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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2 15:00 수정 : 2012.01.15 15:52

레이

이경섭의 자동차 공인중개소
편리함과 공간 활용성 돋보이는 기아 ‘레이’…‘다마스’의 고급 사양 느낌도

친구는 그때 ‘쓸만한 아내용 차’를 찾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차는 좀 애매해. 뭐 쓸만한 차 없을까?” 편의점 앞 파라솔에서 냉커피를 쭉쭉 빨며 친구가 말했다. 그래. 항상 그놈의 쓸만하다는 게 문제지. 왜 매번 사람들은 이런 애매한 질문밖에 못하는 걸까. 대체 쓸만하다는 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자동차 잡지에서 일하는 게 죄지. 치미는 울화통을 꾹 참고 좀더 들어주기로 했다.

아내가 주로 ‘아이들 운송용’으로 쓴다는 그의 차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중형 세단이다. ‘애매하다’는 건 이것도 무난하고 저것도 무난하지만 반대로 이래도 아쉽고 저래도 아쉽단 얘기. “캠핑이라도 한번 가려면 미치겠거든, 아주. 연비도 안 좋고.” 아, 그러니까 짐 실을 공간이 많은 디젤 차가 필요하단 거네? 그럼 액티언 스포츠가 딱이군. “그 차는 그냥 트럭이잖아. 게다가 못생겼고.” 그럼 그랜드 카니발은 어때? “마누라더러 카니발에 애 태우고 다니라는 건 무리야.” 그럼 i40 같은 차는? “생각해봤는데 스펙에 비해 너무 비싸.” 에그, 까다롭긴. 그럼 푸조 508 같은 차는 얘기해 보나 마나겠네. 쯧쯧. 미간을 찌푸리던 바로 그 무렵, 기아에서 특이한 신차가 출시됐다.

다마스와 레이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편리함, 경제성, 활용성 모두 평균 이상

고민 상담 때문이 아니더라도 작년에 나온 차 중에 가장 기대가 컸던 차는 기아 레이였다. 때마침 반갑게도 출시 전 자동차 회사에서 실시하는 워크숍에 참석해달라는 초청까지 받았다. 자세히 살펴보고 쓸 만한지 말해주겠다고 하자 친구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대신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대충 어떤 차라는 건 미리 알고 있었지만 막상 워크숍 장소에서 실물을 보고 나니 기대를 넘어 살짝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차가 나온다니…. ‘친구야, 네 마누라 차 찾았다!’

레이는 크기로 보면 경차이고 형태로 보면 박스카이고 활용도로 보면 승합차다. 작은 크기에 화물 공간도 많고 여러 사람을 편리하게 태울 수도 있는 차. 좌석 높이도 높아서 운전석에 앉으면 앞이 훤하고 운전하기도 편했다. 뼈대의 기본적인 구성은 모닝과 같으면서도 ‘쓸모’를 극대화한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경차의 경제성에 승합차의 활용성을 합친 차. 과연 까다로운 친구의 조건에 거의 완벽하게 부합하는 차였다.

레이는 상자처럼 생겼다. 작은 버스처럼 차체가 네모난 모양이어서 공간 활용성 면에서 별 다섯 개를 줄 만하다. 게다가 독특한 콘셉트가 멋지다. 운전석과 조수석, 운전석 뒷문은 보통 차와 같이 여닫이지만 조수석 뒤쪽 문은 미닫이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비(B)필러라고 부르는 기둥이 아예 없다.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으니 당연히 차에 타고 내리기 좋다. 우산을 편 채 펄쩍 뛰어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우산을 접지 않고도 차에 훌쩍 올라탈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뒤쪽 문은 해치로 돼 있어 캠핑 테이블이나 텐트를 싣고 내리기 편하다. 물론 화분이나 작은 이삿짐도 그렇다.

엔진이야 1리터 배기량에 불과하므로 화끈한 스피드를 기대할 순 없지만 어차피 이 차로 레이스를 즐길 것도 아니니 전혀 아쉬움이 없다. 구석구석 다듬은 모양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레이’라는 이름은 강아지 이름 같아서 좀 별로지만(‘네모’였으면 어떨까. 과거 콘셉트카의 이름이기도 한데) 어쨌든 맘에 꼭 드는 국산차가 나왔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무엇보다 짐차처럼 생기지 않은 짐차여서 좋았다.


“잠깐만. 짐차라고? 레이가?” 아, 짐차라고 부르는 것에 불편해할 필욘 없다. 엄연한 5인승 승합차니까. 하지만 ‘쓸모’면에서 좌석 많이 달린 짐차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좌석 한쪽을 척척 접으면 금방 화물용 밴으로 바뀌니 말이다. 적당한 차체 높이와 쓸모에 맞게 열리는 문짝, 좁은 골목길도 싹싹 내달리는 경차 크기에다 최대한의 적재 공간을 갖췄다면 이만한 팔방미인도 없지. 어때, 더 고민할 이유가 있을까?

시판 전부터 화제를 모은 레이는 예상대로 출시되자마자 “예쁘다” “특이하다”는 입소문과 함께 한 달에 8000대 넘게 팔리는 히트작이 됐다. 그런데 친구는 레이를 ‘아직’ 사지 않았다. 시승도 몇 번이나 해보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더니 뭔가 미진한 얼굴로 유보 결정을 내렸다. 사유는 이랬다. “어째 자꾸 볼수록 용달차 같단 말이지. 비싼 다마스 같다고나 할까.”

‘비싼 다마스’라. 레이를 방금 구매한 사람이 들으면 땅을 치겠지만 레이가 다마스와 비교되는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1991년 처음 국내에 선보인 다마스는 국내 경승합차의 원조다. 옥수수 식빵처럼 생긴 앙증맞은 외모에 양쪽으로 열리는 슬라이딩 도어를 채용한 다마스는 ‘쓸모’라는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레이가 장점으로 내세우는 모든 것에 ‘싸다’는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 레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바닥의 절대 지존은 다마스였다. 경쟁자가 없는 다마스는 택배업자, 세탁소, 꽃집, 다방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인기를 모으며 지난 20년간 조용한 베스트셀러로 군림해왔다.

소리 없이 사랑받는 다마스와 비슷?

레이와 다마스가 다른 점은 물론 많다. 같은 경차지만 엔진 배기량이 다르고 크기도 다르며 무엇보다 편의사양이 비교할 수 없이 차이가 난다. 경차임에도 여러 고급스러운 옵션(심지어 스마트 키에 스티어링휠 열선까지)이 달린 레이에 비해 다마스는 초라하다 못해 ‘헐벗은’ 수준이다. 자동변속기조차 선택할 수 없는 다마스는 레이의 럭셔리한 옵션 앞에 한껏 쫄 수밖에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경승합차를 사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곰곰 생각해보면 다마스가 불리할 이유는 그리 없다. 다마스는 7인승도, 5인승도 있고 화물용 밴도 있다. 게다가 가장 힘이 센 건 ‘가격표’라는 옵션인데 대충 잡아도 다마스가 500만원이나 싸다.

“역시 애매해.” 우유부단한 친구가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론 그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역시 애매하지. 값도 애매하고 쓸모도 애매하다,

이경섭의 자동차 공인중개소
친구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친구야. 작년 한 해, 수많은 신차가 쏟아진 와중에 딱 한 대 ‘내가 뽑은 올해의 차’ 목록의 첫째 순위에 올려놓을 만한 차는 바로 레이란다. 지루해빠진 국내 시장에 신선하고 새로운 개념의 차를 선보였단 이유 하나만으로. 그래서 이제 뭘 사야 하냐고? 글쎄, 올해 또 어떤 새로운 차가 나올지 어디 한번 기대해보자고. <끝>

월간 <모터트렌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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