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3 18:13
수정 : 2019.11.04 02:35
이은지
문학평론가
말기 암 환자가 개 구충제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효과를 보았다는 사례가 인터넷에 소개되면서 해당 의약품이 품절되는 사태까지 빚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의학전문가들은 해당 사례가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고 오히려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당장 뾰족한 수가 없는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약을 찾는 모양이다. 누리꾼들도 전문가들의 권고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해당 약이 위험하지 않은 근거를 나름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식약처의 권고가 사실은 부작용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수익성이 없는 약의 효능이 입증되는 것을 두려워해서고, 제약회사 역시 돈이 되는 약에만 비용을 투자해서라는 둥 추측성이지만 그럴듯한 주장들 또한 제기되고 있다. 뉴스를 보면서 나 또한 개 구충제를 먹는 환자분들을 응원하는 심정이 됐다. 음모론적이지만 나름의 논리를 갖춘 댓글들의 주장에 공감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의료체계를 직접 겪은 바 또한 있기 때문이다.
위중한 병을 앓는 환자이거나 그러한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본 사람은 환자가 된 순간부터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것이다. 일단 대형병원은 백화점이나 시장 못지않게 붐비고 혼잡하다. 대기실의 전광판에는 대기자 명단이 그야말로 빼곡하다. 당신은 1~6번 중 3번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것이다. 진료실로 들어가면 의사는 방금 나간 환자의 진찰보고서를 작성하기에 바쁘다. 공장식으로 운영되는 진료는 신속하기 그지없고 설명은 언제나 충분치 않다. 당신이 나가고 나면 의사는 당신의 진찰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다음 환자를 받는다.
이처럼 고도로 전문화되고 완벽하게 상업화된 병원에서 환자는 자신의 생명이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의사들은 전문화된 영역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환자는 단지 자신이 앓는 병이 심각하고 위중한 정도에 따라 돈을 지급할 따름이다. 심지어 중증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대형병원 대부분은 서울에 밀집해 있어 지방의 환자들은 서울로 올라오는 수고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몰인간적인 상황을 조금이라도 겪어보았다면 말기 암 환자들이 개 구충제를 먹는 것을 심정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의 도시이론가 앤디 메리필드는 <아마추어>에서 전문가 집단의 허와 실을 폭로한다. 그에 따르면 전문가들이란 “절대로 전문화된 영역의 안전지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 “소수만 아는 난해한 언어로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또한 아마추어 지식인이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한다면, 전문가 지식인은 “권력이 원하는 진실”을 말한다. 이 도식에 따르면 누리꾼들은 의학전문가 집단이 자본이 원하는 진실만을 말하고 있노라고 폭로하는 아마추어 지식인들인 셈이다.
전문가의 목소리를 거부함으로써 환자들은 오히려 제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됐다. 의학 지식에 관한 한 그들 또한 아마추어일 뿐이지만, 그들은 삶과 죽음의 접경지대에서 전문적 지식이 무화되는 것을 실존적으로 경험하였다. 자신의 운명과 스스로 대결하려는 그들의 결정이 전문적인지 아마추어적인지는 이 맥락에서는 부차적이다.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 또한 전문적 지식에 잠재한 권력 편향적이고 자본 친화적인 냄새를 감지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날것의 삶에 맞서는 인간의 존엄성 또한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감각은 전문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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