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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26 20:27 수정 : 2011.04.26 20:27

우리의 밥상에서 장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조선후기의 정학유는 <농가월령가> 3월령에서 “집집이 요긴한 일 장 담그기 행사로세”라고 노래했다. 같은 시대의 <규합총서>역시 "장은 팔진(八珍)의 주인“이라며 ”만일 장맛이 사나우면 비록 진기하고 맛난 반찬일지라도 능히 잘 조화치 못할 것이니 어찌 중하지 않겠느냐"고 했을 정도이다. 장중에서도 갖가지 반찬에 양념으로 들어가고 찌개도 해먹는 된장은 가히 국민식품이라 할만하다. 언론인 이규태는 “한국인은 된장만 있으면 식사를 해결하는데 그것은, 한국인의 존재 증명이요, 동일성”이라고 강조했다. 된장은 민가는 물론 왕실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옛날에는 나라에 난리가 나서 임금이 피난을 가게 되면 먼저 현지에 장 담그는 일을 책임질 합장사(合醬使)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합장사를 뽑는 일을 놓고도 설왕설래가 많았던 모양이다. 허균의 <성옹지소록>에는 정유재란 때 선조가 영변으로 피신하려는데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신잡(申磼)을 합장사로 임명하는 사안을 놓고 조정의 대신들이 입씨름하는 일화가 나온다. 책력에 신일(辛日)은 장 담그는데 좋지 않다고 했는데 신잡의 성인 신(申)과 신(辛)의 발음이 같다고 반대하여 생긴 일이다. 장 담그는 일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꺼리는 것도 많았던 것이다. 그 시절엔 장을 담그려면 미리 택일을 하고, 사흘 전부터는 외출과 방사(房事)를 금해서 부정을 타지 말아야 하며 심지어는 개를 꾸짖어도 안 된다고 했다. 그만큼 정성을 쏟아야 장맛이 좋고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서울 양평동의 또순이네는 고기집이지만 뛰어난 된장찌개 맛으로 일대에서 이름을 얻고 있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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