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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 회원들이 4월2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재벌 사내유보금 현황 발표 및 환수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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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 광장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쌓는 것은 비난받을 일인가?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여기는 듯하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다수의 의원들이 사내유보금을 규제하는 법안을 내기도 했고, 그런 문제의식은 2014년 7월에 최경환 경제팀이 일정 수준을 넘는 사내유보금에 과세하는 ‘기업소득환류세제’(이하 ‘환류세제’)로 일부 흡수되기도 했다. 기업 친화적인 보수정부조차도 지나친 사내유보금 축적을 기업-가계 간 소득불균형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는 뜻일 테다.
새로운 국회가 열리면서 원내의 주요 야당들은 사내유보금에 대한 공세를 더 강화할 것임을 공언하고 있다. 지난 4월21일에는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다수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결성된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가 기자회견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운동본부’가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30대 대규모기업집단(재벌)에 속하는 269개사의 사내유보금 총액은 754조원에 이른다.
이러한 움직임의 반대편에 있는 재계와 보수언론은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위와 같이 막대한 규모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정기적으로 자료를 내놓으며 사내유보금의 ‘진실’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최근 전경련은 “사내유보자산이 많은 기업일수록 투자와 고용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의 자체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 기업들이 배당도 많이 하고 세금도 많이 낸다고도 했다. 이들은 사내유보금에 문제를 제기하는 쪽의 주장을 사내유보금 개념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여기엔 일부 전문가들도 동조하는 모양새다. 어떤 이들은 ‘사내유보금’이라는 용어는 회계학 교과서에 나오지도 않으니 그 말을 쓰는 것부터가 틀렸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이렇게 한편에서는 문제제기의 수위를 계속 높여가는데 반대편에서는 상대방의 ‘무지’를 꾸짖고 있으니,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는데도 논의가 좀처럼 나아가질 않는다. 대체 사내유보금이란 무엇이며, 왜 이렇게 뜨거운 이슈가 되는가?
따지고 보면 사내유보금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기업이 일정 기간(1년) 동안 영업을 하고 남는 돈, 그것이 사내유보금이다. 연봉 2천만원 받는 개인이 한달에 생활비로 100만원씩 쓰면 연말에 800만원이 남을 텐데, 그런 돈이다. 이런 여윳돈으로 개인은 살림살이도 늘려 나가고 저축도 할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살림살이를 늘리는 것을 투자라고 한다. 공장이나 생산설비같이 전통적인 형태로 투자하는 게 보통이지만, 사내유보금의 일부를 부동산이나 금융자산 형태로 전환해 임대료나 시세차익, 이자수익 등을 노릴 수도 있으며 만일에 대비해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도 된다. 물론 기업이 정상적으로 이익을 내며 존속하는 한 이런 일은 매년 반복될 것이다. 그에 따라 사내유보금은 차곡차곡 쌓일 것이고, 개인의 살림살이가 꾸준히 늘어나듯 기업의 생산규모나 범위도 늘어날 것이다.
2001년 사내유보금 과세 폐지로
연평균 15% 이상 증가 800조 규모
노동유연화·하청업체에 ‘갑질’ 덕택
양극화·청년실업·산업재해 등 초래
20대 국회서 야당들 공세 강화 예고
노동·시민사회단체도 본격적 활동
더 많은 일자리·더 많은 소득 위해
기업들이 생산적인 투자에 힘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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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유보금과 사내유보율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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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만일 누군가가 ‘기업이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손에 쥐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잘못된 표현임이 분명하다. 기업이 막대한 액수의 사내유보금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은 그저 이제껏 이윤을 많이 냈다는 뜻일 뿐이다. 여기서 굳이 ‘사내유보금’이라는 생경한 용어를 쓰는 것은, 보통 주식회사 형태를 취하고 있는 오늘날의 기업은 개인과 달리 이윤을 주주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나눠주지 않고, 분배하지 않고 회사 안에 남겨두는 이윤이 사내유보금이다. 물론 그것은 실물투자, 금융투자, 현금보유 등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사내유보금은 그것이 나중에 어떻게 쓰이든, 그 ‘유래’를 가리키는 용어다. 예컨대 기업은 기계의 구매(투자)를 ‘사내유보금’으로 할 수도 있지만, 회사채나 주식을 발행해서 할 수도 있다.
‘기업이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손에 쥐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를 품고 있다고 해서 거기 깃든 문제의식까지 잘못된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핵심은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대목이며 오히려 앞부분은 부차적이다. 기업은 한해의 영업활동을 통해 거둔 세후이윤을 주주에게 배당하거나 사내에 유보할 수 있다. 또 사내에 유보된 이윤을 추가적인 투자재원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과도한 사내유보금에 대한 문제제기의 핵심은 ‘①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거두고 있으나 ②이를 주주에게 배당하지도 않고 사내에 유보하면서도 ③정작 투자에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과연 오늘의 한국 경제에서 누가 이것을 부정하겠는가?
다만 논점을 제대로 잡으려면 ‘사내유보금’이라는 모호한 용어보다는 ‘이윤’이라는 좀 더 명확한 용어를 쓰는 게 낫다. 즉 ‘기업이 막대한 이윤을 보면서도 투자와 고용에는 소홀하다’고 하는 게 어떤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커지는데 투자가 부진하면 경제성장이 지체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기업의 투자부진이 불평등을 확대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은 사내유보금을 생산적으로 투자하기보다는 금융적으로 운용하거나 투기까지 일삼으며 제 살을 찌웠다. 만약 기업이 활발히 투자를 했더라면 고용을 증대해 가계소득을 높였을 것이니, 결과적으로 기업과 가계의 소득격차는 이중으로 벌어진 셈이다.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환류세제’는 바로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보면 된다. 이 제도는 기업의 이윤 중에서 배당으로 분배되거나 신규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순수한 의미의 사내유보에 대해 추가적으로 과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제대로만 된다면 기업에 사내유보의 비용을 높임으로써 배당이나 투자에 좀 더 힘쓰게 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그런데 사내유보금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 중 일부는 이 환류세제가 사내유보금 총액을 투자로 전환하는 데는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는 환류세제의 취지와 목적을 벗어난 공방이다. 사내유보금 총액의 상당 부분은 이미 유무형 자산의 형태로 투자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애초 이 제도는 지금까지 총액이 아니라 신규증가분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사내유보금 환수론’은 유보금 신규증가분이 아닌 기존에 축적된 사내유보금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편에서는 이미 사내유보금은 다양한 형태로 투자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환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환수’를 어떻게 할 것이냐와는 별개로, 환수론의 골자는 기업의 사내유보금 축적 과정 자체를 문제삼는다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신규’ 사내유보금의 처분만을 문제삼는 ‘환류세제’와는 결을 달리하면서 좀 더 급진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렇다면 2015년 말을 기준으로, 측정 방식에 따라 800조원을 넘나드는 사내유보금은 그간 어떻게 축적되어 왔는가? 사실 지금까지 추세대로 사내유보금이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경제에는 1991년부터 ‘적정유보초과소득 추가과세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일정액을 넘는 사내유보액에 대해서는 추가과세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제도가 2001년 말에 폐지된다. 사내유보를 억제함으로써 기업투자를 저해한다는 이유였다. 그 뒤로 사내유보금은 연평균 15% 이상씩 증가해 현재의 수준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사내유보를 규제하는 제도 하나가 사라졌다고 사내유보금이 급증할 수는 없다. 사내유보금의 근거인 이윤 자체가 커져야 하는 것이다.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뺀 값이 기업의 이윤이므로, 이윤이 커지려면 총수입이 크게 늘거나 총비용이 줄어야 한다. 환수운동본부 같은 곳에서 주목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1997년 외환위기 뒤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변화를 겪어왔다. 그 변화는 고용불안 심화, 비정규직 급증, 노조의 약화 등 대체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벌어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빠르게 벌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2001년 이후 급증한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그것이 기술혁신이나 시장개척에 기인한 것인 만큼이나, 노동의 유연화, 산업안전 의무 방기, 하청업체에 대한 ‘갑질’ 등이 결합된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와 만성적인 청년실업, 비정규직 확산, 곳곳에 만연한 산업재해 등이 바로 이러한 과정의 산물이다. 이에 대해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혜택을 누려온 대기업이 좀 더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고, 실제 비용을 부담하라는 사회적 요구는 자연스럽다. 그런 요구에 ‘사내유보금’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구사했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또 사실 그 비용을 기업이 사내유보금으로 부담할지 아니면 다른 무엇으로 부담할지도 이를 요구하는 쪽에서 관여할 바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경제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그들만의 몫으로 남겨두면 안 된다는 것이고, 사내유보금에 대한 저간의 문제제기들은 우리 경제를 이렇게 만든 책임의 상당 부분은 다름 아닌 대기업에 있음을 상기시킨다는 점만으로도 일정한 의의가 있다.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쌓는 것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노동자에게 적절한 노동환경과 임금을 보장해주는 등의 책임만 다한다면 말이다. 오히려 사내유보금을 투자재원으로 삼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는 외부차입에 비해 안정적인 성격이 있고, 단기적인 주가 상승 등에만 관심 있는 외부자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장기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특히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의 경우엔 사내유보금 의존이 사실상 경영권 방어 수단의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축적 방식을 용인해준 데 대해 해당 재벌들은 일종의 ‘사회적 보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현실적인 문제는, 신규로 축적되는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기고 그간 기업이 소홀했던 사회적 책무에 더 힘쓴다고 해서 곧장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고 경제가 살아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투자 결정은 해당 업종의 국내외 시장 환경과 거시경제 전반의 상황에 가장 크게 좌우되는데, 요즘 같은 범지구적 불황 속에서는 그 어떤 기업도 공장을 짓고 사람을 더 고용하는 데 과감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환수론의 경우에도, 그것이 당장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현재 우리 경제의 문제는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많은 소득을 통해 풀릴 수밖에 없는데, 이미 다양한 형태의 실물자산으로 투자되어 있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해서 곧장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겐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요청된다. 임금의 결정을 개별 기업에 맡겨두기보다는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을 통해 사회 전반에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위험과 비용을 나보다 더 약한 주체에게 떠넘기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방향전환에 드는 비용은 그동안 왜곡된 체제 속에서 혜택을 본 주체들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과세다. 그러나 이상으로부터 사내유보금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란 결국 기업의 이윤 그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임이 드러났으므로, 과세도 ‘기업소득환류세제’ 같은 미온적인 방식보다는 법인세 인상 같은 ‘정공법’으로 가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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