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21 10:40
수정 : 2011.07.2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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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신혜숙 코치와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 김해진(14), 이호정(14·서문여중), 이동원(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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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꿈나무들의 사다리이자 울타리, 신혜숙 코치
“다시! 다시!” 여지없이 음악이 처음부터 다시 흐른다. 실수로 얼룩진 4분짜리 프로그램은 어느덧 30분을 훌쩍 넘겼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넘어지기를 수십번. 건너편에서 신혜숙(56·대한빙상경기연맹 기술위원) 코치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 그 시간, 그 호흡. 16년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초등학교 6학년 김민아의 모습이다. 8년 뒤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둘 때까지 그는 내 기억 속에 ‘가장 무서운 코치’였다.
“선생님!” 피겨계의 대모께 인터뷰를 부탁하자, “대모는 무슨, 소모야 소모!”라며 오래전 제자를 서울 태릉으로 초대했다. 이번 시즌 남녀 피겨 챔피언 김해진(14·과천중)과 이동원(15·과천중)이 그에게 배우고 있었다. 그가 아이들을 가르친 건 올해가 27년째다. 1972년 중3 때 피겨 유학을 떠난 그는 ‘일본 유학파 1세대’이다. 일본 센슈대학 4학년이던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올림픽에 참가한 뒤 은퇴하고, 1984년 한국에 돌아와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팀을 맡았다. 방상아 빙상 해설위원부터 김세열·지현정·정성일·최현경 등… 한국 피겨선수 가운데 그를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가 만든 훈련은 매일 선수들을 괴롭힌다. ‘악셀’ 점프 100번 연속 뛰기, ‘클린 프로그램’(쇼트 프로그램에서 모든 구성요소를 실수 없이 소화하는 것)일 때까지 음악 다시 틀기, 연습 시작과 동시에 ‘더블악셀’ 뛰기, 어떤 점프든 ‘토 점프’로 연결하기 등. 과제를 마치면 선수는 한 단계 성장해 있다.
그의 혹독한 훈련을 100% 소화하는 선수는 김연아(21·고려대)가 거의 유일했다. 2001년 태릉, 11살 김연아가 ‘트리플러츠’(오른발로 얼음을 찍어 점프해 세 바퀴를 도는 점프)를 뛰었다. 정확히 세 바퀴. 다 돈 뒤에 넘어졌다. 분명 다 돌았다. 내 눈을 의심했다. 처음 본 그의 트리플러츠였다. 당시 김연아를 가르쳤던 신혜숙 코치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겁없이 코치 곁으로 다가갔다. “너도 봤니? 2010년 밴쿠버올림픽. 그때 연아가 스무살이야.” 김연아는 신혜숙 코치를 만나 2년 만에 ‘트리플 5종’을 성공하고 2002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에서 노비스 여자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신혜숙 코치도 대한빙상연맹의 최고지도자상을 받았다.
평창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순간, 현장에는 김연아가 있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신혜숙 코치’가 떠올랐다. “김해진을 가르쳐 보고 나도 놀라. 끈기도 있고 긍정적이더라고. 이동원은 내가 처음부터 가르쳤던 선수지. 전혀 서두르지 않아. 인생이 직선인데 가는 방향이 정확해서 속도에 신경 쓰지 않지.” 그는 피겨계의 울타리다. 또 사다리이기도 하다. 피겨 꿈나무들이 높은 곳으로 향하는 사다리에 오르기 전까지 울타리를 만든다.
글·사진 <엠비시 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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