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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10 10:52 수정 : 2017.08.10 20:42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

‘밖에서 삼성을 돕는 언론인’들의 충성경쟁이 외부에 알려졌다. 예감할 수 없을 정도로 몰랐던 사실은 아니다. 이런 일이 삼성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도시 곳곳에서 악취가 흘러나오는 일은 일상의 일부인지 오래다. 그러나 이번처럼 구체적으로 누가 어떠한 이유로 ‘돈먹는 기레기’ 짓을 했는지 알려진 것은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 후 처음이다. 행위의 유형도 다양하다. 조정래의 소설 <허수아비 춤>에 등장하는 언론사 간부처럼 광고를 유치하기 위해 재벌에 애원하는 신문사 간부가 등장하고, 취업청탁을 위해 사부곡을 쓴 방송사 간부도 있다. 자신의 일자리를 청탁한 것은 그나마 애처롭기까지 하다. 소속 언론사도 다양하다. 한국 사회가 지향해 온 가치와 관습을 지킨다는 보수언론에서부터 사회변혁을 통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겠다는 진보적 성향의 언론사까지 모두 들어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익보다는 사익을 위해 자신들에게 맡겨진 권한은 남용하고 역할은 회피했다.

그래도 봄이 왔다고 한다. 부패의 상징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재판에 섰고, 그들의 공범을 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 분명 봄은 왔지만 여전히 얼어붙은 겨울공화국에 사는 이들도 있다. 병상에 누워 명예회복을 기다리는 이용마 기자와 그의 동료인 최승호 피디와 박성제·박성호 기자가 있고, 해직상태는 아니지만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제작마저 거부해야 할 만큼 숨쉬기 힘든 제작환경에 맞서고 있는 문화방송 언론인들이 있다. 대통령과 방송통신위원장이 이용마 기자를 방문하여 해직자 복직을 약속하고 건투를 빌었다. 그러나 복직만 이루어지면 모든 게 해결될까? 해직자 복직은 시작일 뿐이다. 우리 언론의 현실은 보에 막혀 강바닥부터 썩어 버린 4대강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해직자 몇명이 복직하여 잠들어있는 언론인들을 깨울 순 있다. 그러나 썩어버린 수조에 메기를 넣는다고 미꾸라지를 살릴 순 없다. 물이 맑아져야 한다.

해직자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 명예회복은 해직자들이 멈춰서야 했던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그들은 정보기관이 정권을 위해 국민을 사찰하고 여론을 조작했을 때 문제를 파헤쳤다. 과학을 신화화하여 우상을 만들 때 비판했고, 4대강을 막고 물줄기를 돌려서 사익을 취한 정권에 맞섰다. 세상의 소금이기보다는 독이었던 종교를 비판했고, 값싼 전력을 생산한다며 국토 곳곳을 방사능 폐기장으로 만든 원전 마피아를 고발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고 경제를 유린한 기업을 고발했고, 그들을 비호하는 언론사 경영진에 맞섰다. 그러다 해직을 당했다. 그후 아직도 우리 사회는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명예회복은 그들이 멈출 수밖에 없었던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 되찾을 수 있다. 명예회복은 모든 언론인이 해직자들이 멈춰 섰던 그 지점에서 나란히 걷기 시작하는 일이다. 그곳에 우리 미래가 있다.

지난 일은 잊자고 말한다. 해직자 복직이 상처를 들춰 부스럼을 만든다고 말한다. 맞다. 오랫동안 쌓여서 썩어 문드러진 폐단은 제거해야 한다. 가끔은 보복이라고도 말한다. 그렇지는 않다. 아물어서 새살이 돋았다면 보복이다. 하지만 여전히 썩고 고여 있는 적폐를 눈감을 수는 없다. 이제 언론인이 허수아비의 춤을 그만두고 가야 할 길을 가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해직자 명예회복은 희망을 찾는 일이다. 그 첫 단추가 사익을 추구하며 적폐를 쌓고 지켜온 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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