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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4 18:06 수정 : 2019.02.14 19:12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황색 언론이란 판매 부수를 늘릴 목적으로 미확인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언론에서는 과장이 심하고, 스캔들을 파헤치려 하며, 선정적인 헤드라인을 내세운다. 미국 언론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프랭크 루서 모트는 황색 언론의 특징으로 허구의 인터뷰, 오도적인 헤드라인, 자칭 전문가들의 그릇된 지식에 의존하는 유사과학의 남용을 꼽았다.

이렇듯 ‘황색 언론’은 그릇된 언론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지만, 그 역사적 기원은 1895년부터 1898년 사이에 정점에 다다른 두 거대 신문사의 경쟁에서 비롯했다. 세인트루이스의 일간지를 장악하게 된 조지프 퓰리처는 <뉴욕 월드>를 인수하여 더 큰 시장에 나섰다. 그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뒤따르는 범죄 이야기와 게임과 퀴즈로 12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신문 대금은 2센트로 내렸다. 같은 가격의 다른 신문이 4페이지를 넘지 않던 당시 <뉴욕 월드>는 최고의 발매 부수를 자랑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신문사를 경영하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퓰리처를 롤 모델로 삼았다. 곧 <뉴욕 저널>을 인수한 그는 <뉴욕 월드>의 방식을 극단적으로 추진하면서 신문 대금을 1센트로 내렸다. 그리하여 판매 부수가 늘자, 자극받은 퓰리처도 신문값을 1센트로 내려 어린 경쟁자를 파산으로 몰고 가려 했다. 퓰리처가 노란 잠옷을 입은 소년이 주인공인 만화를 게재하자 허스트도 따라 하여 두명의 “옐로 키드”가 생겼고 그것이 ‘황색 언론’의 직접적인 어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지속력은 약했다. 뉴욕이 가장 큰 시장이라 할지라도 미국은 훨씬 넓었고, 그들의 기사가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꿈을 갖고 있던 허스트는 황색 언론에 대한 비판 여론 때문에 희망을 접어야 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퓰리처는 본연의 언론인으로 돌아가 <뉴욕 월드>를 존경받는 신문으로 되돌려놓은 뒤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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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조한욱의 서양사람(史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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