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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2 17:50 수정 : 2019.08.22 19:22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8년 전 ‘노학자의 회한’이라는 칼럼으로 소개했던 시드니 모나스는 독일군이 패배한 뒤 1945년에 귀향했다. 그가 포로로 있던 기간에 지역의 신문에서는 그가 전사했다는 부고 기사를 게재했었다. 그가 지난 3월29일에 사망했다는 오스틴 지역 신문의 부고 기사는 “이것은 시드니 모나스의 두 번째 부고”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프린스턴에 복학하여 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그는 여러 대학을 거쳐 1969년 오스틴의 텍사스 주립대학교 사학과와 슬라브어과의 공동교수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그의 수업은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니어서 비교문학과 영문학까지도 가르칠 정도였다. 도스토옙스키는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만델스탐, 푸닌 같은 작가들의 작품도 영역할 정도로 번역가로서도 명성이 높았다. 그는 1분도 허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부고는 끝난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진 않아도 그는 비코, 제임스 조이스, 바흐친처럼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람들을 선호했다. 나의 박사학위 논문도 비코와 미슐레의 관계를 추적해보라는 그의 직접적인 제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그는 내게 엄격한 스승을 넘어 때로는 따뜻한 조언자이자 친구였다. 비코의 <새로운 학문>의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다면 가장 기뻐하셨을 분이다.

그 책을 보셨다면 대단히 기뻐하셨을 분은 한국에도 계셨다. 얼마 전 타계하신 김용준 선생님이다. 일찍부터 비코의 중요성을 간파하신 선생님께서 주관하시는 학회에서 비코에 대한 발표회를 하기도 했고, 선생님께서 주선하셔서 비코의 <새로운 학문>의 원전 번역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투병하고 계시지만 요즈음은 다소 괜찮아지셨다는 소식을 어떻게 전해 들어 다소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황망한 비보를 듣게 된 것이었다.

이제 그 책은 머지않아 나오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품어가 반길 이 없을 것 같은 황량한 마음에, 이 세상에서 가장 용서받지 못할 죄는 게으름이라고 자책한들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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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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