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민초들의 삶은 말이 아닌데 국정은 불통이다. 대통령은 해결사가 아니라 문제의 핵심이 되었다. 대통령 하나로 부족한지 총리까지 거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선거부정과 관련된 여러 의혹들을 깨끗이 털어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대통령이 조금이나마 바뀌기를 원하고 있다. 지금 국민들은 위대한 영도자나 구국의 지도자 같은 대단한 대통령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국민들의 눈으로 보고, 국민들의 마음으로 느끼고, 국민들과 함께 숨쉬고, 그래서 국민들의 언어로 말하는 대통령을 원할 뿐이다. 지금 국민들에게는 국민들과 함께하는 상식적인 대통령이면 족하다.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할 뿐이다. 상식이 정답인데 대통령이 상식을 외면하고 있다. 믿음이 정답인데 대통령이 믿음을 부정하고 있다. 이젠 정말 답이 없다. 믿음이 없는 대통령에게서 믿음이 가는 정치·사회적 해결방안이 나올 리 없다. 상식이 없는 대통령에게서 상식적인 경제 처방이 나올 리 없다.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게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고 했던 조지 버나드 쇼의 역설적인 표현이 그에게 그렇게 잘 들어맞을 수가 없다.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전략적 위장이 아닌 진정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의 언어는 분명 국민들의 언어와 달랐다. 그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국정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약속 뒤집기와 말 바꾸기를 다반사로 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하다. 그가 말하던 ‘원칙’은 이제 국민들에게 ‘대통령의 변덕스런 마음’에 불과하고, 그가 강조하던 ‘신뢰’는 이제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 맹종’ 정도로 들린다. 그가 말하는 ‘법과 질서’는 ‘짐이 곧 법이니 짐의 말을 무조건 따르라’는 말로 번역해야 할 판이고, 그러니 그가 말하는 ‘법치’는 ‘내 말 안 들으면 압수수색하고 구속한다’는 경고와 다를 바 없다. 그는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라고 했고, 대북전단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니 말릴 수도 말려서도 안 되지만 대통령 비판 전단은 형사처벌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대통령이 임명한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은 위원회를 ‘세월호조사방해위원회’로 만들고 있고, 자신이 발동하는 대통령령인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은 ‘세월호조사금지법 시행령’과 진배없다. 대통령 치하의 인권위원장이 앞장서서 인권위원회를 ‘인권부정위원회’로 변질시키고 있다. ‘관피아 방지법’은 뻔뻔스럽게도 ‘정피아 보호와 육성에 관한 법률’로 변질되었다. 교육부총리는 교육을 죽이는 데 선봉장이 되고 있다. 국방부는 불량 무기나 구매하는 ‘국방불량부’가 되어 박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되뇌던 국가안보를 파괴하고 있다. 금융위는 180조원 창조금융 사기극을 연출하고 있다. 리스트는 끝이 없다. 박근혜 정권은 ‘국가해체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박 대통령은 국민들을 순수한 국민과 불순한 국민으로 나누고, 세월호 유가족도 순수한 유가족과 불순한 유가족으로 나눈다. 그것이 선친에게서 배웠을 법한 군사작전상의 각개격파 전략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배후에 분명 무엇인가 또는 누군가 있다는 심리적 피해의식 때문인지, 아니면 더 나아가서 그들이 자신을 해코지하려 한다는 정신병적 망상증 때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정상은 아니다.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국민들만 상대해서도 안 되고, 국민들을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겠다고 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이 ‘그들만의 대통령’이어서는 안 된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