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5.05 11:31 수정 : 2011.06.02 16:30

페라리 458 이탈리아

[매거진 esc] 이경섭의 자동차 공인중개소

리터당 5.6km 대 29.2km…아하! 연비의 역설

아, 행복한 고민이다. 페라리를 사는 게 옳은가, 프리우스를 사는 게 옳은가? 눈앞이 아찔해질 만큼 매력적인 차체에 눈 깜짝할 사이 시속 100㎞를 주파하는 당대 최고의 스포츠카 페라리. 그리고 연비가 끝내준다는 친환경 하이브리드카의 선두주자 도요타 프리우스.

대체 무슨 일인가? 상대도 되지 않는 두 차종을 두고 고민을 하다니…. 얼핏 이해가 되지 않을 거다. 페라리 대 람보르기니, 프리우스 대 인사이트 정도라면 모를까 페라리와 프리우스라니. 이건 마치 양문형 냉장고를 살 것인가, 로봇 청소기를 살 것인가를 헷갈리고 있는 모양새 아닌가. 이해를 돕기 위해 처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어떤 것을 사는 게 ‘좋은가’가 아니고 ‘옳은가’다. 맞다. 개인적 취향이나 쓸모 얘기가 아니다. 게다가 오늘의 고민은 피해갈 수 없는 주제, 친환경에 관한 거다.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주차장으로 나와 자가용에 시동을 거는 직장인으로서, 출근길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 속에 앉아서 하릴없이 매연을 내뿜는 운전자로서 지구 환경에 미안하지 않다면 그건 인간도 아니다. 바빠서, 업무 때문에 혹은 교통 상황이 여의치 못해서 등등 이런저런 어찌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차를 몰고 나왔다손 치더라도 북극 하늘에 구멍을 내고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을 녹이는 행위에 일조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면 어쩌면 좋단 말인가? 차를 버려야 할까? 가장 친환경적이라는 차로 당장 바꿔야 할까? 차를 바꿔야 한다면 친환경 하이브리드카밖엔 답이 없는 걸까? 그렇게 지루하고 소극적인 방법밖엔 답이 없는 걸까? 화끈한 페라리를 산다면 문제가 되는 걸까?


도요타 프리우스
환경은 ‘좋은가’가 아니라 ‘옳은가’의 문제

당신이 돈이 많건 적건 사회적 지위가 높건 낮건 상관없이, 설령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같은 할리우드 유명 배우가 아니더라도 지구환경에 도움이 되는 소비를 선택해야 하는 건 오늘을 살아가는 지구촌 구성원으로서의 마땅한 자세다. 차를 살 때도 환경이라는 거룩한 명제를 떠올리면 페라리와 프리우스는 능히 심각한 고민거리가 될 만하다.

자동차와 스피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살 수만 있다면)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페라리. <북극의 눈물>이나 <아마존의 눈물> 같은 지구온난화를 다룬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휴머니스트로서 응당 선택해야 마땅한 친환경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둘 중 하나라면 과연 어느 쪽이 ‘옳은’ 선택이겠나?


하핫. 이런 걸 질문이라고? 400m 지점까지 누가 빨리 달리는가를 다투는 드래그 레이스라면 모를까 친환경을 주제로 한 대결이라면 보나 마나 프리우스의 완승이다…라고 생각했다면 수원 아래 오산이다. 당신이 좀더 사려 깊은 심판이라면 확신에 찬 깃발을 페라리 쪽으로 올렸을 거다. 어째서 그런가?


페라리 458 이탈리아과 도요타 프리우스 제원
페라리 458 이탈리아의 공인 연비는 리터당 5.6㎞. 북극곰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지구상 최악의 연비다. 반면 프리우스의 공인 연비는 무려 29.2㎞에 달한다. 유조차 배기가스 냄새만 맡아도 쌩쌩 달릴 것 같은 환상의 연비. 가격이나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연비가 극과 극을 달리는 둘의 대결에서 페라리가 더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저의는 뭘까. 여기서 심사의 조건이 부여된다. 매일매일 타는 ‘출퇴근+업무용’ 자동차로서의 프리우스 대 일주일에 하루, 주말 오후에만 타는 페라리라면? 이제 답이 도출된다. 기름 퍼마시는 달리기 머신이 휘발유 1리터로 무려 30킬로미터나 달리는 하이브리드카보다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덜’ 달리기 때문이다. 덜 달리는 페라리가 오래 달리는 프리우스보다 친환경적인 까닭.

최선의 환경보호는 차 안 타기

완전 무공해차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때 제아무리 연비가 좋은 차도 매일, 오래 달리면 지구환경을 그만큼 더럽힌다. 반면 아무리 연비가 나빠도 가끔만 달린다면 매일 달리는 연비 좋은 차보다 지구 환경을 더 더럽히진 않는다는 얘기. 이쯤에서 돌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우우, 엉터리 비교는 집어치우시지. 공정한 비교란 모름지기 똑같은 조건, 똑같은 거리, 똑같은 시간을 전제로 해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독자들이여, 이 세상 모든 차가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시간 동안 똑같은 거리를 달린다는 전제야말로 엉터리 아닌가?


이경섭의 자동차 공인중개소
지구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를 ‘안’ 타는 거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건 어려운 문제니 애써 외면하기로 하면 우리가 당면한 모든 문제의 해법은 ‘안’ 하는 게 아니라 ‘덜’ 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쓸데없는 운행을) 덜 하고, (육식을) 덜 하고, (낭비를) 덜 하고 등등. 매일 자가용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도 가족여행을 떠나는 ‘연비 위주’ 운전자보다 지하철 출퇴근을 하면서 주말 서킷에서 타이어를 태우는 폭주족 운전자가 환경에 해를 덜 끼치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당신이 딱 한 대, 페라리와 프리우스 중 뭘 사야 옳을지 고민이 된다면 주저 없이 페라리를 사시기 바란다. 단, 주말에만 잠시 사용한다는 전제 아래.

(객관적으로 페라리가 프리우스보다 더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페라리가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프리우스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글 이경섭/월간 <모터 트렌드> 편집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이경섭의 자동차 공인중개소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