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7 17:08
수정 : 2019.10.28 13:28
홍진아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 대표
얼마 전 <한국방송>(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사표 쓰지 않는 여자들>에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신의 커리어를 지켜온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일하고 있고, 몇 없는 여성 관리자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들은 자신이 커리어를 쌓아온 과정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했던 노력, 남성 중심적인 조직 문화 안에서 차별과 편견에 맞서 커리어를 지켜나갔던 과정들이 공감을 일으켰다.
등장한 에피소드 중에 한가지 흥미로우면서도 화가 나는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은 큰 기업의 임원이 된 여성이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그의 영업 실적이 사내 1위였던 적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이지만, 동료들은 그가 ‘다른 능력’이 있어서 영업 실적을 올렸다고 수군댔다. 그는 ‘다른 능력’이 어떤 능력을 말하는 것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방송을 보던 나는 듣자마자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남성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영업의 세계에서 여성이 두각을 나타냈을 때, 그가 업무적으로 어떤 전략과 능력을 발휘했는지 평가되지 않는다. 대신 그럴 수 없는 일을 그렇게 만들어낼 수 있었을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이 소문이 된다. 왜 여성의 능력은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소문이 되는가.
옛날엔 일하는 여성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관점이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이런 일은 30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얼마 전, 유시민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서 <아주경제> 장용진 기자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취재하는 여성 기자를 가리켜 “그 기자를 좋아하는 검사들이 많아서 수사 내용을 많이 흘렸다” “검사가 다른 마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많이 친밀한 관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 사건을 기사로 접하고 눈을 의심했다. 사적인 자리에서 나누어도 부끄러울 말을 공적인 자리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게 정말 라이브로 나갔다고? 또한 이렇게까지 나쁜 방식으로 개인의 능력을 폄훼할 수 있다는 것에 화가 나고 또 절망했다. 그가 말한 ‘친밀한 관계’는 무엇인가. 남자 기자들은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가. 또 여기서 ‘다른 마음’이란 무엇인가. 이 사건을 바로 보는 데 필요하지 않은 추상적인 단어들로 듣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런 말들은 없어도 될 의미를 만들어낸다. 능력에 대한 평가가 소문이 되는 순간이다.
이쯤 되면 다시 한번 묻게 된다. 일하는 여성의 능력은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가. 우리 사회에 여성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관점이 존재하는가. 위의 기자가 쓴 단어들뿐 아니라 ‘독하다’ ‘나댄다’ ‘드세다’라는 단어 역시 일하는 여성에게 곧잘 붙는 수식어이다. 이 말들에는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없다. 다만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이미지에는 사회가 이미 만들어놓은 고정관념이 자리한다. 이것이 계속된다면, 아무리 개혁과 혁신을 외쳐도 앞으로 갈 수 없다.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직업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여성을 존중하고 성취를 축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면, 그냥 한마디 거들기 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들으면 귀를 의심하게 되는, 부끄러운 소문의 근원이 될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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