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관계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 어귀 벽에 4 ·11총선 후보 공모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접수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동안 진행된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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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예비후보들 “공정한 경선기회 박탈” 반발
지도부 등 “여성 정치 참여 확대위해선 불가피”
“여성 후보군 늘리는게 급선무” 논란 진화나서
민주통합당의 공천 갈등이 ‘지역구 15% 여성 공천’을 의무화한 당규 조항을 두고 가장 먼저 불붙었다.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불가피한 조처’라는 여성 예비후보들과 ‘남성들의 경선참여 기회를 막는 역차별’이라는 남성 예비후보들 사이 ‘성대결’로 치닫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지난 6일 최고위원회의와 당무위원회를 잇달아 열어 4·11 총선에서 지역구 여성 공천 비율을 15%로 의무화한 당규를 확정했다. ‘공직선거 후보에 여성을 30% 이상 포함하도록 노력한다’고 돼 있는 기존 당헌에 견줘 절반 수준의 목표 비율이다. 하지만 이를 당이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강제조항으로 격상시킨 것이어서, 실제 공천에 끼치는 영향력은 비할 수 없이 커진 것으로 평가된다.
새 당규를 지키려면, 전국의 지역구 245곳 가운데 15%인 37개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여성을 공천해야 한다. 그런데 7일 현재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여성은 전국을 통틀어 37개 지역 39명(2곳은 여성 복수 등록)에 그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내에선 앞으로 여성 예비후보 등록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한, 여성 후보들은 거의 모두 경쟁 없이 공천을 받는 게 아니냐는 예상이 나온다.
여성 예비후보가 밀집한 수도권의 남성 예비후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며 절박한 위기감을 토로하고 나섰다. 서울의 경우 48개 지역구 가운데 현재까지 15개 지역구에서 17명의 여성 예비후보가 등록했다. 지역구 현역인 이미경·박영선 의원과 출마가 예상되는 고 김근태 고문의 부인 인재근씨를 포함하면 20곳에 이를 전망이다. 이들 남성 예비후보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성 15% 의무 공천’ 철회를 한명숙 대표에게 요구했다. 이들은 8일 최고위원회의가 열리는 국회 당 대표실을 찾아 공식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남성 예비후보들의 반대 이유는 3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남성들의 공정한 경선 참여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재호 예비후보(일산동구)는 “이미 지역구마다 여성 예비후보들은 ‘경선이 필요 없다. 우리가 된다’고 말하고 다닌다”며 “적어도 함께 뛰어볼 기회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들은 여성 의무 공천 규정이 여성 신인의 정치 참여 확대가 아니라 전·현직 여성 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정청래 예비후보(마포을)는 “지금 등록한 여성 예비후보 39명 대부분이 기존 정치인으로, 비례대표 수혜를 이미 받은 분들”이라며 “여성 정치 참여 확대에는 찬성하지만, 기성 정치인들이 특혜를 받겠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성에 대한 이중특혜이자, 결과적으로 본선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창환 예비후보(은평을)는 “이미 ‘여성신인 15% 가산점제도’까지 마련하고 있는 판에 15% 의무공천까지 줄 경우 여성이면 자질과 무관하게 모두 공천되는 결과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수 예비후보(일산서구)는 “새누리당 후보에게 게임도 안 되는 후보인데도 여성이라고 무조건 공천하는 게 민주주의냐”고 했다.
당 지도부와 여성 공천 의무화를 제기해온 쪽에선 ‘여성 정치 참여 확대’는 당 혁신의 상징적 과제인 만큼 포기할 수 없다는 태도다. 남윤인순 최고위원은 “기존 당헌은 아무 구속력이 없어 18대 총선 때도 여성 공천율은 7.5%에 불과했다”며 “지금의 논란은 새로운 혁신을 달성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겪어야 하는 진통”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도의 나라가 이렇게 여성 정치 참여 비율이 낮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정치계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한시적으로 의무 공천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명숙 대표 자신부터 여성 참여 확대가 정치 혁신의 주요 과제라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한 대표는 여성 정치인이 대체로 남성에 비해 깨끗하고 자질 등 경쟁력이 높은 만큼 일부를 제외하면 여성 후보가 공정한 공천 경쟁에서도 우세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부는 논란 확대를 막기 위해선 여성 후보군을 늘리는 게 급선무라고 보고 영입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유승희 여성위원장은 “우리가 우선 할 일은 출마자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지도부도 본선경쟁력을 최우선에 둘 수밖에 없는 만큼, 마지막까지 15% 규정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남윤 최고위원은 “의무 비율 때문에 경선에서 2등, 3등 하는 사람을 전략공천 등으로 되살릴 수야 있겠느냐”며 “최대한 노력해도 비율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경선에서 떨어진 여성들의 승복을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의 한 측근은 “일부에선 떨어진 여성들이 의무비율 미충족을 근거로 가처분신청을 내면 어떡하느냐고 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당무회의를 다시 열어 의무 규정을 완화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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