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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6 18:12 수정 : 2019.10.07 13:22

허승규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대표

지난 1일 경남 김해에서 30대 남성이 일가족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을 시도한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날 제주에서 4인 가족이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지난달 4일 대전의 아파트에서도 4인 가족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일가족 자살’ ‘생활고 자살’을 검색하면 무수한 언론 기사가 나온다.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 행태를 탓하기엔 우리의 현실이 만만치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도 한국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6.6명으로 전년보다 2.3명 늘었다. 자살은 10~30대 사망 원인 1위, 40~50대에서는 2위다. 어느 정도 먹고살기 괜찮은 나라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비교하면 2018년도 24.7명으로 회원국 평균 자살률 11.5명의 2배 이상이다. 보건복지부의 ‘2018 자살 실태조사’를 보면,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을 생각해본 사람들은 5년 전보다 많아졌다.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2013년 22.8%에서 2018년 18.5%로 줄었지만, 경제적 문제로 자살을 생각한 사람들은 같은 기간 28.5%에서 34.9%로 늘었다.

일가족 자살 문제는 전반적인 자살 문제에 더해 살펴볼 점이 있다. 먼저 ‘동반 자살’이 아닌 ‘가족 살해’를 인지해야 한다. 일가족 자살은 부모(주로 가장)가 자식을 먼저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의 책임이 아닌 명백한 살해 범죄다. 어린이 시민권에 관한 사회 인식과 복지제도의 개선, 가족주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여자와 남자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기르는 정상 가족 중심의 복지제도의 한계도 있다. 1인가구, 동성 부부, 한부모 가정, 홀몸어르신 등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그에 맞춘 복지제도를 확충해야 한다. 기본소득도 가족 중심 복지제도의 대안으로 고려해볼 수가 있다. 물론 일가족 자살 문제는 다양한 가족 구성권 인정, 어린이 시민권 강화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생활고 자살’이라는 말처럼, 먹고살아가는 일상 자체가 불안하고 위험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입시·취업·노동·주거·결혼·출생·교육·의료·노후 생애주기 전반에 자살 위험이 있다. 많은 시민이 자살의 원인과 해법을 안다. 그런데도 왜 한국은 수십년째, 오이시디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최상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시민들의 고충을 담아내는 정치의 역할은 어떤가?

민주화 이후 국정과제 최우선 순위가 생명 존중과 자살 예방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국민소득과 경제성장률 지표보다 삶의 질이나 행복 지표가 우선순위였던 적이 있었던가. 민주공화국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자살 예방과 생명 존중이 정치공동체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고, 이것을 말하는 정치가 있어야 한다. 서초동과 광화문의 촛불을 업은 정당들에 묻는다. 민생과 안보, 촛불이 있어야 하는 곳은 어디인가. 사법의 민주적 통제도 통제할 시민이 살아야 할 수 있다. 자살 문제가 국가 안보의 최대 위기다. 촛불이 향해야 할 곳은 광장을 넘어, 일가족이 자살하는 아파트 방구석이다. 가난한 부모를 만난 어린이 시민도 자신의 꿈과 행복한 삶을 그릴 수 있는 나라,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아갈 못난 부모 시민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정치의 역할이 있다. 자살 문제에 민감한 나라여야 한다. 정치가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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