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30 21:02
수정 : 2012.01.3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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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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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강정책으로 본 박근혜 집권구상은
‘신자유주의’서 경제민주화로 정책기조 대폭 변경
‘MB정부와 차별화’ 분석…실천 연결될지 미지수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국민과의 약속’(정강·정책)을 논의하는 비대위 회의에서 “정강정책 개정안을 기초로 해서 우리 당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과장된 표현을 잘 사용하지 않는 그의 어법과 다른 모습이었다. 이날 비대위가 확정해서 내놓은 개정안을 들여다보면 적잖은 변화가 눈에 띈다.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당의 정책노선과 기조를 바꾼 점이다. 1997년 한나라당 창당 때 수립했던 정강정책의 철학적 기조는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노선’이었다. “큰 시장, 작은 정부의 기조에 입각한 활기찬 선진경제를 지향”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구현한다는 전문은 이를 잘 보여준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경쟁하도록 하고 정부는 개입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겠다는 정신이었다. 1980년대 말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추진했던 노선의 충실한 추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강한 정부를 만들어나가”며 “시장 실패가 일어난 분야에서 이를 시정하기 위해 정부의 실효성 있는 개입을 확대한다”고 명시했다. 모든 걸 시장에 맡긴 채 국민경제 생활에 팔짱 끼고 있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 공정경쟁과 경제민주화를 위해 국가의 권한을 활용하는 ‘큰 정부’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드러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붕괴된 세계사적인 흐름을 반영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나라당이 지난 수십년 동안 ‘작은 정부’를 금과옥조처럼 외쳐왔던 점에 견주면 이런 노선 변경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분야별 정책을 밝히면서 복지와 일자리, 공쟁한 시장경제를 첫머리에 내세운 대목도 정부·국가의 역할 강조와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복지 분야에서는 “시장경제에서 낙오된 취약·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에 초점을 맞췄던 데 비해 이번 개정안에서는 “헌법적 가치인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아우르는 평생맞춤형 복지”를 추구하는 것으로 바꿨다. 복지정책을 낙오자에 대한 시혜로 보는 좁은 관점을 탈피하고, 국민의 행복권을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론을 상당부분 수용한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해소와 정규직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청년고용을 일자리 정책의 핵심과제”로 제시한 부분도 ‘강한 정부’의 구체적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여 경제민주화를 실현한다”는 표현을 새로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이 대목은 헌법 제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과 유사하다. 재계 등 보수세력은 헌법 개정론이 나올 때마다 이 조항을 ‘대표적 좌파 조항’으로 공격하면서 삭제 대상으로 지목해왔다.
교육정책에서도 신자유주의 교육의 바탕이 됐던 “교육의 수월성과 경쟁력을 드높인다”는 표현을 아예 삭제하고 대신 “균등한 교육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실현”, “학교의 자율성과 책무성 강화를 통해 공교육의 질” 제고, “영유아 보육 및 교육에 대한 국가적 책임 확대” “고등학교 교육의 의무화 추진” 등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을 넣었다.
전체적으로 새 정강·정책 개정안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정당의 틀은 유지하되, 그동안 추구해온 정책은 기조부터 대폭 바꾸겠다는 의지를 일단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보수 문구의 삭제 여부와 부자 증세, 재벌 개혁 등을 놓고 비대위 내부에서 마찰음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노선 변화의 폭이 매우 큰 셈이다.
이는 박 위원장이 대대적 현상 타파를 촉구한 김종인 비대위원 등과 쇄신파의 손을 들어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보수세력의 분열 등을 우려해 조심스런 행보를 해온 박 위원장이 좌고우면을 떨치고 4월 총선뿐 아니라 올 연말 대선을 겨냥해 일종의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위원장의 한 측근은 “새 정강·정책은 이제 당을 박근혜 포장지로 쌌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당내 경선 때 ‘줄푸세’ 공약으로 신자유주의의 첨단을 달리다가 그동안 복지정책의 적극적 수용 등 조금씩 좌클릭해오던 박 위원장이 확실하게 과거의 보수 및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진보세력이 선점해온 복지정책뿐 아니라 경제민주화, 정부의 역할 확대 등에서도 정면승부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만 역대 각 당의 정강정책이 대체로 화려한 말의 잔치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나라당의 이번 개정안 역시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천하느냐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구체적인 공약으로 다듬어질지 여부도 지켜봐야 한다. 여권 내 세력분포로 볼 때 보수세력이 ‘강한 정부’의 구현에 반대하고 나설 경우 박 위원장이 이를 방어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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