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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29 19:53 수정 : 2012.03.29 19:53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

엄마 없는 집 냉장고 음식보다
김 모락 튀김·떡볶이에 손…
빈곤층 아동 비만은 노동현실
엄청난 사회적 비용 초래한다

도시 빈곤지역의 아이들과 어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엉뚱한 생각이 슬며시 들곤 한다. 말도 안 되는 줄 알지만 현재의 빈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단순히 소득이나 삶의 질이 양극화되는 것만이 아니라, 아예 인류 종 자체가 서로 간에 넘어설 수 없는 질적 차이를 갖는 분화의 방향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나친 말 같지만 소위 상위 1%에 속하는 가정의 자녀들과 빈곤 가정의 자녀들이 자라는 갖가지 모습을 비교해 보면, 우리가 정말 서로를 같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극심한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을 두고 참 끔찍하고 유별난 생각을 한다고 할지 몰라도, 가난한 가정의 뚱뚱한 아이들이 벌써 우리 사회의 도드라진 존재들이 되고 있어 하는 말이다.

보통 비만 문제는 잘못된 식습관과 생활습관에서 초래되는 개인적 문제로 치부되기 쉽지만, 저소득층 아동들의 비만 문제는 일정한 사회적 현상의 부작용으로 세심히 살펴봐야 할 많은 측면들을 담고 있다.

현재 저소득층 아동들의 비만은 블록화된 현상, 즉 그들만의 새로운 고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극심한 신체적·심리적 열등감으로 개인을 위축시키고, 결국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게 하는 데 결정적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빈곤 가정의 아동 비만 문제는 무엇보다 우선 보호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특히 가정해체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한부모 가정 아동들의 비만 문제는 증가 일로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게 되었다. 일하랴, 아이 돌보랴, 혼자서 동분서주해야 하는 한부모 가정의 보호자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 속에 있다. 특히 아버지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부자 가정의 경우, 사회의 지원이 없이는 아동들을 제대로 키워내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데 능숙한 모자 가정의 경우 형편이 좀 나으려니 생각하기 쉽겠지만, 저소득 모자 가정의 어머니들 대부분도 식당일 등과 같이 장시간 동안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만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리 크게 나은 형편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부분 식당이 문을 닫는 새벽이나 늦은 밤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 지쳐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그러니 아이들 밥을 챙겨 먹이는 것은 고사하고, 다음 날 일하러 나갈 때까지 찬거리나 먹거리 등을 대충 장만해 놓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보통 아이들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무언가 사먹거나 라면이라도 사다 놓으라고 당부를 하는 식으로 해결을 하게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엄마가 당부한 것들보다는 과자 등의 요깃거리를 사들고 피시방을 가는 것으로 돈을 써버리는 일이 태반이다. 과자를 집어 먹으며 게임을 하는 동안만이라도 잠시 세상 시름을 잊는 것이다.

입안에 달콤하고 매콤하고 짭짜름한 맛이 퍼지면서 심심하고 무료하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던 뇌도 잠시 안정을 찾는 것처럼 느껴진다. 혀는 강한 맛에 길들여지고 설탕과 염분과 탄수화물은 깊이 침투하여 중독 현상을 불러온다. 냉장고에서 며칠씩 묵었던 찬 음식들과 달리 금방 사온 떡볶이나 튀김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물컹하거나 서걱거리는 야채와 달리 상큼한 식감의 과자는 씹을 때 아삭 소리까지 나며 마음을 빼앗는다. 기름에 바삭하게 튀긴 과자나 몇 달을 얼렸는지 모를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고 있노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선한 음식을 먹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곤 한다. 많은 아이들이 과일을 싫어하지 않지만 과일을 사먹기에는 한 번에 써야 하는 돈의 액수가 너무 크고, 이제는 집 앞의 작은 슈퍼에서는 과일을 잘 팔지도 않는 세상이 되었다.

따라서 이런 가정들한테 지역아동센터와 같이 방과후 돌봄과 급식을 제공해주는 곳들은 생계와 아동양육을 동시에 해결하는 가정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지원인 셈이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가 그러한 자기 몫을 다하기에는 사회적 지원이 너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아동 비만의 문제는 장차 우리 사회가 비용을 지불해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로, 결국 아동기 전체의 돌봄의 질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국민들의 세금을 돌봄에 충분히 투자하여 아동들을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비용으로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돌봄 부족에 눈을 감고 있다가 훗날 아동의 비만 문제 등과 같은 부작용을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데 돈을 들일 것인지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이제는 더이상 토실토실한 아이들을 보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외양을 가꾸고 덩치를 키우는 식으로 발전의 방향을 잡아서는 안 된다. 꼭 지역아동센터가 아니라도 좋으니 제발 필요한 아이들이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 국민들의 소중한 합의의 자리를 만들고 그것을 법과 제도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것이다.

싸구려 가짜 맛의 음식이 어린 영혼들의 외로움과 암담함과 고단함을 잠시 가리는 마취제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필요한 손을 내밀어 어른의 도리를 다해보자는 것이다. 가난하고 뚱뚱한 아이들도 동굴 같은 방을 박차고 나와 환한 봄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세월 좀 제발 함께 만들어 보자.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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