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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4 17:56 수정 : 2019.03.15 14:53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임지현은 국제적인 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치는 국내 서양사학자라고 공언할 수 있다. 그의 최신작 <기억 전쟁>의 초두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수기로 출판되어 세계 각국에서 큰 관심을 받았던 저작의 진위를 둘러싼 흥미로운 공방전이 소개되고 있다.

스위스에서 클라리넷 연주자로 살던 빈야민 빌코미르스키가 1995년 <어린 시절의 편린들, 1939~1948>이라는 회상록을 펴냈다. 1939년생 유대인 소년이 강제수용소 두곳에서 생존한 기억을 더듬은 자서전이다. 균열된 기억을 상황에 압도당한 어린이의 단순한 목소리로 전달한 이 책은 곧 각별한 관심 속에 구미 여러 나라의 홀로코스트 관련 문학상을 휩쓸었다.

저자가 텔레비전의 토크쇼에 출연할 만큼 지명도가 높아지며 오히려 이 책의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태어난 해부터 수용소의 일을 그토록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하는 합당한 의심이 제기된 것이다. 빌코미르스키는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가 벗어난 뒤 폴란드의 고아원을 거쳐 마침내 스위스에 정착하였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스위스의 언론인 다니엘 간츠프리트가 파헤친 바에 따르면 그는 스위스에서 브뤼노 그로장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기독교도였다는 것이다.

논쟁이 시작되었다. 빌코미르스키의 수기를 극찬하던 평론가들은 실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계속하여 그를 옹호했다. 그러나 의혹은 증폭되었고, 결국 역사가 슈테판 메힐러가 출판사의 의뢰를 받은 뒤 면밀한 연구를 통해 수기가 가짜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종적으로 취리히 검찰청에서는 디엔에이(DNA) 검사를 통해 빌코미르스키와 그로장이 동일 인물임을 확인했다.

왜? 간츠프리트는 빌코미르스키가 “냉혹하고 계산적인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검찰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그의 범죄 혐의에 대해서 부인하면서 위탁 가정에서 노예와 비슷하게 성장했던 경험이 기억을 흔들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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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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