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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17 11:15 수정 : 2011.03.31 14:35

일본·시베리아 횡단열차 등 섭렵 30대 최지웅씨

[매거진 esc] 판타스틱 덕후백서

일본·시베리아 횡단열차 등 섭렵 30대 최지웅씨

2008년 6월, 러시아 국경을 육로로 통과해 노르웨이로 들어가는 관문인 스토르스코그 국경 사무소 안. 한국인 최지웅(36)씨가 입국 허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당황하기는 노르웨이 심사관들도 마찬가지. 이 지역을 지나는 한국인이 드문 탓에 여권의 진위를 놓고 한참 동안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최씨는 1시간을 기다린 끝에 입국 허가를 받았지만, 그를 태우고 들어온 승합차는 기다리다 지쳐(?)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사람도, 차도 드문 낯선 땅에서 13㎞를 걷고 나서야 노르웨이 시르케네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무르만스크를 지나 노르웨이 → 영국 → 아일랜드 → 프랑스 → 독일 → 덴마크 → 노르웨이 → 스웨덴 → 핀란드 → 스웨덴 → 덴마크 → 독일 → 오스트리아 → 독일 → 벨기에 → 영국 등을 돌며 북유럽 철도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사서 한 고생이 어디 그뿐이었으랴. 부산 부경대 식품영양학과 선임연구원인 최씨는 2001년 일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4개국 기차를 맛본 철도여행 마니아다.

30분 등굣길, 2시간 된 까닭은?


2009년 최지웅씨가 탔던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 기차. 최지웅 제공
그의 남다른 철도사랑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작됐다. 등산애호가들에게 산이 그렇듯, 그냥 어릴 때부터 기차 타는 게 좋았단다. 중간에 타고 내리는 사람들 구경에 맛있는 주전부리 먹는 재미는 두말하면 잔소리. 최씨의 기억 속 첫 기찻길은 동해남부선이었다. 부산 집에서 이모가 살고 있던 울산까지 기차를 타고 오간 것. “초등학생 표는 반값이었고 그땐 비둘기호가 있어서 큰 부담이 없었어요. 부모님도 딱히 말리시지 않았고요. 인터넷이 없었을 때라 역에 미리 가 시간표도 찾아보고 그랬죠. 다행히 막차를 놓친 적은 없지만, 돈을 몽땅 잃어버려서 주변 사람들 도움을 받아 간신히 돌아온 적도 있어요.”

팍팍하기 이를 데 없던 고3 시절, 그만의 특별한 스트레스 탈출구는 기차였다. 수업이 없는 일요일이면 새벽에 일어나 송정역에서 비둘기호를 타고 부산역까지 간 뒤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30분도 안 걸리는 통학 시간이 2시간 이상 늘어났으니, 오직 기차를 타기 위해 돌아간 셈이다. 그래도 그 시절 답답한 마음을 달래는 데엔 기차만 한 것이 없었단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오면서 드디어 ‘전국구’ 철도여행이 실현된다. 한창땐 매주 기차를 탔다. 2008년 이후 새로 개통된 노선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국내 철길을 가봤단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마산 임항선이다. “마산역에서 마산항까지 잇는 화물철로인데 이제 기차는 안 다니고 철길만 남아 있죠. 철길에서 시장도 열리고 사람들도 막 걸어다니고. 철길은 항상 위험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여기는 그 반대죠.”

2001년 그는 학회 참석차 ‘철도 왕국’ 일본에 발을 디딘다. 어찌 일본까지 가서 기차를 타지 않는단 말인가. 짬을 내 머물고 있던 오미야에서 도쿄행 기차를 탔다. 급행·완행 등 운영 시스템이나 노선이 복잡해 많이 헤맸단다. 더불어 ‘다시 오면 제대로 타보겠다’는 오기도 발동했다. 서점에 들러 500엔짜리 기차시간표까지 샀다. 그로부터 1년 뒤 일본철도(JR) 패스를 활용해 후쿠오카에서 홋카이도를 거쳐 다시 도쿄를 지나는 여행길에 오른다. 그 이후에도 일본을 15번 정도 더 찾았다. 그의 유창한 일본어도 기차 덕분이다.


일본 철도여행을 다니다 보면 역마다 비치된 방문 기념 스탬프 찍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의 노트엔 크고 화려한 일본 철도 스탬프가 한가득이다. 현지인들도 그의 스탬프 컬렉션을 보고 놀랄 정도. 국내에서도 1999년 철도 개통 100돌을 기념해 100개 역에서 기념 스탬프를 찍어주기 시작했다. 올해 3월부턴 부산도시철도 50개역에도 스탬프가 설치됐다.


최지웅씨가 참고한 국외 철도여행 잡지. 손으로 일일이 기록한 여행노트에는 방문기념 스탬프도 찍혀 있다.
2006년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세계 철도 발상지인 유럽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급기야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2008년 철도 마니아들의 로망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모스크바를 잇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9300㎞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길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한번은 해볼 만한, 그런데 두번은 하기 싫은” 경험이었다. 바깥 풍경이 똑같으니 지루하기도 했지만, 조선족부터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인 등 다양한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스웨덴 내륙지방 자원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철도 인란스바난도 특별한 곳이었다. 지금은 1년 중 6~8월 관광열차로만 운행되고 있는데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북유럽 자연을 만날 수 있었다.

아쉬움 속에 사라져 가는 낡은 흔들림

107일간의 북유럽 철도여행 뒤, 2009년 봄 다시 짐을 꾸렸다. 이번엔 135일간의 남유럽 철도여행. 영국 → 스페인 → 포르투갈 → 프랑스 → 이탈리아 → 스위스 → 독일 → 노르웨이 → 스웨덴 → 독일 → 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 →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그리스 → 터키 → 영국 등을 돌았다. 특히 신생국가인 몬테네그로나 폐쇄국이었던 알바니아는 한국인에게 낯선 곳이다. 알바니아에서 본 기차는 다른 유럽 국가에서 사용하던 오래된 것들이었다. 그가 탔던 기차도 1974년 옛 동독에서 만들어진 것. “유럽이라고 믿지 못할 만큼 기차 속도가 느려요. 시속 40~50㎞쯤? 그곳 어르신들은 소극적인데,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저한테 말을 걸더라구요.”

그는 기차 특유의 ‘흔들림’에 중독성이 있다고 말한다. 고속철도보단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 같은 낡은 열차의 흔들림이 더 좋다. 춘천으로 향하던 경춘선 무궁화호 열차나 경기 고양시와 의정부시를 연결하던 서울 교외선 등 추억 속 기차가 하나둘 사라질 때마다 그 흔들림도 잦아들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많은 철길이 없어져요. 승객이 없어지면 무인역 되고, 그러다 더 시간이 흐르면 폐쇄되고….”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부산 해운대~송정 구간도 동해남부선 복선전철사업추진으로 폐쇄될지 모른다. “바닷가가 보이는 환경이니 관광열차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일본 곳곳에는 ‘비둘기호 같은’ 기차가 여전히 통근열차로 운행되고 있다.


최씨가 직접 손으로 기록한 여행수첩은 연구노트와 다르지 않다. 그의 깨알 같은 여행기는 블로그(blog.daum.net/zenith2)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모나코의 유일한 철도역, 나라별 1량 기차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국내에선 유럽 철도 정보가 거의 없어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픈 마음이 크다고. 올해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그의 열차여행은 아직 종착역에 닿지 않았다. “올해 여행지로 동남아를 생각하고 있어요. 타이를 중심으로 해서 인도네시아나 많이 못 가본 중국이라든가. 가깝기도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아서 가보고 싶어요.”

부산=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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