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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22 18:18 수정 : 2016.11.22 19:26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우리가 매주 토요일 따뜻한 모자와 장갑을 준비하고 광장으로 나가는 것은 권력을 잘못 위탁하여 좀비와 흡혈귀처럼 될 것을 우려해서이며, 더불어 하는 시공간 속에서 스스로의 인간성을 회복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발명하기 위함이다. 급하게 가다 망하고 있는 나라는 이제 천천히 가는 것을 연습한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을 거쳐 봄이 올 때까지.

<엘에이(LA) 타임스>는 지난주에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서울의 100만 시민의 시위와 미국 트럼프 후보 당선으로 인한 한-미 동맹 관계 변화 가능성에 대한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인, 박 대통령-트럼프 중 누가 더 걱정일까’라는 표현을 썼다. 실제로 한국의 많은 국민들은 미국 대선 결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미 동맹 관계의 변화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민낯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후 국가의 민낯을 본 한국 국민들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민낯을 보게 되면서 세상 공부를 톡톡히 하는 중이다. “트럼프는 어리석지만 힐러리는 사악하다. 어리석은 것은 미국 시스템이 걸러낼 수 있지만 사악한 시스템은 나를 해칠 수 있다”고 말한 미국 대학생은 자신이 아주 영특하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분노와 혐오로 가득 찬 외톨이들은 자기만능감과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선거 이벤트를 놓치지 않았다. 공화당 전당대회 특집에 출연했다가 호텔로 돌아오던 중 “우리는 트럼프에게 투표해야 해요. 뒤흔들어 놔야만 해요”라는 말을 듣고 이 선거에서 트럼프가 이길 것이라고 예감했다는 마이클 무어는 그런 면에서 참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다.

중산층이 급격하게 붕괴하는 상황에서 우울증에 빠진 국민들이 에너지가 넘치는 조증 대통령을 뽑았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트럼프 당선자가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가능하게 했다면서 아웃사이더 대통령의 당선을 엘리트에 맞선 국민의 승리이며 국민에게 가야 할 것을 나눠 가진 엘리트들이 둘러싼 테이블을 국민들이 뒤엎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제는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적인 레토릭을 사용해서 권력을 얻은 이들이 파시즘의 세상을 열 위험성이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지금 세계 어느 사회보다 선진적으로 이런 위험성을 드러내고 있다. 파국의 조짐은 일국적이 아니라 전지구적이다.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형성된 미국 중심 세계 체제는 1970년대 석유파동 위기 즈음, 아니라면 적어도 2008년 월가의 거대한 금융사기극이 터졌을 때 대수술을 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대수술은 없었고 월가와 미디어, 그리고 군산협력체가 주도하는 체제는 건재했다. 권력과 돈이 세습되는 체제는 지속되었다. 금권선거에 대한 통렬한 비판 속에 기적적으로 버니 샌더스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미국은 트럼프를 선택했다. 미국에서 온 지인은 오바마 대통령과 만난 트럼프 당선자가 대통령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지 몰랐다고 말한 것을 전하면서 그가 1년 안에 큰 사고를 내서 탄핵당하거나 재미없어서 스스로 대통령직을 그만두지 않겠냐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이 탄 배가 침몰하는 상황이 자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감을 못 잡고 관저에 머물렀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광화문에 가는 이유는 망가진 법치국가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동시에 더 이상 대의제가 작동할 수 없게 된 사회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하기 위함이다. 근원적 전환이 요구되는 이런 시대의 상황을 바우만은 인터레그넘(궐위), 최고 권력의 공백기라고 불렀다. 전 왕이 죽고 구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데 새 왕은 오지 않은 공백기, 권력과 정치가 분리된 이런 위험한 기간에 조심해야 할 것은 내 권력을 ‘위’에 위탁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가짜 뉴스와 싸울 것”이라고 말한 페이스북의 저커버그처럼, 적대적 홍보성 기사와 가짜 뉴스가 유포되는 장으로 전락해버린 온라인 사이트를 다시 집단지성의 장으로 만들어가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가 매주 토요일 따뜻한 모자와 장갑을 준비하고 광장으로 나가는 것은 권력을 잘못 위탁하여 좀비와 흡혈귀처럼 될 것을 우려해서이며, 더불어 하는 시공간 속에서 스스로의 인간성을 회복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발명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다른 무엇보다 타자와의 만남/공존을 통해 자기를 보존하고 확산하는 존재라는 레비나스의 이론이 자기실현의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근대적 실존주의보다 설득력을 갖게 되는 때다. 세월호 유가족의 고통에 공감하며 국가의 민낯을 보게 된 시민들은 압축적 경제성장의 속도만큼 압축적 학습을 해내는 중이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서로를 긍정하고 지지하면서 적대하는 타자들과 대면하기 위해 창조하고 포용한다. 급하게 가다 망하고 있는 나라는 이제 천천히 가는 것을 연습한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을 거쳐 봄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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