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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20 11:33 수정 : 2011.11.09 17:06

완벽한 킬러의 정확한 돼지잡기. 일러스트레이션 김윤재

[esc]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19. 보고 만지며 자연에서 요리 배운 페드로…장차 큰 요리사 되리라

영국 런던에서 포르투갈까지 가는 데 차로 꼬박 3박4일이 걸렸다.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를 지나 스페인을 거쳐 남쪽으로 남쪽으로 달렸다. 몰고 간 캠퍼 밴은 30년도 넘은 골동품이라 최고 시속이 95㎞ 정도. 그나마 2시간 달리고 10분씩 엔진을 쉬어 주어야 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빨리 갈 욕심을 접고 느긋하게 달렸는데 이것이 색다른 여행의 맛이었다. 고속으로 질주할 때는 도로 표지판과 앞차 뒤꽁무니만 보였지만 쉬엄쉬엄 가다 보니 산과 들, 마을과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밤낮으로 뛰어다녀야 했던 방송국 생활, 눈코 뜰 새 없이 흘러온 요리학교 유학…. 잠시 달음박질을 멈추고 숨을 돌리고 싶었다.

포르투갈 여행길에 나선 이욱정 피디.

나흘째 날 저녁 드디어 요리학교 친구 페드로의 고향 포르탈레그르에 도착했다.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규모의 소도시였다. 산등성이 가장 높은 곳에 성곽과 교회가 보였고 아래 광장을 중심으로 붉은 기와를 얹은 하얀 집들이 모여 있었다. 행정구역상 시라고 이름 붙이기는 했으나 주택가를 벗어나면 바로 포도밭이고 올리브 나무 천지였다. 페드로의 온 가족이 문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남부 유럽에서는 포옹을 하고 양 볼에 키스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사라고 <론리 플래닛>에서 얼핏 읽은 기억이 있었기에 먼저 페드로 어머니를 가볍게 안고 매뉴얼대로 인사를 드렸다. 옆에 서 계신 아버지는 거구의 체구에 면도를 자주 안 하시는지 꺼끌꺼끌한 턱수염이 난 분이셨다. 내심 께름칙하긴 했지만 역시 ‘남부 유럽’식 인사를 올리려는 찰나, 아버지가 급뒷걸음질 치시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주 당황한 안색으로. 이런, 내가 알았나! 포르투갈에서 남자끼리는 혈육이거나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악수를 하지 뽀뽀까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래서 여행안내서는 함부로 실전에 응용하면 안 된다.

페드로네 집에 몰려든 외가·친가·사촌·조카·대모·대부…

본격적인 문화 체험은 다음날부터였다. 흔히들 서구 사회는 핵가족과 개인주의 때문에 가족 간의 유대가 아시아처럼 강하지 않다고들 한다. 유럽의 대도시에서는 그럴 수 있으나 최소한 페드로의 동네에서는 그건 도대체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페드로가 런던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이 돌자, 일가친척들이 페드로네 집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외가, 친가, 사촌, 어린 조카에서부터 대부, 대모, 대부와 대모의 자식들까지, 나중에는 촌수를 따지다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페드로와 같이 마을 길을 걷다 보면 10분 간격으로 혈육 또는 유사 혈육관계의 사람들을 만났다. 어제 만난 것이 분명한데도 뭐가 그렇게 반가운지 몇 번이고 볼에 키스를 하고 쓰다듬고 땡볕 아래 서서 끝도 없이 수다를 떤다. 포르투갈 말은 모르지만, 이들이 어제와 다른, 무언가 새롭고 중요한 대화 거리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확실했다.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다. 이 동네 사람들에게 있어 수다 떨기만큼 인생에서 큰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요리였다.

이들에게 요리의 의미는 좀 색달랐다. 와일드했고 원초적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페드로가 나에게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묻기에 고기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다. 페드로는 시장에 가는 대신 할아버지 농장으로 차를 몰았다. 농장에 도착한 페드로는 대부의 사촌인지, 대모의 조카인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두 친구를 대동하고 농장 한쪽의 돼지우리로 향했다. 우리 안에는 살이 오를 대로 오른 큰 암퇘지들이 방목 중이었다. 돼지들은 곧 시작될 습격의 기미를 알아차리고는 벌써부터 꽥꽥거리며 이리저리 날뛰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농활을 갔을 때 마을 분들이 돼지를 잡아주셨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기억으로는 참 오랜 시간 장정 여럿이 고생했던 것 같았는데 페드로와 ‘킬러’들은 빈라덴의 은신처를 기습하는 네이비실의 특공대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식간에 ‘타깃’을 우리 밖으로 끌어냈다. 밖에는 페드로 아버지가 날이 번뜩이는 도축용 칼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고 잠시 후 멀찌감치 떨어져 두 눈을 감고 떨고 있던 내 귀로 오리지널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콧노래 부르며 돼지 해부…부자는 자연스럽고 노련했다

페드로 부자의 놀라운 면모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집채만한 암퇘지를 창고에 가져가 매달 때만 해도 영화 <저수지의 개들>이 자꾸 연상되어 끔찍하기만 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이 짝이 되어 부위별로 해체하기 시작하는데 이건 움직임 하나하나가 도축이 아니라 예술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온 정성을 다해 머리를 자르고 뼈를 절단하고 살을 발라내는 부자의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으로 쓴다면, 그레고리안 성가를 배경음악으로 집어넣고 싶을 정도였다. 조리시간, 여느 학생들이 커다란 고기 재료를 앞에 두고 어떻게 트리밍(필요한 부위만을 잘라내는 작업)해야 할지 몰라 쩔쩔맬 때 페드로가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다듬을 수 있었던 데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신선한 고기를 장작불에 구워 내온 바비큐 요리를 서른 명도 넘는 대가족이 기다란 야외식탁에 앉아 나누었던 그날 저녁은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한 교실에서 공부할 때는 어리바리해 보이기만 하던 페드로가 왠지 특별해 보이던 날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다수의 요리학교 학생들과 요리사들은 자신의 도마 위 식재료들이 살아있었을 때 어떤 모양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이 재료를 접하는 곳은 자연이 아니라 슈퍼마켓의 냉장 진열대이기 때문이다. 이미 부위별로 해체되어 박스에 포장되어 진열대에 놓인 고기는 무엇을 먹고 어떻게 길러졌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도축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심지어 요리사들은 자기가 만드는 샐러드의 채소들이 언제가 제철인지도 헷갈리기 십상이다. 마트의 채소들은 바다 건너온 수입산이거나 온실에서 사시사철 재배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촌에서 자란 페드로 같은 요리사는 다르다. 그는 좋은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릴 적부터 보아왔고 두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포르투갈을 떠나 집에 돌아오는 길, 친구 페드로가 장차 큰 요리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질 허브의 진짜 향이 어떤 것인지, 야생의 블랙베리가 돼지고기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요리책이 아니라 자연에서 배울 수 있었기에.

글 이욱정 KBS PD(www.kbs.co.kr/cook)·사진 제공 최완석

일러스트레이션 김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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