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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7.05 18:12 수정 : 2016.07.07 10:16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아침에 스마트폰을 켜니 책 광고 메일이 눈에 띈다.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너무 고민할 것이 많다 보니 이런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영국 국민들의 유럽연합(EU) 탈퇴 투표에 이어진 정국은 국민국가 시대의 파탄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이 사건이 국민국가의 구태 정치를 끝내고 새로운 글로벌 시민 정치, 그리고 상부상조하는 주민자치 정치의 장을 활짝 열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국민들의 불안을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해온 선동과 술수의 정치, 적대와 배반의 정치를 더욱 강화할 것인가? 정치 도박에 빠진 권력의 무능과 횡포는 영국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국가권력은 자체의 무능함을 숨기기 위해 연예계 스캔들부터 비리 폭로에 이르기까지 온갖 험한 뉴스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국회의원들의 ‘가족 채용’이 특권남용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돈을 수시로 끌어댈 수 있고 인맥이 든든한 노련한 정치인들은 국회의원이 되어도 가족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서영교 의원 같은 경우, 온 가족의 헌신으로 민초가 국회의원이 된 경우가 아닌가? 개발독재시대의 ‘미덕’이었던 국가와 가족에 대한 헌신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서 악덕이 될 소지가 많아졌다. 이번 계기에 서 의원이 가치와 원칙에 충실한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몸을 다시 만들어 가길 바란다.

이제 정치는 글로벌 자본이 주도하는 세상을 염두에 두고 가야 한다. 좋든 싫든 그 복잡한 층위의 현실을 보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과 유럽연합이 일정하게 그런 정치를 하고자 했지만 관료화된 현재로서 큰 기대는 힘들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최근 국가를 소환하는 젊은 시민들의 등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올해 4월 미국 청소년들은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소송을 해서 승소했다. 원고인 시애틀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 8명은 연방정부가 헌법 제5조의 ‘동일하게 보호받을 권리’를 위반하여 청소년을 차별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실패함으로써 ‘건강한 기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이들 외에도 5개 주에서 유사한 소송이 진행되며 승소가 이어지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청소년이 주축이 된 시민 900여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정부는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이름으로 자연자원과 시스템을 보호할 의무를 지닌다”는 공공신탁원리를 위배한 것을 법정이 인정한 것이다. 나는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키는 정책을 펼치는 정부를 소환하는 청년들이 조만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길 기대한다.

또 다른 의미 깊은 움직임이 미국 스탠퍼드 대학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미국 명문대학 입학 파티에서 자주 일어나는 성폭행은 관행과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고질적으로 이어져 왔는데 최근 시민들의 판사 소환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 현장에서 붙잡힌 가해자에게 판사는 검사가 구형한 6년형의 10%인 6개월형을 선고하였다.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술에 취한 상태였고 앞길이 창창한 청년의 인생에 가져올 “가혹한 영향”을 고려해서 그런 판결을 내렸다. 법정에서 피해자의 생생한 진술로 불이 붙은 판사 소환 청원은 사흘 만에 50만명의 서명을 받아냈고 거국적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소환 운동은 스탠퍼드 로스쿨의 교수가 맡아 진두지휘하면서 고질적인 대학 내 성폭력 문제의 고리를 끊는 움직임으로 번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젊은 시민들에 의한 즐거운 소환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직장도, 살 집도 가정도 이루기 힘든 2030 청년들이 소환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월24일 2030세대 7명이 마이크를 쥔 ‘7분 마이크’가 산울림 소극장에서 진행되었고 온라인을 통해 대구·제주 등의 청년들도 함께하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릴 청년들의 힘을 모아갔다. 7월14일 목요일 저녁 7시에는 청년들이 ‘어른들’을 소환한다. 특히 나름의 공공재를 관할하는 지자체장들을 소환할 것이라고 한다. 그간 기성세대가 미래세대 자원을 써버린 것을 인식하고 미안해하면서 그들에게 공공재를 돌려주는 움직임이 마침내 일어날 수 있을까? 성급한 일자리 정책이나 세대간의 비난을 넘어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환대와 호혜의 자리로 이어질 소환의 정치는 새로운 글로벌 정치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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