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12 10:10
수정 : 2011.05.12 10:10
[매거진 esc] 강지영의 스트레인지 러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보험회사 상담원이었다. 신입인지 멘트를 읽는 중간중간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느긋이 거실 소파에 몸을 묻고, 길고 도식적인 그녀의 상품설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상담원의 목소리는 더없이 친절했고, 대본은 중간에 질문이 필요 없을 만큼 치밀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자꾸 잘못된 표현들이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게 저희 보험사와 다른 보험사의 틀린 점입니다, 고객님”, “영수증에 적힌 금액 모두를 일절 보상해 드리고요”, “병원비 때문에 염두도 나지 않으셨죠?” 궁금한 것이 있느냐는 상담원의 말에 나는 주제넘게 같이 말(글)로 먹고사는 입장에서 몇 마디 훈수를 두기로 했다.
“다 좋은데 말입니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전혀 다른 표현입니다. 다르다는 형용사이고 틀리다는 동사니까요. 그쪽이 틀리다고 표현한 것들은 전부 다르다로 고쳐 쓰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일절 보상한다’는 표현도 문제가 있어요. 일절은 뭔가를 부인하거나 금지할 때 쓰는 말인데, 이럴 땐 일체 보상해 준다고 표현하는 게 옳습니다. 또 ‘염두’는 그럴 때 쓰는 말이 아니죠.”
그녀와 나 사이에 잠시 정적이 깃들었다. 사실 의미가 불통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야기죽거려가며 의기충천한 신입사원의 콧대를 비틀어 놔야 하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죄송합니다. 고객님들이 자주 쓰시는 단어로 설명을 해야 쉽게 알아들으시거든요. 매뉴얼대로 안내해 드리다 보니 실수했습니다. 하지만 지적하신 부분은 제가 꼭 건의해서 시정하겠습니다, 고객님.” 버럭 화라도 낼 줄 알았던 그녀가 거듭 정중한 사과를 했다.
통화 뒤 생각난 사람이 있었다. 언젠가 내 소설 리뷰에 사소한 리얼리티를 지적한 독자였다. 그때 나는 보라는 달은 안 보고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며 야속해했다. 그녀처럼 시정하겠다는 다짐은 않고 고마운 독자를 내심 원망했었다. 그녀가 정말 매뉴얼 수정을 건의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날 통화로 한때 오만방자했던 내 의식구조는 수정됐다. 옳은 비판은 반드시 수용할 것, 인정할 것, 그리고 감사할 것. 이렇게 세 항목이 업데이트되었다. <끝>
강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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