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22 10:48
수정 : 2011.09.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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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벨로스터/ 현대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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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이경섭의 자동차 공인중개소
흔해지고 특별대우 사라지고 정비 어려운데…국산 ‘레어 아이템’은 어떨
수입차가 한해 10만대씩 팔리는 시대가 됐다. 여기를 봐도 수입차, 저기를 봐도 수입차다. 수입차의 호시절, 에라 나도 수입차 한 대 사볼까? 처음 수입차를 본 건 중학생 때였으니 1980년대 초반이다. 시골 작은 도시라 그런지 수입차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어느 날 집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셨다. 집안 친척 되시는 아저씨는 할머니를 만나러 ‘외제차’를 타고 오셨다. 검정 광택이 번쩍번쩍하던 생전 처음 보는 차. 대문 앞엔 단번에 동네 조무래기들이 몰려들었다.
당시엔 무슨 차인지 알 리 없었지만 지금 가만 생각하면 피아트 132가 아니었나 싶다. 1970년대 피아트의 고급 모델이었고 기아산업에서도 조립해서 국내 시장에 팔던 차. 이것도 나중의 기억이니 정확하진 않다. 어쨌든 중요한 건 우리 집에 찾아온 ‘외제차 타는 부자 친척’ 덕분에 동네 친구들한테 한껏 으스댈 수 있었다는 거. 그 시절 외제차는 ‘진짜 부자’의 상징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 시절의 그라나다, 레코드 로얄, 그랜저 같은 차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럭셔리카였다. 일반 사람들은 감히 꿈꿀 수 없는 차, 지금으로 따진다면 메르세데스벤츠 S600 혹은 그 너머 벤틀리만큼의 위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름도 신기한 엠블럼을 달고 나타난 수입차가 변변한 자랑거리 하나 없던 빡빡머리 중학생의 콧대를 단번에 세워줬대도 이상할 건 없다.
우쭐거림은 한나절도 안 돼 끝났다. “이거 타고 드라이브 갈 거야.”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놨는데 철석같이 약속한 부자 아저씨는 누나들만 태우고 드라이브를 가버렸다. “에라잇, 여자만 좋아하는 영감탱이 같으니.” 홀로 남은 나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외제차 피아트가 인상적이었다기보다 외제차에 의해 버려졌다는 배신감이 오랜 기억에 압정을 눌러놓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최초의 수입차에 대한 기억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국내 수입차 시장 20여년 만에 1만배 성장
국내 수입차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이는 그야말로 ‘최근’의 일이다. 내 인생 처음 본 수입차로부터 쓰디쓴 배신감을 맛볼 그 무렵 국내 수입차 시장 규모는 그야말로 초라했다. 한국수입차협회(KAIDA) 자료를 보면, 최초로 공식 통계가 잡힌 1987년 국내 수입 승용차 판매대수는 단 10대였다. 시장점유율은 0.004%. 이로부터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2002년까지 수입차 점유율은 단 1%를 넘지 못했다. 2002년에 공식적으로 수입차 판매 1만대를 넘겨 1.3%를 기록했고 2007년에 5만대 이상을 팔아 5% 벽을 넘었다. 2011년 상반기 현재, 등록대수 기준으로 보면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8% 정도다. 한 해 10대를 팔던 시장이 연간 10만대를 넘나들고 있으니 단순 수치상으로는 20여년 만에 무려 1만배의 성장을 기록한 셈이다. 하지만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 굳이 통계자료를 들추지 않아도 우리 눈으로 딱 보기에 수입차는 너무도 흔하지 않은가.
그러니 수입차를 타는 일이 보통 사람들로서도 그다지 큰 결심이 필요치 않은 일이 된 건 당연지사. 그래서 언제부턴가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요즘 수입차 괜찮은 거 뭐 있어?” “그랜저 살 바엔 캠리 사는 게 낫겠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질문들이지만 그래도 물어보는 성의를 생각해 열심히 컨설팅 아닌 컨설팅을 해주기도 하는데 그리 효과적이진 못하다. 그래서 응대 방법을 조금 달리해보기로 했다. “꼭 수입차여야 해?”라고.
정말 그렇게 묻고 싶어진다. 꼭 수입차여야 하냐고. 수입차 장벽이 낮아졌다고 해서 수입차를 선택하는 일이 꼭 필요한 거냐고.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떠냐고 되묻곤 한다. 왜냐면 지금은 수입차 사기에 그리 좋은 시절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과시하기 힘들다. 수입차를 사는 사람의 심리에는 일종의 허영, 과시욕이 분명히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소위 ‘먹어준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구매 자극 요소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랬다. 아무리 작은 차를 타도 수입차면 대접이 달랐다. 5년 전에 나도 분명히 경험했다. 하지만 수입차가 흔하디흔한 시절이 되어 너도나도(다른 말로 하면 ‘개나 소나’) 수입차 오너가 된 지금 ‘특별대접’을 받기란 언감생심이다. 폴크스바겐 골프를 처음 본 정비소 아저씨가 “이놈의 프라이드는 왜 이리 철판이 단단한겨?”라고 투덜대시더라는 전설의 시절보다도 못하다. 알아봐주지 않는다, 수입차. 수억원을 넘는 스포츠카나 집 한 채 값이 나가는 럭셔리카가 아닐 바엔. 흔해졌다는 건 곧 수입차 타야 할 가장 큰 장점 하나가 없어졌단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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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아베오 해치백/ 한국지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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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보고 ‘프라이드 철판이 왜 이리 단단한겨?’ 하던 옛시절
그리고 이제 국산차 품질이 너무도 좋아졌다. 성능과 품질만으로 따지면 이제 무조건 수입차 편을 들어주기 어렵다. 돈을 더 주고라도 수입차를 사는 이유가 성능이 좋고 디자인이 좋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딱히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
가격은 어떤가? 국산차는 수입차만큼 비싸졌고 수입차는 ‘국산차 수준’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비슷한 등급과 옵션, 품질로 비교해볼 때 수입차가 확연히 비싸다. 그러면 이제 기대해볼 건 애프터서비스다. 한창 수입차 붐이 일던 몇 년 전만 해도 수입차 오너들은 정비소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깍듯한 응대, 카페 같은 고객대기실, 특별한 대접. 하지만 수입차가 한달에 1만대씩 늘어나는 요즘은 특별대우보다는 불편함이 커졌다. 판매가 급증한 만큼 정비소 확충이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약하고 몇 주씩 기다리는 건 보통이고 만족스런 정비를 받기도 쉽지 않다. 동네마다 있는 국산차 정비소와 비교하자니 울화통이 터진다는 오너도 많다. 이런 지경인데도 수입차 역차별은 여전하다. 기계식 주차가 안 된다거나 도선료가 비싸다거나.
이런 이유로 수입차를 사려는 사람을 말릴 수는 없을 거다. 선망하는 브랜드를 갖는다는 만족감을 결코 무시할 수 없고 여전히 성능이나 연비, 유지비 따위로는 설득할 수 없는 특별함을 수입차에서 기대하기 마련이니까. 게다가 나름의 논리도 확고하다. 예컨대 이런 거. ‘이번에 차를 사면 5년을 탄다고 보고 성능 좋은 독일산 디젤차를 살 거니까 국산 휘발유 중형차를 탈 때보다 1년에 기름값을 300만원이나 아낄 수 있으니까 1000만원쯤 비싼 수입차를 사도 국산차보다 결국엔 훨씬 이득이야.’ 딴엔 영리한 계산이겠지만 천만의 말씀, 희망사항일 뿐이라 해도 믿지 않는다. 왜냐면 이미 눈에 콩깍지가 씌어버렸기 때문에.
다행히 아직 콩깍지가 씌지 않아서 재고의 여지가 있다면 여기 추천하는 국산차에 관심을 가져보기 바란다. 국산차로 외제차 기분을 낼 수 있는 ‘레어 아이템’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차는 내가 선택한 차’라고 믿을 자신이 있다면.
월간 <모터트렌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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