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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15 20:39 수정 : 2016.03.15 21:08

대한민국이 가장 희망차고 풍요로운 시절, 이들은 부모 세대가 이룬 경제기적과 형/언니 세대가 이룬 정치기적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문화의 시대를 열고자 했다.

1968년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골목길이 살아 있던 서울 면목동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한 그녀는 공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은 예술가가 되었다. 뉴욕에서 예술가 거주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중 ‘약탈품’으로 가득한 제국의 미술관들을 ‘접고’ 싶어졌다. 2001년 ‘접는 미술관’ 프로젝트로 뉴욕, 브리즈번, 파리를 돌았다. 귀국해서 동료와 제자들과 동네 연구를 한 후 2006년 ‘테이크아웃드로잉’을 탄생시켰다. 외부 지원에 연연하지 않고 독자 운영을 해보자는 목표로 미술관 겸 카페 겸 예술가 거주 프로그램이 동시 진행되는 복합 공간을 연 것이다. 그간 거주 프로그램 참여자만 해도 60팀. 문화 시민들이 북적대는 그곳은 카페 미술관의 새로운 모델로 유명해졌다.

1977년 그는 강남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8학군’과 가족은 그의 ‘끼’를 반기지 않았지만 그는 날로 화려해지는 강남에서 신나게 노는 몸을 만들었다. 버클리 음대로 진학한 그는 2001년 ‘사이코 월드의 싸이’라는 음반을 들고 귀국했다. 그 음반에서 “거짓과 가식의 우거진 숲을 헤쳐 왔어. 내가 왔어, 드디어 싸이, 길들여진 원숭이가 아닌 싸이, 앞뒤 다른 항상 같은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가식적인 분들, 냉큼 잽싸게 꺼져”, “위선과 가식으로 똘똘 뭉친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일류를 가장한 삼류투성이”라거나 “양지에선 신사 음지에선 변태였던 니가/ 일등인 거야 전통의 그 일부는 폐단의 계승인 거야/ 멀쩡한 놈 미친놈 되는 세상인 거야”라면서 돈만 아는 속물 문화를 신나는 랩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도시사회학자 서우석은 이때의 싸이를 “강남 밤 문화의 김지하”라고 불렀다. 많은 곡은 금지곡이 되었고 그 이후로 대마초와 군복무 문제로 계속 시련을 겪은 후 2012년 ‘강남 스타일’로 세계 스타가 되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 두 예술가가 지금 만나고 있다. 싸이가 테이크아웃드로잉의 건물주가 된 것이다. 애초부터 문화와 사람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임대차법과 젠트리피케이션(지역의 대지주화, 부동산 투기의 한 방식) 광풍에 휘말려 둘은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용산 참사 이후 폭력적 철거는 금지되었건만 이곳에는 이미 여러 차례 용역들이 다녀갔다. ‘난센여권’(무국적자들에게 발급하는 국제 여행증명서)을 주제로 이주자의 삶을 작품으로 다루었던 기획자들은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었다. 예술가란 태생적으로 난민이 되기로 한 것이 아니겠냐며 그녀는 담담했다. 단골가게가 사라지면 함께 일군 삶의 향기까지 사라진다는 것을 아는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죽치게 되면서 이곳은 자연스럽게 예술가 레지던시 장소가 되었다. 매일 밤 기발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재난 연구소가 차려졌으며,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비자발적 이주’ 관련 법제화 포럼이 열렸다. ‘재난 유토피아’, 그렇다. 한남동 카페는 지금 소통과 호혜, 기억과 예술이 살아나는 창조적 공유지대가 되고 있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싸이가 이 건물을 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위선과 가식을 떨쳐버리자고 말하기 시작한 세대가 아닌가? 예술의 씨를 말리면 사회도 사라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세대이다. 자녀 세대를 위해서 이제 그 세대가 나서야 할 때이다. 딸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회사 지분 99%를 기부한 저커버그를 따라하라는 것은 아니다. 새 건물을 짓기 전까지 이 동네 미술관을 지켜봐주면 어떨까? 그래서 급격하게 후진국으로 추락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선진국형 임대 사례를 만들어내면 좋겠다. 돈이 돈을 버는 세상, 사람이 쓸모없어질 세상이 오고 있다. 알파고 건으로 집단 우울증에 걸린 국민들이 많다고 한다. 사람의 숨결이 살아 있는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챔피언’이라도 다 함께 불러볼까? 운명적 만남 중인 두 예술가로부터 올 좋은 소식을 기다려 보려 한다.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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