했지만 불안감은 계속됐다. 버스로 추정되는 큰 차의 엔진소리가 왼쪽에서 가깝게 나는 것 같은데, 정확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오른쪽 인도에서 사납게 개 짖는 소리가 났다. 평소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개의 크기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갑자기 사납게 짖으며 달려오면 공포감을 느낀다. 놀라서 지팡이를 땅에 떨어뜨렸다. 박씨가 말했다. “항상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데, 쉽지 않죠.” 점자블록을 따라 걸었다. 블록을 발바닥의 촉감으로만 찾기는 쉽지 않았다. 얇은 고무창 바닥의 컨버스화였는데도 블록을 따라 직진보행을 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좌충우돌이었다. 가로수에 부딪히고 풀숲으로 빠졌다. 카페 앞 등불, 샌드위치 가게가 세워둔 메뉴판에 부딪혔다. 한번은 15㎝ 아래 차도로 떨어져서 무릎이 꺾였고, 북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보란듯이 서쪽 방향이었다. 실없는 웃음이 자꾸 새나왔다. 민망했다. 자존감이 떨어졌다. P자 모양으로 500m가량의 인도를 돌아오는 데만 총 30분. 정안인이라면 10분 안에 걸을 거리였다. 본다. 시각장애인들도 세상을 본다. 다만 눈 대신 머리로 본다. 시각 대신 청각과 촉각 등 다른 감각으로 정보를 얻는다. 청각과 촉각은 시각에 비해 매우 비능률적이고 불완전한 감각기관이다. 시각이 전체를 지각한 뒤 부분과 부분,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지각해간다면, 청각과 촉각의 지각 과정은 부분들을 검토한 뒤 전체로 통합한다. 안대를 하고 걸어보니 청각과 촉각만으로 얻은 정보의 종합은 안대를 벗고 눈으로 확인한 현실과 전혀 달랐다. 보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80%가 혼자 일상생활…93.9%는 점자 못 읽어
이미 한번 시각정보로 세상을 개념화해본 적 있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은 그래서 선천적 시각장애인과 또 다르다. 선천적 시각장애인과 달리 색깔을 알고 공간지각력이 있지만, 시각장애를 자신의 일부로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소리(청각)와 점자(촉각)로만 세상을 보는 훈련을 다시 하는 데 더 느릴 수밖에 없다. 훈련 시간이 필요하다. 어릴 때 실명할수록 충격이 덜하다는 연구 결과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더 사회적으로 내성적이고 수동적일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훈련은 힘들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의존하는 감각은 청각이다. 정안인이 눈으로 집중한다면 시각장애인들은 귀로 집중한다. 시각장애인은 컴퓨터를 할 때 화면을 읽어주는 시각장애인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화면 왼쪽 위에서부터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그림을 뺀 모든 텍스트를 소리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인터넷은 접근성이 나쁘지는 않지만 정보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시각장애인은 이용하기에 불편하다. 연관검색어, 북마크, 검색창, 웹사이트, 언론보도검색, 사진, 동영상 순서대로 다 읽으려면 한참이 걸린다. 가만히 소리를 듣다가 원하는 정보가 들리면 그때 엔터키를 친다. 한글파일에서 문서를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 프로그램이 문자표에서 골뱅이, 별표, 까만 동그라미 표시는 물론 한자의 훈과 음까지 읽어주면 소리를 듣고 고른다. 마우스를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소프트웨어마다 단축키가 다른데, 자주 쓰는 키는 외울 때까지 익히는 수밖에 없다.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시각장애인의 컴퓨터 이용률은 31.2%, 인터넷은 31%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의 자료를 보면 웹접근성 점수는 평균 50점대 안팎으로 낮다. 소리로 읽어주는 정보를 좀더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는 점자를 아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93.9%가 점자해독능력이 없다고 답했다. 어려서부터 맹학교를 다닌 선천적 시각장애인들도 학습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게다가 안 쓰면 자주 까먹는 점자를 성인이 돼서 배우기란 쉽지 않다. 작은 동그라미 6개가 서로 올록볼록하며 한글을 표현하는 점자는 자음 14개(자음 ㅇ은 적지 않음), 받침 14개, 모음 21개다. 문장부호, 숫자, 외국어 모두 점자가 또 다르다. 점자란 시각장애인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보이는 글자다. 정안인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 힘든 과정을 반복하는 시각장애인의 다른 감각기관이 발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영화 <블라인드>에 나오는 시각장애인 주인공은 목소리 높이로 사람의 키를, 울림으로 체형을, 느낌으로 나이를 짐작했다. 보행 체험 당시에도 청각과 촉각이 예민해지고 기억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순간 머리 위를 나뭇잎이 스쳤고, 그때 자전거 페달 소리가 오른쪽에서 났다는 정보가 각인됐다. 정안인이라면 그냥 스쳐갈 정보지만 작은 정보가 소중한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더 주의깊게 듣고 기억한 것이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서울특별시립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홍은녀 지역사회팀장이 말했다. “활동보조인 교육 때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특출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해요. 정안인이 그렇듯 시각장애인들마다 다 정도가 달라요.” 시각장애인은 지체장애인에 비해 움직임이 자유롭다.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은 17.4%였다. 80% 이상의 시각장애인이 혼자 일상생활을 한다고 답했으며, 그중 61%가 집 밖에서의 생활이 거의 불편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활동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경우가 84.4%이지만 가족이 대부분이다. 안마뿐 아니라 컴퓨터, 악기, 체육 등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각장애인복지관은 전국에 13곳, 서울에 5곳이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곳에 모여 사회에 나가 정안인들과 소통하는 법을 ‘학습’한다. 의학적으로 회생이 불가능한 시각장애인이라도, 재활교육과 학습은 평생에 걸쳐 계속해야 하는 과제다. 천길만길 캄캄한 낭떠러지로 떨어져가는…
정안인을 위한 시각정보와 오락이 넘치는 시대, 시각장애인들도 화면을 해설해주는 영상물을 본다. 국내에서 10년 넘게 화면해설 영상물을 만들어온 황덕경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 센터장이 말했다. “티브이에서 배우가 말없이 고기를 굽는 영상을 보고 어느 시각장애인은 비 내리는 장면인 줄 알았대요. 화면해설로 영화를 본 시각장애인들이 제일 좋아한 건 정안인들이 웃고 울 때 우리도 웃고 울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화면해설 영상물을 듣고 정안인들이 관습적으로 하는 행동언어(제스처)를 보지는 못해도 학습하는 효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화면해설 영상물은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대사와 대사 사이, 정안인이 보는 영상 장면을 묘사하는 대본을 성우가 감정을 실어 읽어 믹싱해 완성한다. 방송사가 화면해설 방송을 제공하기 시작한 건 2005년. 시각장애인들이 시청취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낮시간대 화면해설 방송을 늘리는 것을 조건으로 낮시간대 방송을 부활시켰다. 대부분의 화면해설 드라마는 재방송이다. 믹싱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쪽대본이 나오는 우리나라 제작 현실상 본방 드라마가 화면해설인 경우는 거의 없다. 뉴스와 스포츠중계는 따로 화면해설을 제공하지 않는다. 정안인도 집에 있는 티브이 기능 중 음성다중채널을 선택하면 화면해설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영화는 1년에 10편 내외로 아직 많지 않다. 영상언어의 함축미를 시각장애인에게 들려줄 소리언어로 바꾸는 작업은 쉽지 않다. 스토리텔링만이 아니라 카메라 기법이 말하고자 하는 바까지 최대한 전달하려다 보니 ‘제2의 창작’과도 같았다. 황 센터장은 특히 대사나 표정이 없는 동물 다큐멘터리가 가장 표현하기 까다롭다고 했다. 지난달 16일 저녁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화면해설 영화 상영이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은 배우 이병헌이 궁인들의 도움을 받아 단장하며 시작하는 도입 부분을 성우의 말을 들으며 ‘봤다’. “먼저 종지에 기름을 붓고, 둥글게 뭉친 헝겊에 적셔, 살이 촘촘한 빗에 기름을 바른다. 그리고 왕의 머리카락을 정수리로 한데 쓸어 올려 단단히 묶는다. 옥으로 만든 손가락 길이만한 동곳을 꽂아 상투를 고정시킨 다음, 상투 묶은 끈을, 이마에 두른 망건 양쪽에 감는다.” 한국철도공사 부산경남본부 영업처에서 일하는 후천적 시각장애인 1급 황윤성(48)씨가 병원에서 시각장애 판정을 받았을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뛰어가다가 길이 갑자기 뚝 잘라져버려 천길만길 캄캄하고 알 수 없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져가는 느낌이랄까요. 아무리 허우적거려봐도 손에 잡히는 것 하나 없는 그런 공간에서 자꾸만 떨어지는 느낌이요.” 36살이던 2001년 안구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가 생긴 황씨는 장애 판정 이후에도 다니던 직장에서 계속 일을 하기 위해 “세상과 싸워야 했다”며 말을 이었다. “25년 전 집사람이랑 결혼 승낙을 받으러 고향인 (경북)울진으로 차를 타고 가고 있었어요. 눈을 뜨면요. 그 7번 국도에서 바라본 바다가 제일 보고 싶어요. 코발트빛 바다… 저와 같은 후천적 시각장애인들이 이 기사를 본다면 재활훈련을, 이전의 삶을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고 꼭 전해주세요.”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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