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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11 19:19 수정 : 2011.08.12 17:36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40대 증권사 차장이 주식 폭락으로 인한 투자손실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런던에서 시작한 시위는 영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사건의 배경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자본주의 위기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시장의 실패’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한 현 위기는 ‘국가의 실패’를 말해준다. ‘사람’ 편에 서야 하는 국가기구가 ‘시장’의 편에 서면서 생긴 예상된 파국이다. 대안은 어디에 있을까? 광폭한 롤러코스터에서 일찌감치 내린 귀농자 마을은 혹시 좀 다른 삶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11일 아침에 무심코 본 텔레비전에서는 ‘산골 6남매의 여름 일기’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열일곱살의 큰딸부터 두살배기 막내까지 여섯 자녀를 둔 가족의 일상은 나이 든 세대에게는 낯익은, 그러나 급격히 낯설어진 대안적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각자 맡아 하는 집안일, 길 잃은 아기 고라니를 보살펴 다시 산으로 보내주는 가족 프로젝트, 초등 3학년짜리 넷째가 만든 주먹밥을 들고 집 앞 정자에서 벌이는 아이들만의 파티, 이 모든 장면은 그 자체로 행복한 가정이자 훌륭한 학교이자 생태적 사회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훌륭한 삶의 질서를 주관하는 어머니의 고민은 아이들 대학 학비 마련이라고 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적지 않은 ‘선각자들’이 용감하게 귀농을 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다음 단계는 생태주의로 가게 되어 있음을 진작에 알아차렸던 것이다. 십년 전에 귀농한 한 지인은 그 실험이 한창 진행중이라면서 아직은 마땅히 내놓을 대안이 없다고 머쓱해했다. 실은 아름다운 자연을 옆에 두고도 컴퓨터 앞에서만 지내는 이웃집 홈스쿨러 아이를 보면 안타깝고, 대부분 자녀들을 다시 롤러코스터를 타라고 기성체제로 돌려보내는 현실에 힘이 빠지기도 한다고 했다.

귀농한 부모들은 ‘인쇄 기술’ 시대의 ‘국정 교과서’로 배운 세대이니 ‘디지털 시대’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새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면에서 최근 북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숲 유치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숲 유치원은 숲을 교과서로 삼는 학교이다. 아날로그적인 원체험을 담아낼 간결하고 단순한 환경이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된 교육운동이기도 한데, 건물이라고는 소박한 대피소뿐이다.

공기, 빛, 물, 에너지, 소리, 사물, 사람의 총집합체인 숲에서 아이들은 거미줄에 맺힌 이슬방울을 관찰하고, 비 오기를 기다려 진흙을 빚으며, ‘나만의 나무’에 정을 붙인다. 숲 유치원에서 아이들은 온전히 감각으로 즐기고 배운다. ‘교사 없는 교육, 프로그램 없는 교육’을 지향하는 이곳에서 스스로 삶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낼 줄 아는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이 펼치는 세상에 초대받은 행복한 손님들이다. 귀농한 마을 주민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학교가 아닐까? 근처의 농약이 문제라면 그 자체도 아이에게는 도전적 주제가 될 것이다.

더 이상 실패한 시장과 국가의 틀에 매이지 않는, 그래서 인류가 직면한 난제를 스스럼없이 풀어낼 다음 세대를 상상해본다. 디지털 시대의 아이들은 원하기만 한다면 거대한 지식 보관소에 수시로 출입하면서 원하는 탐구를 할 수 있으며, 세계 석학의 강의를 언제든 들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내부에서 이는 욕구와 열정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교사는 좋은 삶을 살고 싶은 동기와 의지를 갖게 하는 어른이고, 절실한 삶의 문제를 놓고 함께 고민할 동지이자 멘토일 것이다.

인쇄 기술 시대의 교과서에 매이지 않고 ‘숲 교과서’와 ‘마을 교과서’와 ‘e-교과서’로 성장한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 10년 안에 100가지의 혁신 기술로 1억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언한 <블루 이코노미>의 저자 군터 파울리도 바로 이렇게 자란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거침없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한가지, 숲 유치원은 실은 도시에서도 가능한 학습생태계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들의 상상력과 상호 협력일 것이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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