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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04 17:56 수정 : 2010.08.04 17:58

[매거진 esc] 남기자 T의 ‘마흔전야 사춘기’

항의 메일을 받았다.(나 하는 게 뭐, 그렇다.) 바로 지난 칼럼 “미안하지만, 아내가 임신 중일 때 북창동이나 안마방을 드나들었다는 친구들도 본다”란 문장이 문제였다.(쓸데없는 친구 녀석들!) 비슷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셨을 법하니, 약간을 인용해도 좋을 것 같다.(허락도 없이 올리느냐 또 뭐라시면 어쩌나?)

“아내가 제 아이를 임신하고 있어서 (…) 돈 주고 사람을 사서 (…) ‘달랠’ 수밖에 없는 게 남자의 성욕입니까? (…) 인간으로서 부끄럽지도 않나요? 저는 저것이 이해해주어야 하는 성욕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 마치 (…) 저런 짓을 해도 아내들이 그저 변태냐고 하고 질색하고 끝나는 것처럼 나와 있어요. 애들이 사람들이 결혼해서 이런 짓 해도 그냥 불평하고 끝나는구나 생각할까봐 두렵습니다.”

모두 동의하진 않지만, 취지와 불쾌감이 충분히 전해졌다. 사과 메일을 보냈다. 명사들의 무개념 발언들이 대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로 해명되는 판인데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서로의 욕구·기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논어> ‘성욕편’(?)이나 외보려던 것이고, 즐겁게 읽었다는 여성분들도 있었다.

아무튼 오늘의 주제, 매 맞은 김에 ‘수컷들의 성매매’다. 다 알고도 쉬쉬하거나, 다 알기에 입만 열면 뜨거워지는,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풍경이다. 아무튼 내가 아는 어떤 수컷도, 이성보다 욕망, 욕망보다 행동이 빠르다 할지언정, 파트너에게 제 성욕이 아닌, 성매매 욕구를 인정해 달라 하진 않는다. 범법이고 폭력이고 착취임을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중성’이다. ‘지상’에선 가치관이 반듯하고 심지어 페미니즘·인권에 대한 이해가 깊은 듯 보여도 ‘수컷계’만 가면 침묵하거나 아예 동반자적 태도를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 일관적인 한 분 있다. 해당 업계에선 ‘열사’로 통할 만한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 4~5년 전 유사성매매를 “짙은 안마”라 하거나 줄곧 “(성매매) 단속을 사려 깊게 해야 한다”던.) 때문에 남성들 사이에선 그 짓이 십중팔구 ‘묵인’ 내지 ‘용서’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서로의 성적 윤리 내지 일탈을 거론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수컷계의 견고한 ‘카르텔’이다.

지난 칼럼을 쓰며 걱정을 하긴 했다. 정작 남성 독자들이 따지지 않을까 싶었다. 가령 “왜 그런 얘기를 해 (파트너에게) 의심을 사게 하느냐”다. 카르텔을 깼다는 얘기다.

남성들끼린 바람을 피우다 걸려 아내의 추궁이 있대도 죽을 때까지 ‘아는 여자’일 뿐이라고 잡아떼야 한다는 걸, 불륜 현장에서 걸려도 더워서 팬티만 벗었을 뿐이라고 우겨야 한다는 걸, 불문율처럼 금언처럼 공유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남편’과 달리 한번 마음이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는 탓일까. 찌질한 자들의 실상이다.


사춘기 고백 및 고발 demianis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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