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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16 11:00 수정 : 2011.03.31 14:33

[매거진 esc] 판타스틱 덕후백서

일본서 열리는 ‘커스텀 바이크 쇼’ 해마다 찾는 에디 유

모터사이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가죽재킷과 가죽바지 차림에 긴 부츠를 신고 황야를 내달리는 거친 마초. 혹은 ‘빠라바라바라밤~ 오빠 달려!’ 같은 소음을 내며 한밤중 텅 빈 도심을 질주하는 폭주족.

그래픽노블(만화책의 일종) 전문출판사 서울비주얼웍스의 에디 유(40) 대표는 모터사이클 마니아지만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헐렁한 청바지 같은 편한 옷을 입고 서울 홍대앞이나 이태원 등을 누빈다. 모터사이클 엔진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소음, 얼굴로 고스란히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그의 몸 안에 끓어오르는 ‘열’을 식혀 준다. 그는 5년간 스쿠터를 즐기다 3년 전부터 ‘스트리트 바이크’를 타고 있다. 도시 안에서 타는 상대적으로 작고 스타일리시한 모터사이클이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그의 바이크 패션은 독특하고 재미있다. 바지 벨트에 걸린 체인(왼쪽 사진)은 뒷주머니에 꽂은 지갑이 떨어지지 않게 해준다. 살펴보면 여기엔 성모 마리아와 해골 등 다양한 문양들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금도 은도 아닌 황동 재질인데, 70여만원이나 주고 일본에서 구했다. 체인과 연결된 장지갑도 쓰면 쓸수록 멋이 더해지는 가죽 제품이다. 헬멧(오른쪽)에는 직접 문양을 그려 넣었다. 묵직해 보이는 모터사이클 열쇠도 세공업자에게 주문제작했다. 이런 패션은 모터사이클과 한 몸을 이룬다. 그에게 모터사이클은 상처 치유제일 뿐 아니라 예전엔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독특한 문화를 만나게 해 준 창구다.

나고야에서 현금 찾아 헤맨 까닭은

모터사이클을 즐기기 시작할 무렵인 2008년 4월, 유 대표는 일본 나고야에서 현금입출금기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살 수 없는 진귀한 티셔츠를 잔뜩 발견했지만 현금이 부족했다. 옷만 수백만원어치를 살 만큼 그의 이성을 마비시킨 곳은 ‘나고야 조인츠 커스텀 바이크 쇼’라는 행사장. 개인 취향대로 개조하거나 주문생산한 제품을 커스텀 바이크라고 부른다. 1년에 한두대씩 커스텀 바이크를 만드는 전문 빌더(제작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담은 제품을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자리로, 모터사이클용 티셔츠·바지, 헬멧·체인·가죽제품 등을 파는 숍들도 들어선다. 관객들이 몰고 온 모터사이클도 전시품 뺨치는 개성을 자랑하기 때문에 또다른 구경거리다. 당시엔 이런 곳을 찾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일본서 열리는 ‘커스텀 바이크 쇼’ 해마다 찾는 에디 유
“스스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려고 인터넷에서 사고 동영상을 찾아보다가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특이한 바이크들을 보게 됐어요. 신기한 마음에 친구랑 둘이 배낭 메고 그런 바이크가 모여 있다는 나고야에 갔는데 뭐 이건 완전 신세계였죠. 처음엔 장난으로 갔는데 점점 재밌어져요. 거기서 볼 수 있는 그림은 일반적인 만화와 형식이나 스타일도 아예 달라요.”


특히 그의 눈길을 끈 건 엔진과 프레임, 안장 등 여러 부품을 조합해 만든 옛날식 커스텀 바이크와 그에 맞게 디자인된 옷·체인 등 패션이었다. “한 브랜드의 바느질 방식이 특이해서 물어보니 1950년대 미싱을 활용해서 당시 느낌을 재현했더라구요. 한 디자인마다 10장 이상을 만들지 않아서 질도 좋고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죠. 오리지널리티(독창성)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생긴다니까요. 그래서 어떤 제품은 명품 브랜드보다 더 비싸게 팔리기도 해요.”

한번 맛본 신세계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와 친구들은 8개월 뒤 요코하마로 향했다. 거기선 나고야에서 본 쇼보다 더 큰 규모의 ‘핫로드 커스텀 쇼’가 열렸다.

핫로드는 자동차를 머슬카(1960년대 미국에서 붐을 일으킨 남성미가 강조된 스포츠카)로 개조하는 문화를 의미한다. 이 행사에서도 옛날식으로 만들어진 커스텀 바이크와 패션, 타투 등을 만날 수 있다.

유 대표는 3년째 해마다 4월이면 나고야, 12월이면 요코하마로 향하고 있다. 행사에 여러번 가다 보니 나고야에서 인기 많은 모터사이클 스타일을 파악했다. 핸들은 위로 올라가 있고 발로 시동을 거는 형태다. 유 대표 일행을 알아보는 한 일본의 전문 빌더는 블로그에 그들을 ‘한국에서 온 용감한 전사들’이라고 소개했다.


유 대표가 일본에서 가져온 모터사이클 의류·헬멧 카탈로그와 직접 산 셔츠.
일본 바이크 문화는 대중에 확산중

이달 초 주말에도 요코하마에 다녀왔다. “이번에 가보니 모터사이클 마니아 문화가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아요. 몇년도식 스타일에 맞는 바지는 어떤 형태여야 하고 그런 게 있는데, 이런 유행이 이제 일반 의류 브랜드에도 영향을 주고 있더라구요.” 만화기획 일만 15년째인 유 대표에게 커스텀 바이크 쇼를 보러 가는 일본 여행은 자기 발전을 위해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다. 연초부터 일정을 미리 비워놓는 건 이 때문이다.

그는 모터사이클을 즐기기 위한 동호회 활동은 따로 하지 않는다. 대신 일본 여행을 함께 가는 만화가 형민우씨를 비롯해 힙합가수 미스터 타이푼 등 비슷한 외모(?)의 친구들 10여명과 함께 ‘라이딩’을 한다. 지난여름엔 청평으로 향하는 모습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왜? 그냥 재미로. 사진을 찍어 서로 돌려 보기도 하고 직접 티셔츠나 체인도 만들어 봤다. 그러다 스스로 모터사이클 패션 브랜드를 만들게 되진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지만, 비즈니스를 하게 되면 이 즐거움이 없어질 것 같아서 망설여지죠.”

옷과 액세서리 등에 대한 관심을 넘어 그에겐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 마음에 드는 엔진을 찾아 마음 맞는 빌더에게 의뢰해 진정한 ‘나만의 바이크’를 만드는 게 꿈이다. “비용은 3000만~4000만원 정도 드는데, 와이프가 알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만.(웃음) 지금 몰고 다니는 바이크 가격도 와이프는 정확히 몰라요.”

국내에서 커스텀 바이크는 대개 불법이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규제가 상당히 엄격하다. 환경·안전에 대한 규제는 엄격해야 하지만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이런 문제와 상관없는 개조도 쉽지 않다. 바이크 마니아들은 커스텀 바이크 수요가 늘어나는 현실에 맞게 제도가 현실화되길 바란다. “일본에선 커스텀 수요가 많다 보니 일본에 가야 구할 수 있는 미국산 부품도 있어요. 다양한 커스텀이 모터사이클 산업에 영향을 주고 다시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거든요. 탈정형화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길을 터주면 문화자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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