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삼익가구 사자 씨름단에서 활동하던 윤석찬(일어서 있는 이)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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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의 플레이어스] 백두장사 출신으로 유도선수 변신한 청각장애인 씨름선수 윤석찬
나의 방송 데뷔는 씨름 중계였다. “요즘에도 씨름을 하나?”라며 몰지각한 질문을 던진 나에게 회사 선배는 전국 지도를 펼쳐 방방곡곡 도시에 형광색 펜을 칠했다. 그곳에서 씨름이 열린다고 했다. 그렇게 3년 동안 말 그대로 전국 팔도의 씨름장을 누볐다. 그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선수는 씨름장 위의 청각장애인 씨름선수들이었다. 휘슬이 아닌 심판이 직접 등을 쳐서 경기 시작을 알리는 모습을 볼 때면 뭔가 가슴이 아련했다. 세상과 싸우는 고독함이라고 해야 할까? 감탄사를 연발했던 나를 보며 선배는 78대 백두장사 윤석찬(39)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래전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씨름판의 전설로 남았기 때문이다. “한번 본 건 잘 기억하는 편이죠. 하늘이 그런 능력을 주시는 것 같아요. 들리지 않지만 집중력도 오히려 다른 선수들보다 제가 낫죠. 또 민첩성과 유연성을 타고나서 기술에 장점이 있어요.” 전자우편+문자메시지로 주고받은 인터뷰에서 그의 타고난 운동신경을 느낄 수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했던 그는 일반인 학교에 진학하려고 샅바를 잡았다. 코치의 몸짓을 눈썰미로 이해하며 씨름을 배웠다. 하지만 역시나 불리한 점도 많았다. 선제공격권을 놓치기 일쑤였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후배들이 잘 챙겨줬어요. 황규연, 이태현 선수가 아침에 깨워주는 것부터 회의시간도 늘 알려줬죠.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랫동안 함께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는 성실한 노력 끝에 1994년 마침내 백두장사에 올랐다. 그 뒤 11년 동안 실업팀을 오가며 활동했지만 잦은 팀 해체로 마음고생도 많았다. 1992년 삼익가구 사자 씨름단에 입단했지만 팀 해체로 1995년 세경진흥 사자 씨름단에서 활동, 또 팀 해체를 겪어 1997년부터 2002년까지는 현대 코끼리 씨름단에서 활동했다. 은퇴 뒤에는 회사의 배려로 현재 현대중공업에서 일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요즘 농아인 유도 국가대표 선수라는 또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 “씨름 은퇴 뒤 체중 관리 하려고 유도를 시작했다가 우연히 장애인 전국체전에 참가한 뒤로 계속 선수로 활동중이에요. 장애인 체전에는 씨름 종목이 없거든요. 유도가 힘 쓰는 것이나 다리 기술이 씨름과 비슷해서 저한테 유리한 점이 많죠. 기술 차이가 있어서 경기하다가 헷갈릴 때도 있긴 해요.”
김민아의 플레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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