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에 간판 앵커로 등극해 20여년 스포트라이트 받아온 백지연 앵커가 권하는 ‘자기 극복법’
백지연(47) 앵커는 여전히 바빴다. 지난 1월18일 저녁 7시, 케이블 채널 <티브이엔>(tvN)의 토론 프로그램인 <끝장토론>의 장시간 녹화를 마치고 녹초가 됐을 법한 그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백씨는 단박에 인터뷰어로 참석한 대학생 조윤호(22)·주영민(24)씨를 알아봤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시민토론단으로 참석했던 인연이란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썰미가 매섭다. 또다른 인터뷰어 주정민(21)씨에게는 “어떻게 인터뷰에 참여하게 됐느냐”고 물었다. “팬은 아니지만 항상 당당한 모습에 그 이면이 보고 싶었다”는 솔직한 답변에 백씨는 밝게 웃었다. 인터뷰는 구수한 커피와 빵 향기 속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못해서 아쉬워라, 김정일 인터뷰
주영민 <끝장토론> 정봉주 전 의원 편에 시민토론단으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길고 치열한 녹화 내내 남다른 ‘포스’를 뿜던 백지연 앵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오늘 녹화는 어떠셨나요?
백지연 오늘은 이동관 전 청와대 언론특보와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맞붙었어요.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을 돌아보고 남은 1년의 정국을 예측해보는 자리였는데, 섭외하기 어려웠던 인물들인 만큼 치열한 공방이 오고 갔죠.
조윤호 워낙 인터뷰를 많이 하시잖아요. 인터뷰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백지연 토론이나 뉴스 진행 등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인터뷰는 ‘내가 사랑하는 일’이에요. 현재 진행하고 있는 <티브이엔>의 <피플 인사이드>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섭외력 강한 프로그램으로 뽑히기도 했어요. 국내 연예인·정치인뿐만 아니라 미국 <시엔엔>(CNN) 메인 앵커 앤더슨 쿠퍼, 북한에 억류되었던 피랍 기자 유나 리, 힙합그룹 ‘블랙아이드피스’의 리더 윌 아이 앰, 팝 음악의 거장 퀸시 존스 등 세계적으로 인터뷰하기 힘든 사람들을 만나봤죠. 이렇게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의 삶에서 ‘에센스’를 뽑아 대중에게 전달한다는 보람은 대단합니다. 그 인터뷰를 통해 힘을 얻었다든지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요. 섭외도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니 나는 무슨 복을 타고났나 싶을 때가 많습니다.
주영민 자신만의 인터뷰 철학이 있다면요?
백지연 저는 인터뷰할 때 질문지 없이 해요. 가능한 한 인터뷰 전에 그 사람에 대해 최대한을 알고 들어가려고 노력하죠. 제겐 그것이 인터뷰이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는 상태에서 하는 질문과 뭘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질문은 천지차이예요. 돌아오는 답변도 다를 수밖에 없죠. 그 사람을 만나기 직전까지 준비하고 일단 만나면 그 사람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게 하죠. 준비된 것에 짜맞추느라 그에게서 내 시선이 떠나는 순간, 진짜 대화를 할 수 없게 되거든요.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삶의 바다’에 다이빙해 들어가서 그 삶의 에센스를 끌어온다는 느낌으로 인터뷰를 합니다. 인터뷰 대상에 맞춰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편하게 해주고 진짜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영어로 하는 것이죠.
주영민 <피플 인사이드>를 진행한 지도 3년인데요. 인터뷰 대상을 보면 일관된 코드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각자 삶에서 열정을 뿜는 사람들’인 듯한데,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나요?
백지연 제가 지금까지 7권의 책을 썼는데요. 가장 최근에 쓴 책이 <크리티컬 매스>예요. 이전의 책에는 제 생각을 썼다면 <크리티컬 매스>에는 제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했죠.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신의 역치를 넘어선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폭발이 일어나기 위한 임계치를 뛰어넘는 순간이 있었기에 소위 ‘성공’을 한 거죠. 제가 자꾸 ‘소위’를 붙이는 것은 제가 ‘성공’이란 말을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아무튼 어느 단계에서 한 계단만 더 오르면 되는데 그걸 못 참아서 성공을 못하곤 하거든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해도 노력이 필요하고 우리처럼 은수저 없이 태어났다면 더욱더 노력이 필요하죠. 식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불변의 진리예요.
주영민 성공이란 말을 왜 싫어하시나요?
백지연 성공이란 말을 재정의하고 싶어요.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장 잡아서 돈 많이 벌고 명예와 권력을 얻으면 성공이라고요? 성공했냐, 내 인생이 행복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꼴까닥’ 죽기 직전에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윤호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인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꼽았었는데요.
백지연 지난해 5월 <피플 인사이드> 100회 기념 기자회견 때 누구를 가장 인터뷰하고 싶냐고 물어서 그렇게 답했죠. 진심이었어요. 그때 꼽은 이유가 둘인데, 일단 살아있는 인물 중 한반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한 명이고 둘째로 건강이 안 좋으니 빨리 하고 싶다는 것이었죠. 결국 인터뷰를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아쉽네요.
수습시절 앵커 발탁, 엄청난 시선들
조윤호 20대에 이미 <문화방송> 메인 뉴스인 <뉴스데스크>의 앵커가 됐으니 어린 나이에 다 이뤘다, 이렇게 보는 시각이 많잖아요. 너무 일찍 이룬 까닭에 힘들었던 점도 있었나요?
백지연 왜 없었겠어요. 아나운서로 입사한 지 5개월 만에, 아직 수습사원일 때 9시 뉴스 앵커로 선발됐어요. 대학을 졸업한 지 3개월밖에 안 됐을 때죠. 선발까지 내부에서 치열한 오디션을 치른 뒤 기용이 되는 건데, 어쨌든 결과가 매우 파격적이었죠. 층층시하인 수습사원 처지에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9시 뉴스를 진행하게 됐으니 조직 내에서 죄없이 미안해하며 지냈죠. 늘 조심한다고 조심해도 조직에서 바라보는 눈이 있으니 힘들었어요. 실수 한 번도 도드라지게 보였죠. 선발되는 것보다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23살에 9시 뉴스 앵커를 시작해 32살까지 20대를 몽땅 9시 뉴스에 바쳤어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죠. 뉴스 시청률이 30%이던 시절이에요. 임신을 하고도 9개월까지, 77사이즈 정장 입어가며 뉴스 진행을 했죠. 회사-집, 회사-집 다니며 사생활도 없이 살았고요.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포기해야 했던 것도 많았습니다.
조윤호 20대 입장에서는 뭔가 빨리 이뤄야 할 것 같고 준비해놔야 할 것 같아서 마음만 조급한 경우가 많습니다.
백지연 가정·학교에 의지해 생활하다가 나 혼자 처음 서는 시기라서 20대는 힘이 듭니다. 안 가본 길을 가야 하고 앞날은 불확실하니까 힘이 드는 거죠.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지금 보는 것보다 삶은 그렇게 짧지 않다는 거예요. 오히려 굉장히 길죠. 긴 호흡으로 가도 돼요. 20대에는 끊임없이 뭔가 시도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저도 제 능력을 몰랐듯, 여러분도 여러분의 능력을 모를 수 있어요. 심리학도로 살려고 했던 제가 우연히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의 아나운서 시험에 동시에 붙으면서 “어, 나도 모르는 능력이 있었나?” 하고 놀랐죠. 뭔가 시도를 해봐야, 열 번은 해봐야 알 수 있어요. 아, 내가 노래를 이승철씨처럼은 못해도 이소라씨처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구나, 이런 식으로 말이죠.
주정민 좋은 대학을 나와서 지상파 방송국 두 곳의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하고 탄탄대로를 걸어온 백지연 앵커의 삶을 생각하면 엘리트 의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백지연 엘리트가 뭔가요?(웃음) 여러분의 선입견, 알아요. 저는 탄탄대로만 걸어와서 항상 성공한 것 같죠? 기득권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이런 개념, 받아들이지 않아요. 엘리트주의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내가 엘리트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요. 하늘 아래 인간은 모두 고만고만합니다. 미련해봤자, 똑똑해봤자, 가져봤자 하늘 아래 인간이에요. 영국에서 최고의 도서관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 앉아 생각해보니 여기 있는 책의 몇 퍼센트나 내가 읽었을까, 싶더라고요. 배워봤자 얼마나 배우고 똑똑한들 얼마나 똑똑하겠어요. 누군가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있다면 한심한 거죠. 그런 사람 앞에서 주눅 들 필요 전혀 없습니다.
50대에는 20대처럼 여행을 떠나리
주정민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유리천장’도 있었나요?
백지연 있죠. 생각해보세요. 여자에게는 붙는 형용사부터 달라요. 남자가 똑똑하게 말하면 ‘의사표현이 분명하다’고 하지만 여자는 ‘시건방지다’고 하죠. 토론 프로그램을 남자가 당당하게 진행하면 나쁘게 말해봤자 ‘날카롭다’고 하는데 여자에게는 ‘세 보인다’고 하죠. 그런 시선부터가 우리 사회의 유리천장으로 작동해요. 남자 진행자가 하는 말은 그 사람의 말로 들으면서 여자 진행자가 하는 말은 ‘누가 써줬겠지’ 생각해요. 내 능력만으로 고스란히 평가받기 어렵죠.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면 되겠어요? 대중 일반이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시각, 내가 발버둥친다고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상황을 인정하고 남들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내 강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죠. 그렇게 24년을 살아왔어요. 나름대로 보람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정민 그럼 반대로 여성이어서 이점도 있었나요?
백지연 지상파 방송국에서 메인 뉴스 앵커로 어린 나이에 빨리 들어간 것, 그건 여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보통 한국에서 메인 뉴스 남성 앵커는 나이가 많아요. 23살은 여성 앵커가 아니었다면 진입할 수 없는 나이였죠. 여성이라 뉴스의 꽃이다, 장식품이다 여기면서 마구 흔드니 그 안에서 유지하는 것도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긴 했지만요.
주영민 주변의 시기와 질투 때문이든 유명세 때문이든 상처받을 일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요?
백지연 사람들이 남에 대해 참 너무 쉽게 이야기하죠. 그런 게 굉장히 힘들기도 해요. 내게 선입견을 갖거나 좀 알려졌다는 이유로 함부로 말하죠. 그런 행동은 제 삶의 질을 아주 나쁘게 만들어요. 힘들지만 그냥 견디는 편이에요. “아, 이 사람은 날 모르니까 저렇게 말하는구나’ 하고 넘기려고 노력해요. 저 알고 보면 미련하리만치 성실히 사는 사람입니다.(웃음)
주정민 어떤 상황에서도 백지연 앵커는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한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런 자신감의 동력은 무엇인가요?
백지연 집에서는 막내예요. 부모님과 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집에서는 아직도 저를 ‘애기’라고 해요. 아마 기본적인 유전자 캐릭터는 의연할 수 없는 성격일 거예요. 의연함, 자신감은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은 허들넘기와 같아요. 누구나 처음부터 1m짜리 허들을 넘는 사람은 없죠. 그런데 일단 한 번만 넘고 보면 ‘나는 1m짜리 허들을 넘는 사람’이 돼요. 그건 상징이죠. 그때부터 ‘나는 할 수 있구나’라는 자기 확신과 자신감이 생기고 1m30㎝에도 도전하게 되죠. 자존감은 인간에게 건강한 뿌리와 같아요. 죽어라 노력하며 살아도 때로는 불안하고 두렵고 아프고, 또 태클이 들어오고….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태클이 들어오죠. 그런데 그걸 뛰어넘다 보면 더 건강한 자신감, 자존감이 선물로 와요. 그렇게 자존감이 생긴 사람들은 자신만큼 남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런 사람이라면 댓글에, 트위터에 험한 말 못 써요. 그도 그 나름의 아픔과 이유가 있겠지, 라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남을 때리는 것은 더더욱 안 하게 되죠. 건강한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언어폭력, 육체적 폭력을 쓸 이유가 없습니다.
주영민 모범답안처럼 살아왔는데 일탈해본 적은 있나요?
백지연 저 정말 재미없게 살아왔어요. 일탈을 해본 적도 없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숙제 다 해놓고 노는 스타일이었어요. 방학이 시작해도 방학숙제를 3일 동안 다 해놓고 47일을 노는 식이었죠. 대학 다닐 때까지 학교-집만 오가고 회사 들어가서는 회사-집만 오갔죠. 부모님이 첫 학기 학비만 대주신다는 철학을 갖고 계셔서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했고요. 과외도 학원도 절대 안 된다고 하셔서 당시 유일한 영어 방송이었던 <에이에프케이엔>(AFKN)을 보며 영어 공부를 했어요. 그때 바버라 월터스 같은 여성 앵커를 보면서 “나도 40대에 뉴스 앵커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을 20대에 하게 된 거죠. 40대에 할 줄 알았던 일을 20대에 했으니 이제 50대에는 20대의 일을 해보고 싶어요. 노트북 하나 들고 세계 각지의 섬을 여행하며 작가로 사는 꿈을 꿔봅니다. 진행·정리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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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난 그녀, 싫지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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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8일 저녁 서울 용산구의 한 커피숍에서 청춘들을 만난 백지연 앵커가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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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 아나운서를 처음 본 건 <끝장토론>에 시민 토론단으로 참여했을 때였다. 방송에서 보이는 그대로, 카메라가 켜지지 않은 곳에서도 그녀는 프로였다. 진행하기도 바쁠 텐데 음향, 화면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 어떤 또다른 면이 있을지 궁금해서.
그런데, 그런 거 없었다! 아, 있다면 먹는 걸 매우 좋아한다는 것 정도? 그 외에는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였다. ‘객관적으로’ 정말 잘났다. 게다가 강한 자기 확신과 자신감까지! 청춘상담앱 인터뷰어들은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하나같이 “어우, 너무 잘났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사실 백지연 아나운서가 해준 말이 썩 공감되지는 않았다.
너무 나쁘게 말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그녀와의 만남은 정말 즐거웠다. 그렇게 잘났는데도 놀랍게도 재수없지가 않았다. 시기, 질투 이런 거보다는 그냥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다 보니 20대 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는 그녀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제 20대에 못한 일을 하고 싶다며 즐거워하는 그녀의 표정도 떠오른다. 그녀의 청춘을 응원한다! 조윤호
당당하게 ‘진짜 나’를 보여줘
우리가 살면서 겪는 비극 중 하나는 내가 진짜로 무엇인지보다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의 드러난 모습에서 이해하기 쉬운 부분만 골라내어 나를 평가할 뿐인데, 우리는 그 평가를 ‘나에 대한 정의’라고 조급히 과대평가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러면 안 되겠지, 저러면 안 되겠지 한다. 23살 이후 20여년간 대중의 시선 속에서 살아온 백지연 아나운서는 어쩌면 누구보다 ‘진짜 나’의 자리가 비좁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자기 논리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고난을 모르는 엄친딸이나 손쉽게 성공한 엘리트 정도로 바라보는 시선들에 대해 그녀는 뜨거운 침묵을 지키며 자신의 도전을 지속해나갔고, 그런 삶으로 시선들에 대답하였다. 나는 그녀가 해준 여러 조언보다도 그 당당한 기상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 인생 뭐 어쨌다고. 그냥 제멋대로 멋지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주영민
1m 허들, 한 번만 넘어보자!
1m짜리 허들을 못 넘었다. 그리고 ‘1m 허들조차 못 넘는 사람’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기서 두 가지 양상을 띤다. 비관하고 그치든가, 다시 한 번 뛰어보든가. 용기내서 다시 한 번 뛰어본 사람은 두번째 맞이하는 실패에 더 큰 좌절을 맛보게 될 수도 있다. 세번째는 그보다 더 큰. 그럼에도 네번째 도전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을 맛본다. “나도 1m 허들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백지연씨가 강조했던 ‘크리티컬 매스’의 순간이다.
혹시 나는 내 인생에서 ‘실패’라는 것을 경험하고 ‘난 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한계선을 그은 적은 없었을까. 좌절하고 조급해하는 대신 용기와 끈기를 가지려 한다. 순간을 이겨낸 자만이 무한한 자신감과 함께 1m30㎝로의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으니. 주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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