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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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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판타스틱 덕후백서
사회인 야구리그 5개 종횡무진하는 회사원 겸 작가 정범준씨
여기, 불혹의 나이에 주말마다 2경기씩 한 해 60경기 출장 기록을 세우고 있는 야구선수가 있다. 출전하고 있는 리그 수만 5개. ‘바람의 아들’ 이종범(기아 타이거즈) 이야기가 아닌 건 확실하다. 그 주인공은 이미 사회인 야구계 사람 사이에 ‘아마추어 야구계의 하일성’으로 알려져 있는 정범준(41·필명)씨다.
그는 하이닉스반도체 홍보팀 과장으로 일하면서, 책을 5권이나 출간한 논픽션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출간한 책 가운데 2권이 야구 관련 서적일 정도로 ‘야구 하기’뿐만 아니라 ‘야구’ 자체에 미쳐 있다. 그의 시합 일정을 봐도 이른바 ‘야구 덕후’임을 확인할 수 있다. 토요일 파워리그(경기 포천), 일요일에는 티케이(TK)리그(서울 강동구 배재고 운동장), 원리그(서울 도봉구), 사이버리그(경기 광주 세계사이버대 운동장), 그리고 에스비(SB)리그(경기 송추)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이름투성이다. 토요일 날이 밝으면 사회인 야구단 ‘터틀즈’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선발투수로, 일요일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회인 야구단 ‘케이(K) 드래곤즈’의 1루수 겸 지명타자로 ‘변신’한다.
‘자이언츠 키드’, 선발투수 되다
정씨가 쓴 첫 야구 관련 책은 2008년 펴낸 롯데 자이언츠 투수 최동원의 평전 <거인의 추억>이다. 선동열(전 해태 타이거즈)과 함께 국내 프로야구계의 전설로 꼽히는 최동원은 그에게 좀 특별하다. 1978년 한·미 대학 야구대회 당시 투수로 나선 최동원이 외국 선수를 앞에 두고 거침없는 강속구를 뿌리던 모습에 반했다. 그래서 지금의 ‘야구 덕후’ 정범준까지 왔다. 텔레비전을 통해 그 경기를 보고 그는 난생처음 ‘야구’라는 종목을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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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 야구단 ‘케이(K) 드래곤즈’에서 투수와 타자로 경기에 나서고 있는 정범준씨. 사회인 야구선수 3년차인 정씨는 직구와 커브, 슬라이더까지 구사하는 투수가 됐지만, 아직까지 홈런은 한 번도 쳐보지 못했다. 정범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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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게 된 계기는 프로야구 명승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2005년 5월 롯데가 엘지(LG) 트윈스에 대역전극을 펼친 ‘잠실대첩’이었다. 롯데와 관련한 자료를 모으는 것으로 시작했던 일이 최동원과의 인터뷰까지 이어지면서 한 권의 책이 탄생하게 됐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산에서 학교를 나온 ‘부산 사나이’인 그가 롯데 자이언츠 어린이 회원으로 출발해, 사직구장에서 처음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최동원의 평전을 쓴 것은 이미 예견된 순서이기도 하다.
최근 그가 낸 <마흔, 마운드에 서다>라는 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회인 야구를 다뤘다. 롯데의 팬이라는 점은 책 제목에서도 묻어난다. 책의 부제를 아예 ‘자이언츠 키드의 사회인 야구 도전기’라고 붙였다. “부산 중앙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그때 야구부가 전국대회 우승도 하고 그랬어요. 등하굣길에 야구부가 연습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하고 싶다, 내가 하면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생각이 실천으로 옮겨진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총장배·동문회장배 야구대회에 나서면서, 봄·가을마다 야구 대회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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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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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식어와 다르게 그의 사회인 야구 경력은 짧다. 올해로 3년차다. 이 때문에 ‘불혹의 투수’로 처음 마운드에 오른 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16개를 던졌는데 포볼, 포볼, 포볼…. 죄다 포볼이었어요. 곧바로 강판당했죠.”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단다. 그 뒤 야수로 활동하면서 7개월 동안 볼 컨트롤을 연마해 ‘투수 재기’에 성공한 그는 최근 7이닝 동안 3진 12개를 잡을 만큼 볼 컨트롤이 늘었다.
“이종범이 제 동갑이고, 홍성흔은 여섯살 어리지만 완전 전성기예요. 서른살 중반에 (사회인 야구를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늘 아쉽죠.” ‘늦게 배운 도둑질’을 왜 좀더 일찍 못 했을까 하는 후회를 하면서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에도 전념하고 있다. 아직 홈런을 못 쳐봤기 때문이다. “튀는 몸짱이 되지는 않았지만, 복근 하나 없는 내 인생에 힘도 세지고 기분도 좋아졌죠.”
세상은 ‘커브 던지는 자’와 ‘아닌 자’로 나뉜다?
그에게 잊지 못할 야구 명장면을 물어보니 딱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1982년 한대화가 세계야구선수권대회 한·일전에서 터뜨린 역전 ‘스리런 홈런’, 1984년 최동원이 이끈 롯데 자이언츠의 한국 시리즈 우승. 그리고 2009년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베이징올림픽 우승이다. “올림픽 우승, 그건 신이 짜놓은 거죠. 아~ 정말.”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올림픽 우승 들썩임에 휩싸여 무작정 글러브를 주문하면서 사회인 야구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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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덕후’ 정범준씨가 추천하는 사회인 야구장 베스트 5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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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는 “사람은 커브 던질 줄 아는 자와 아닌 자로 나뉜다”고 말한다. 던지기 어려운 커브 볼을 밤새 연습해 던질 수 있을 만큼 야구를 향한 ‘열의’가 있다는 뜻이다. “야구에는 스토리가 있다는 게 매력이죠. 세이프면 살고, 아웃이면 죽는 것처럼 삶과 죽음이 순간마다 있죠. 내가 여기서 쳐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있고, 칠까 말까, 치더라도 어떻게 칠까, 힘껏 휘두를까 말까의 다양한 선택의 순간이 있어서 질리지 않아요.”
야구라는 종목은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배구는 스파이크 때리는 사람이 잘 때리고, 농구도 슛 많이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잖아요. 많이 변하지도 않고…. 하지만 야구는 삼진 먹다가 끝내기 안타를 치면 주인공이 되지요.” 그는 늘 바뀌는 주인공을 보면서 굴곡진 인생사를 떠올린다. “‘야구는 시고, 축구는 산문’이라는 표현이 있더라고요. 저한테는 야구가 소설이고 축구가 시쯤 되는 거 같아요. 야구는 스토리가 돼요. 메모하고 집중하고 보면, 1회부터 9회까지 복기가 된다는 거죠. 그런데 축구는 잘 안되잖아요. 축구는 한번 뻥 터지면 빵 터지더라고요.”
5개 리그를 넘나들다 보니 사회인 야구팀이 애용하는 구장 정보도 훤하다. 가장 분위기 좋은 구장으로는 경기 남양주 별내면 불암산 자락에 있는 서울사이버대 운동장을 꼽는다. 사회인 야구단 모두 사설 운동장과 학교 운동장을 전전하는 탓에 뭐니뭐니 해도 경기장이 좀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늘 있다.
그의 꿈은 “부산 사직구장에서 시구하기”다. 한술 더 떠 한번은 직구로 또 한번은 커브로 두번 던지고 싶단다. 잘 던질 수 있냐 물으니 “커브요? 가능하죠! 투수인데!”라고 목청을 높인다. 케이비오(KBO)는 과연, 어르신·아이돌 말고 진짜 ‘개념 시구’ 한번 보여줄 수는 없을까.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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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야구할래?
사회인 야구 열풍이 거세다. 미천한 야구 실력과 소심한 마음 탓에 지난해 야구바람을 타고 한겨레신문사에 생긴 야구단 입단을 망설여온 기자가 정범준씨에게 조심스레 사회인 야구의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봤다.
Q 사회인 야구 리그는 몇 개? A 정확히 못 세지만 정말 많다. 야구장을 중심으로 리그가 열리며, 한 리그당 12~15팀이 참여한다. 봄부터 리그 시작해 매주 한 경기씩 11주에 걸쳐 가을께 마친다.
Q 야구 정말 못하는데 할 수 있을까? A 실력은 형편없어도 열의만 있으면 오케이. 등판 기회도 골고루 준다. 그것도 사회인 야구의 재미다. 오히려 잘하면 문제다. 야구선수 출신을 가려내기 위해 고교 선수 명단과 신분증을 대조해보는 일도 있다.
Q 돈 많이 드나? A 유니폼 10만원, 리그 가입비 10만원, 글러브 20만원(난 6만원짜리 샀다), 스파이크 10만원, 나무 방망이 5만원 정도 들었다. 각자 사정에 맞추면 된다. 그 밖에 매달 팀 회비+경기 뒤풀이 회식비도 좀 든다. 야구장 입장료다 생각하면 맘 편하다.
Q 사회인 야구 정보는 어디서 얻나? A 다음 카페의 ‘야구용품 싸게 사기’(주로 ‘야용사’라 줄여 부름)에서 선수 구하기, 경기 매칭 등의 정보가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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