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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서울 관악구 서원동 장군봉 근린공원에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 진행하는 시각장애인 야구 경기가 열렸다. 시각장애인 타자 서동호씨가 자원봉사자 투수가 던진 공의 소리를 들으며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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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ㅣ 커버스토리]
삐삐삐삐~ 따악! 듣고 치고 뛰어라
국내 첫 시각장애인 야구팀 이야기
스포츠의 계절은 역시 가을이다. 몸을 움직이기에 가장 좋은 날씨다.
“오늘은 에스케이(SK)가 이길 것 같아.”
시각장애인 서동호(54)씨가 그날 있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3차전 롯데 자이언츠와 에스케이 와이번스의 경기를 그렇게 예상했다. 지난달 19일 아침 9시30분 서씨는 다른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서울 관악구 은천동의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1층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가을야구에 대한 저마다의 품평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계속됐다.
덜컹거리며 골목 비탈길을 오른 승합차가 내린 곳은 관악구 서원동의 장군봉13길. 차에서 내린 7명의 시각장애인과 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두셋씩 짝을 지었다. 몇몇 사람은 손에 야구 배트와 큰 가방을 들었다. 길옆으로 난 나무는 지난주보다 빨갛고 노란 빛깔 잎이 늘었고, 파란 하늘은 더 높아졌다. 야구 하기 딱 좋은, 그런 날씨였다.
“기자님, 오늘은 골덴 입으셨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니 따뜻하게 입어야 해요.” 서씨가 기자의 팔꿈치를 잡으면서 말했다. 서씨가 에스(S)자를 그리며 오르는 등산로도 벌써 두달째. 지난 9월부터 금요일 오전마다 야구를 했다. 목적지는 10분 정도 오르면 나오는 운동장. 평행봉, 축구골대 등 녹슨 체육시설 몇개와 조깅용 우레탄 트랙이 깔린 평범한 공터가 이들의 야구경기장이다.
“삐삐삐삐삐삐-”
시합 전 연습은 여느 야구장과 달랐다. 자원봉사자인 서울대학교 투수 추화성(24)씨가 하얀색 소프트볼에 박힌 심을 뽑자 공에서 소리가 났다.
“레디-셋-고!”
추씨가 투구 동작에 맞춰 구호를 외쳤다. 팔을 아래로 한 채 언더핸드로 던진 공이 5m를 날아 타자 서씨의 얼굴 옆을 지나쳤다. 알루미늄 방망이를 든 서씨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서씨 뒤에서 자원봉사자 포수 한양대학교 성현일(20)씨가 선 채로 공을 받았다.
“공이 조금 높았어요. 죄송해요.” 투수가 사과하자 타자는 괜찮다며 공의 위치를 다시 주문했다. 이번엔 가슴 높이로 몸 쪽에 붙어 왔다. 서씨가 좋아하는 공이었다. 긴장한 얼굴의 서씨가 또 한번 입을 삐쭉거렸다.
“딱~!”
공이 때구루루 굴러 투수 앞에서 멈췄다. 서씨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집중하는 듯 다음 공을 기다리는 서씨의 귀가 투수 쪽을 향했다. 다시 스윙. 이번엔 방망이가 공보다 빨랐다.
“스윙을 약간 천천히 해보세요. 제가 고, 라고 하면 이따가 치시면 됩니다.” 투수와 포수, 타자는 이후 여러차례 구속과 공 높이를 조율하며 타격 연습을 이어갔다. 서씨의 배트 타이밍과 추씨의 구속이 서로 맞아갈 무렵, 복지관 체육지도자 신동선(29)씨가 외쳤다. “플레이볼 할게요!”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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