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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7 16:22 수정 : 2019.06.27 19:21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오랜 기간 많은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만큼 이 우화에 대한 해석도 다양했다. 대다수의 기독교도는 사망 직후 명부에서 시행된다는 개별적 심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던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벌어지는 최후의 심판에 대비하라는 교훈을 채택했다. 어떤 이들은 영혼의 불멸성을 논한 반면 어떤 이들은 사악한 영혼은 사멸한다는 가르침이 내재된 우화라고 주장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부자가 고통을 받는 지옥은 인간의 양심일 뿐이라고 설파했다.

어찌 되었든 이 우화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고 빈자에게 자비심을 베풀어야 한다는 사랑의 종교를 널리 전파했다. 그러나…. 그러나, 재물에 대한 인간의 욕심이 그리 쉽게 사라질까. 이 칼럼에서 다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소설 <메리 바튼>에서 이러한 교훈에 냉소를 퍼붓는다. 노동계급에 속하는 작중인물이 “일할수록 우리는 그들의 노예지. 이마의 땀으로 우리가 그들의 재산을 쌓아놓잖아. 그러면서 우리는 디베스와 라자로처럼 건널 수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니까. 그렇지만 나중엔 우리 운명이 더 낫지”라고 말하자, 화자로서 개스켈은 “아직도 디베스와 라자로의 우화라니!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처럼 이 이야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한 냉소는 19세기의 영국보다 21세기의 이곳에 더욱 절실하게 통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 생활의 어떤 영역을 살펴보더라도 부자와 빈자는 건널 수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대개 부자의 악행과 폭언은 무사하게 넘어가는 반면 빈자에 대한 처벌은 가혹하다. 애덤 스미스가 갈파했던 주인들의 암묵적인 단결이 빈자를 억압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은 그들의 공동적인 이익이니 물신을 숭배하는 그들이야말로 유물론자일 것이다. 그들이 정의로운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이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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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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