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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25 21:33 수정 : 2012.01.27 11:23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

민주당 대변인으로 정치인생 시작 신경민씨
“지역구 출마? 비례대표설? 그런 걸로 딜할 생각 없다”

 “크게는 국가, 작게는 지역구를 운영하는 일에 각종 조직이 연관돼 있으니 어려운 일이 많더라.”

 촌철살인의 뉴스 앵커에서, 대학의 인기 강사로, 그리고 최근 제1야당 대변인으로 직업을 바꾼 신경민(59)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짧은 시간에 정당인의 고충을 십분 느낀 듯했다. 정치권 진입 1주일을 맞은 25일 그는 “당이기 때문에 가져야 하는 한계는 있다. 우리 당을 내가 비판할 수는 없지 않으냐”라면서도, “가급적이면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변인직 제안을 받은 신 대변인은 주변에 두루 의견을 구했다고 했다. “지난 2010년 서울 은평을 보궐선거 등에서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던 시절엔 ‘안 간다’고 했을 때 ‘참 잘했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번엔 달랐다.” 그는 “이번엔 양대 선거도 있고 그동안 당한 핍박도 있어서인지 민주주의라는 큰 대의에 기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보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이미 정년 퇴임한 까닭에, 언론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정치권에 진출한다는 비난 어린 시선의 부담도 덜었다.

 그는 세간에 떠도는 지역구 출마설, 비례대표 내정설 등에 대해, “그런 걸로 딜(거래)할 생각은 없다. 그저 총선과 대선에 이기는 데 일조하겠다는 것만 얘기했다”며 모두 일축했다. 한편으론, “엠비시 사장이 돼서 국내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인 좋은 방송사 모델을 하나 세워보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정치권 진출로 학교 강의를 그만두게 된 데 대해선, “가르쳐보니 학생도 좋아하고, 저도 도움을 줄 여지가 있는데, 학교가 우리(전직 언론인)를 절실히 요구하지 않는다. 학교는 학위를 요구하더라”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신 대변인은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지낸 사람이 인상이 변했다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마음의 자세나 삶의 태도 같은 게 바뀐 것”이라며 “내 인상이 변한다 싶으면 스스로 관둘 것”이라는 다짐도 털어놨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 대변인 일주일


-취임 일주일 소감은?

“회의가 많더라. 민주통합당이 여러 집안이 모인 한지붕 서너가족이기도 하다. 사실 아직 신생정당인데, 엄청난 선거가 두 차례 기다리고 있고. 인사도 제대로 안 이뤄지고 있다. 다른 정당 경험을 못해봐서 그렇긴 한데, 정당이 다 이렇겠죠, 아무리 오래 됐어도?(웃음?)

회의가 다 이유가 있더라. 대변인이다보니 중요한 회의에 다 들어가면서, 빠른 시간 안에 학습을 마쳤다. 독자로서 언론을 통해 보던 걸 (거꾸로) 설명해줘야 하는 입장이 되니, 그 이슈들에 대한 학습이었다. 인상깊은 이슈로는 석패율 논의와 정개특위가 있다. 앞으로 현실정치에 더 다가가기 위해 공천 과정도 배우게 될텐데, 선거 총선기획단과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되면, 인사 프로세스 등을 직·간접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이런 준비 작업을 하는 회의에 들어가면, 간단치 않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권력이고 국가를 운영하는 일이잖나. 크게는 국가, 작게는 지역구를 운영하는 일에 각종 조직이 연관돼있으니 어려운 일이 많더라. 게다가 인간 일이 다 그렇듯, 중요한 일을 했는데도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예측을 한다고는 하지만, 작은 조직이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하는 일이다 보니, 결과 예측이 맞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앵커 때는 ‘촌철살인’ 클로징멘트로 유명했는데, 일당의 대변인으로서 역할은?

“본질적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텐데, 당이기 때문에 가져야 하는 한계는 있다. 우리 당을 내가 비판할 수는 없지 않나. 아직 당인이라고 생각하는 뿌리깊은 단계까진 안 왔지만, 우리나라가 자기가 속한 당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을만큼 열린 사회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여’만 있어도 안 되고 ‘야’만 있어도 안 되듯, 여야 서로 존중해야 한다. 상대방이 하는 정책이나 결정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나. 존중할 필요 있다. 상대방이 무자비하게 비판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봐야 하지만, 그런 상황 오지 않기를 바란다.”

-‘신경민표 정치’는 어떻게 되는지?

“(아직 스스로) 정치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 대변인직을 맡아 도와달라는 심각한 제의 들어와, 가는 게 맞는지 여러 사람하고 얘기해봤다. 당신 브랜드 살리려면 가지 말라며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이번이 좋은 기회고 정권교체 위해 미력을 보탤 수 있는 기회라며 가보라고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전에 (과거 선거 출마 요구에) ‘안 간다’고 했을 때는 “참 잘했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이번엔 가라는 사람이 많았다. 양대선거도 있고, 그동안 당한 핍박도 있어서 그런가 싶었다. 이번엔 민주주의라는 큰 대의에 기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보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2009년4월13일에 뉴스데스크 그만둔 이후 사실상 해직상태였다. 회사에선 하루에 1초도 일할 기회를 안 줬다. 법률적 직원이었을뿐, 사실상 해직상황으로 거의 만 3년을 보냈다. 그런데다 지난해 9월13일자로 퇴직해서 법률적 끈도 떨어지면서, 사실상 해직이 완벽한 해직이 됐다. 언론인이란 지위를 이용해서 정치권으로 가는 건 욕먹고 비난받을 수 있지만, 이제 그 굴레도 벗어났다. 그런 데선 자유로와졌다.

■ 저널리즘의 위기

-카카오톡 아이디가 ‘저널리즘은 어디로’라고 돼있는데?

“저널리즘의 위기를 표현한 것이다. <한국방송>(KBS)는 이미 갔고, <문화방송>(MBC)도 엉망진창으로…, 내가 몸담고 있던 회사였지만, 걷잡을 수 없이, 저널리즘의 기초조차 갖추지 않은 단계로 갔다. 오히려 <에스비에스>(SBS)가 제일 낫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상대적인 것일뿐,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그때 카카오톡 이름으로 정한 것이다.

-파업중인 <엠비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만시지탄이 있다. 지금 현재 방송의 지배구조는 본질적으로 정치권력의 은전 위에서 저널리즘을 누릴 수 있다. 정치 권력이 그 은전을 거둬버리면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방송이 될 수밖에 없다. 지배구조를 고치지 않고는 도저히 방송의 저널리즘이 기본을 다할 수 없다. 엠비시는 정수장학회도 문제지만, 70% 지분을 방송문화진흥재단(방문진)이 쥐고 있는 구조적 문제 있다. <케이비에스>는 이사회가 사실상 청와대 지배 구조에 편입돼있다. 방문진도 마찬가지다. 에스비에스는 민영방송이라지만 우리나라에서 ‘민영’은 정치권력에 아주 취약하다. 정치권력이 도구로 사용하면 꼼짝 못한다.

결국 오너는 권력이다. 그 권력이 금도를 갖추거나 은전을 베풀면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그걸 거두면 권력에 편입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구성원, 임직원이 결사적으로 지키려해도 지킬 방법이 없다. 먼저 제대로 된 구조를 갖추고, 그런 구조 속에서 일을 하는 임직원, 기자·피디가 노력해서 그걸 역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세가지 중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제대로 된 구조가 되려면, 정치 권력이 어느 순간에 포기를 해야 한다. 권력 유지를 위해 방송이 필요하다, 언론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제도를 바꿔줘야 한다. 그게 몇 나라에 있는 공영방송시스템인데, 말로는 공영방송을 외친 지 수십년 됐지만 한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어떻게 바꿔야 하나?

“서양의 경우를 보면 시사점이 있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정치권력이 장악할 수 없다. 공영방송인 영국의 <비비시>나 독일의 <아에르디>(ARD), <체트데에프>(ZDF) 이사회는 각 사회 조직의 제반 세력들이 많은 이사들을 보내고, 거기서 선발된 이사들이 시민사회에 충성심을 갖는다. 나를 뽑아준 내 등 뒤에 있는 조직이나 지자체 등에 의거해서 사장도 뽑고 편성정책도 세운다. 그래서 가능한 거지, 단순히 사람들이 열심히 해서는 아니다.”

-다수당이 되고 집권한다면 종편은 어떻게?

“종편은 이미 생명력을 부여받은, 이미 세상에 태어난 아기 생명체다. 그 이전에 논의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대했던 것보다 준비가 덜됐고, 제품의 질을 높일 수 있느냐는 숙제가 있다. 질을 높이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고, 여기서 악순환으로 들어갈 수 있다. 돈이 필요해서 광고주 압박하고, 이 때문에 저널리즘을 포기하거나 악용하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 이런 악순환 구조에 들어선 것 같다. 사실은 예상됐던 것으로, 가장 나쁜 시나리오에 꽂힌 것이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나쁜 미래를 전망한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의 경우, 우리 사회는 재앙으로 다가서게 된다. 수없이 많은 언론 종사자와 언론계가 이미 지적한건데 그걸 제대로 듣지 않은 결과다. 이들과 반대의 목소리를 내던 언론 종사자들이 정치권에 편승해서 이렇게 만든 건데, 이는 민주화의 배반 현상이다. 민주화의 배반이 언론에서 아주 나쁘게 피어난 것이다.”

■ 정치인 신경민, 교육자 신경민

-지역구 출마나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한다는 소문은?

“그런 걸 조건으로 내걸지 않았고,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는 데 일조하겠다는 것만 얘기했다. 구체적 조건은 얘기한 적 없고, 한명숙 대표나 지도부에 일임했다. (거꾸로 제안이 온 적도 없었는지?) 일체 없었다. 그런 걸로 딜(거래)을 할 생각 없다. 나는 정치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고 싶다. 민주화 역주행을 일단 교정하고, 역주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약간의 제도화도 필요하지 않겠나. 그런 문화의 정착에 기여하고 싶다. 정말 순수한 마음에서, 역주행이나 유턴은 이제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석패율 문제를 다루면서 거대정당으로서의 자세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은데?

“와서 보니 석패율 문제는 정치 현안 가운데 몇째 중 하나로 들어간다. 빅3, 빅5에는 들어가는 중요한 이슈이다. 한명숙 대표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한 대표는 “진보가 숨쉴 공간이 필요하고, 진보가 확장돼야 한다. 보수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게 아니냐”라고 한다. 그 평가가 맞다. 그런데, 현실정치로 돌아와서 그걸 어떻게 할지를 가지고 싸우는 모양새다. 지역구도 걸려있고, 뭘 기준으로 할거냐의 문제도 있다. 길고 지루한 협상 과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진보가 확장돼야 한다는 원칙은 지키는 게 맞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아보이지만, 그 원칙을 지지하는 쪽으로 지원하고 싶다.”

-학교로부터 러브콜 많지 않았는지?

“강의하면서, 학생들로부터 인기는 몰라도 괜찮은 교수였다. 학생들도 실무 얘기를 듣고 싶어하고, 이론보다 프랙티스(실무)에 경도된 학문들이 학교에 인기 많았다. 나는 실무를 30년 넘게 해오면서 꾸준히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 몇 차례 갈 때에도 미국의 정치와 저널리즘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공부를 하되 현장과 연결해, 이론만이 아닌 실천적인 생각을 많이 해봤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나름대로 정리를 해왔고, 이를 가지고 지난 3~4학기 강의를 했다.

하지만 학교는 학위를 필요로 했다. 아무리 실무에서 일정 수준에 올라가있어도 학위가 없으면 인정을 안 해줬다. 학교 쪽에서 제안이 있었으면 아마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고, 오늘날 이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같은 사람(퇴직 언론인)은 학생들도 필요로 하고 우리로서도 도움을 줄 여지가 있는데, 학교가 우리를 절실히 원하지 않더라.

-나중에라도 기회가 있다면 학교로 갈 생각은?

“아, 저는 학교 좋아요. 한때는 저널리즘이 엉망이 되고 좋은 기자들이 전부 정년퇴직 등으로 길바닥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 50~60년대에 태어난 많은 우수한 기자들을 모아서 좋은 인터넷 언론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비즈니스 모델만 만들 수 있다면, <허핑턴포스트>나 <프로퍼블리카> 같은 미국 모델의 인터넷 언론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학교에 가보면, 취직은 못했지만 굉장히 우수한 취재 자원들이 있다. 기자 잠재력을 가진 자원이다. 그 노·장·청을 잘 결합하면 우리나라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지 않겠나. 이젠 (정당에 몸을 담게 돼) 당분간은 어렵다. 말년에라도 ‘세컨드잡’으로 생각할까 한다. 저널리즘 모델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또 엠비시 사장을 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된 거 같다. 나는 국장이나 보도본부장은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사장이 돼서 국내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인 좋은 방송사 모델을 하나 세워보고 싶었다.”

-새로 나오는 책 <신경민이 본 개념사회>를 소개한다면?

=2009년 12월 앵커 때의 클로징멘트를 모아서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는 책을 냈다. 그 뒤에 강연다녔던 내용과 <한겨레> 등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서 내는 책이다. 일관되게 얘기한 주제는, ‘정치는 중요하다. 정치는 생활과 문화에서 비롯된다. 정치를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우리 미래는 없다’ 등의 이야기다.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서) 쫓겨난 경위가 좀 취재가 돼서 새로 들어간 것도 있다. 그 당시 나를 쫓아내는 데 기여한 사람들은 사실 잘 아는 선후배들이었다. 나를 쫓아낸 사람들 대부분이 기자 생활 초창기부터 출입처 등에서 만난 사람들과 같은 회사 근무한 선·후배들이었다. 또 ‘엠비’(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들어갔고, 기자로서 겪은 한국 정치와 사회에 대한 저의 해석이 들어가 있다.”

-인터뷰 클로징멘트를 한다면?

“2009년 4월 앵커 관두면서 했던 클로징멘트에서 얘기한 원칙과 자세는 지금도 유효하다. 당시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힘에 대한 견제,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다”라고 얘기했다.

마음속으로 하는 다짐도 있다. 뭘 하든 인상은 변하지 않아야겠다, 인상이 변한다 싶으면 스스로 관두겠다는 다짐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지낸 사람이 인상이 변했다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마음의 자세나 삶의 태도 같은 게 바뀐 것이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면, 인상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얘기 나오면 다른 트랙으로 갈아타겠다.”

정리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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