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0.03 04:59
수정 : 2018.10.03 09:32
김춘식의 미디어전망대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한겨레>는 지난달 27일부터 극우 개신교 세력이 가짜뉴스를 정치적·종교적 가치 투쟁의 도구로 삼는 현실을 고발했다. 12개면(1면 포함)에 걸친 탐사기획 기사(‘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가 정리한 가짜뉴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성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노년층들이 대안적인 정보원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가짜 뉴스에 노출된다. 둘째, 유튜브나 카톡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가 가짜뉴스를 확산시키는 핵심 플랫폼이다. 셋째, 가짜뉴스는 적대와 혐오를 증폭시키는 일종의 분노 장치이다. 넷째, 가짜뉴스의 주 공격대상은 진보좌파와 사회적 소수세력이다. 논쟁의 핵심은 가짜뉴스의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가짜뉴스가 기성언론의 저널리즘 실천에 던지는 함의 두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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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커뮤니티사이트의 가짜뉴스. 이슬 교단 지도자인 이맘이 “아동 성폭행은 우리 문화의 일부”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다. 이용희 에스더기도운동 대표가 이슬람 혐오 주장의 근거로 올린 글이다. 에스더기도운동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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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가짜뉴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는 보편적이 아니라 조건적이다. 가짜뉴스 이용이 정치적 태도 및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은 다양한 변인에 의해 조절되고 매개된다. 가령, 인지심리학자들(Markus & Zajonc, 1985)이 제안한 ‘O1-S-O2-R 모델’을 적용하면 가짜뉴스(S)가 정치적 선택(R)에 미치는 영향은 정치성향이나 이용동기(O1)에 따라 조절된다. 더구나 가짜뉴스를 선택적으로 훑어보는 이들과 이를 재해석하기 위해 추가 정보를 찾아 나서는(O2) 이들 간에 효과의 크기가 같을 수 없다. 유튜브나 카톡 단체방을 통해 정보를 접한 노인들이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어도 가짜뉴스를 판별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춘 이들의 경우 거짓뉴스로부터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가짜뉴스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극화를 추동한다는 사실이다. 정치 성향이 매우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이들은 중도적인 유권자에 비해 정치 정보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더구나 자기와 유사한 관심사를 갖는 이들과 정치적 세계관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연결망서비스 공간에서도 반복된다. 신문과 방송을 신뢰하지 않는 극단적 정치 성향의 특정 계층들이 가짜뉴스에 의존적이다. 정치적·사회적 의제 설정 및 확산, 그리고 이를 통한 여론형성 측면에서 가짜뉴스가 보수적인 노년층에게 신문과 방송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전통미디어 뉴스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말한다. 출입처 의존에서 벗어나고 익명의 정파적 취재원과 무주체 수동태 술어(‘∼로 알려졌다’ 혹은 ‘∼로 전해졌다’)를 남발하는 부적절한 관행의 개선을 주문한다.
기자들은 뉴스 생산에 참여한 경험을 통해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의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언론은 정당과 정치인이 정책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실들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권력의 정책 의사결정이 경쟁 정당과 정치인, 이익단체, 전문가, 일반 시민들에 의해 어떻게 평가받는지를 공중들에게 설명하는 민주주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언론사가 취재 편집 과정에서의 착오 등에 의해 사실과 달리 보도하는 오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신문협회보 2018년 5월 1일자 3면)는 신문협회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가짜뉴스 퇴치는 저널리즘 신뢰 회복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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