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정치 활동가 나의 아버지의 성씨는 양천 허씨, 어머니의 성씨는 우계 이씨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성씨는 양천 허씨, 나의 아버지의 어머니의 성씨는 진성 이씨다. 나의 어머니의 아버지의 성씨는 우계 이씨,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성씨는 제주 고씨다. 나는 허승규, 이승규, 고승규일 수도 있다. 나는 양천 허씨 40대손이니 1대까지 계산하면 1,099,511,627,776분(1조여명)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성씨를 고를 수 있다.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는 70억명인데 나의 1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수가 1조를 넘을 순 없다. 가문과 가문의 중복된 결합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이 나랑 한집안이란 계산도 가능하다. 나는 김승규, 마이클 승규, 페트라 승규, 나가사키 승규, 마오 승규, 무하마드 승규일 수 있다. 아예 ‘허큐/Huh Q’란 별명을 세계시민 이름처럼 쓰고 있다. 수많은 조상 중에 한가지 선을 따라서 계보를 만든 것은 인간의 선택이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성씨를 따라서 가문, 문중을 형성하여 공통의 정체성을 정하는 것은 부계 중심 사회, 가부장제의 유산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도시에는 ‘종갓집’이 많고 문중을 살피는 문화가 두드러진다. 이런 문화에서 수많은 할머니, 어머니, 누나, 언니, 자매, 딸들의 삶은 어떠한 위치에 있을까. ‘종손’이라 불리는 분들, 문중 정체성이 크신 분들은, 자신과 같은 성씨의 유명한 조상의 삶보다 자신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삶을 잘 알고 있을까. 전통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어떤 전통은 계승되지 않는다. 어떤 전통은 혁신을 통해 살아남고 존중받는다. 문중 공동체의 전통은 평등한 가족 문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가족과 친척끼리 우애를 나누는 문화는 지금 시대에도 유효할 수 있다. 새로운 문화로 가족주의는 재구성될 수 있다. 수천년 전의 조상을 통해 형성된 혈연 공동체보다 우선하는 문제는, 한 사람의 생애주기, 100년 안에 만나는 가족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다. 이것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현재 문중의 전통문화에서 지금 안동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 언니, 누나, 자매, 딸들이 감내하는 문제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슬로건은 이상하다. 삼국시대에나 있을 법한, 시대에 역행하는 비전이 한국 정신문화일 수는 없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던 전통처럼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가려진 할머니들의 삶을 통해 전통을 재해석하자. 세상은 진보와 보수의 두 수레바퀴로 굴러간다. 기존에 익숙한 모든 것이 ‘보수적 가치’라면 세상의 발전은 없다. 기존의 무엇과 반대에 선다고 무조건 ‘진보적 가치’가 아니듯이, 좁은 관점으로 ‘보수’를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한다. 가족과 친척들도 소중하다.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에서 청렴한 교사 할아버지의 삶,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할아버지의 삶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였다.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을 할머니, 외할머니의 고생과 희생, 헌신이 가려지는 지역사회, 한국사회 문화를 바꾸자. 문중 문화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자. 유림단체도 함께 하자. 오늘 나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보련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좋아하는 정치인의 성씨를 따라, 나는 오늘 하루 고승규다.
칼럼 |
[2030 리스펙트] 나는 안동 시민 고승규다 / 허승규 |
녹색정치 활동가 나의 아버지의 성씨는 양천 허씨, 어머니의 성씨는 우계 이씨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성씨는 양천 허씨, 나의 아버지의 어머니의 성씨는 진성 이씨다. 나의 어머니의 아버지의 성씨는 우계 이씨,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성씨는 제주 고씨다. 나는 허승규, 이승규, 고승규일 수도 있다. 나는 양천 허씨 40대손이니 1대까지 계산하면 1,099,511,627,776분(1조여명)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성씨를 고를 수 있다.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는 70억명인데 나의 1대 할머니, 할아버지의 수가 1조를 넘을 순 없다. 가문과 가문의 중복된 결합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이 나랑 한집안이란 계산도 가능하다. 나는 김승규, 마이클 승규, 페트라 승규, 나가사키 승규, 마오 승규, 무하마드 승규일 수 있다. 아예 ‘허큐/Huh Q’란 별명을 세계시민 이름처럼 쓰고 있다. 수많은 조상 중에 한가지 선을 따라서 계보를 만든 것은 인간의 선택이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성씨를 따라서 가문, 문중을 형성하여 공통의 정체성을 정하는 것은 부계 중심 사회, 가부장제의 유산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도시에는 ‘종갓집’이 많고 문중을 살피는 문화가 두드러진다. 이런 문화에서 수많은 할머니, 어머니, 누나, 언니, 자매, 딸들의 삶은 어떠한 위치에 있을까. ‘종손’이라 불리는 분들, 문중 정체성이 크신 분들은, 자신과 같은 성씨의 유명한 조상의 삶보다 자신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삶을 잘 알고 있을까. 전통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어떤 전통은 계승되지 않는다. 어떤 전통은 혁신을 통해 살아남고 존중받는다. 문중 공동체의 전통은 평등한 가족 문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가족과 친척끼리 우애를 나누는 문화는 지금 시대에도 유효할 수 있다. 새로운 문화로 가족주의는 재구성될 수 있다. 수천년 전의 조상을 통해 형성된 혈연 공동체보다 우선하는 문제는, 한 사람의 생애주기, 100년 안에 만나는 가족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다. 이것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현재 문중의 전통문화에서 지금 안동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 언니, 누나, 자매, 딸들이 감내하는 문제를 인식하지 않는다면,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슬로건은 이상하다. 삼국시대에나 있을 법한, 시대에 역행하는 비전이 한국 정신문화일 수는 없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던 전통처럼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가려진 할머니들의 삶을 통해 전통을 재해석하자. 세상은 진보와 보수의 두 수레바퀴로 굴러간다. 기존에 익숙한 모든 것이 ‘보수적 가치’라면 세상의 발전은 없다. 기존의 무엇과 반대에 선다고 무조건 ‘진보적 가치’가 아니듯이, 좁은 관점으로 ‘보수’를 모욕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를 사랑한다. 가족과 친척들도 소중하다.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에서 청렴한 교사 할아버지의 삶, 한국전쟁에 참전한 외할아버지의 삶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였다.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을 할머니, 외할머니의 고생과 희생, 헌신이 가려지는 지역사회, 한국사회 문화를 바꾸자. 문중 문화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자. 유림단체도 함께 하자. 오늘 나는 다른 이름으로 살아보련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좋아하는 정치인의 성씨를 따라, 나는 오늘 하루 고승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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