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소셜이노베이션 캠프 36’에 참여한 소셜인 팀이 시민들의 정책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웹사이트 개발을 위한 토론을 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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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혁신의 시대
국내외 정부·기업·시민 협력모델과 방향
위키피디아는 경이롭다. 385만개가 넘는 영어 단어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익명의 개인들’의 협업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를 ‘기술’혁신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뤄낸 혁신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과 ‘위키 방식’이라는 발상의 전환, 평범한 이들의 열정적 참여와 협력, 지식생산과 유통구조의 혁명적 전환. 바로 ‘사회혁신’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100일에 즈음하여 그가 강조하는 사회혁신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짚어 보았다.
‘거대한 전환: 새로운 모델의 형성’을 주제로 열렸던 올해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지난 1월29일 폐막했다. 세계 40개국에서 모인 2600여명의 글로벌 리더들은 세계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한계에 봉착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를 표출했다. 이들은 과거와 다른 방식의 혁신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세계 각국의 사회적 기업가 35명이 바로 그곳에 모여 “사회혁신이 세계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개선할 것”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미·영 정부, 사회적 기업과 협력‘혁신 펀드·은행’서 소외층 지원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10년 8월호는 ‘사회혁신: 그들의 아이디어를 들어보자’라는 글에서 미국과 영국 정부가 사회적 기업가들과 파트너십을 형성해 사회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9년에 ‘사회혁신과 시민참여 부서’를 백악관에 새로 설치했다. 동시에 사회혁신펀드가 만들어져 5000만달러의 예산이 2010년에 배정되었고, 자선재단들이 7400만달러를 거기에 더했다. 2010년 7월에 보건·고용·청소년 분야 11개 프로젝트에 대한 사회혁신펀드의 첫번째 투자가 이뤄졌다. 영국 캐머런 총리 역시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내용의 사업 구상을 발표했다. 그는 ‘큰 사회은행’을 설립하여 “사회적 기업, 자선단체, 자원활동단체 등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2억5000만파운드를 은행 설립에 사용할 것”을 약속했다. 사회혁신이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유럽 각국은 물론 유럽연합 차원에서 다채로운 사회혁신이 시도되고 있고, 관련 연구와 지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유럽 정책자문관사무소(BEPA)가 조직한 2009년 1월 워크숍에서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위원회 위원장은 “재정·경제위기는 창조와 혁신을 만들어냈다. 특히 사회혁신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안정된 일자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선언했다. 유럽의 새로운 발전전략을 담은 ‘유럽 2020’ 보고서(2010)에서도 사회혁신은 신성장동력으로 다뤄지고 있다. 유럽이 직면한 ‘거대한 도전들’(경제성장, 실업, 기후변화, 고령화, 사회적 배제, 공공부문개혁 등)에 적극 대응하고, 이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 역할을 사회혁신에 부여했다. 유럽연합의 사회혁신 관련 정책이 연구·개발사업과 함께 다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럽 정책자문관사무소가 낸 <사람을 키우고, 변화를 만들자: 유럽연합의 사회혁신>(2010) 등 여러 보고서들은 사회혁신이 이미 주류의 자리에 올랐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아시아에서도 아시아사회혁신경연대회(ASIA)나 아시아엔지오혁신회의(ANIS) 등의 행사를 통해 각국 사회혁신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싱가포르나 홍콩 등에서 먼저 시작되었지만 중국과 한국 등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세계가 주목하는 ‘사회혁신’이란 과연 무엇인가? 영국의 영파운데이션은 사회혁신을 “사회적 목표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아이디어, 억압되어 충족되지 못한 필요를 충족시킬 새 아이디어를 디자인·개발·발전시키는 프로세스”라고 넓게 정의하거나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고자 하는 목표가 원동력이 되는 혁신적 활동과 서비스”라고 좁게도 정의한다. 미국의 사회혁신 연구를 선도하는 <사회혁신 스탠퍼드 리뷰>는 “사회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 즉 기존 해결책보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이라고 사회혁신을 설명한다. EU ‘지속가능한 성장’에 활용
아시아, 엔지오 통해 정보 공유
사회혁신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지만, 결국 “어떤 사회문제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집단적 고민과 실천의 복합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새롭고도 효과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는 분명 매혹적이다. 하지만 사회혁신을 ‘혁신의 혁신’이라 하는 이유는 ‘사회’와 결합된 혁신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영파운데이션 상임이사를 거쳐 현재 국립과학기술예술재단(NESTA)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제프 멀건은 영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혁신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소셜 아이콘 2011’ 기조강연에서 그는 “사회혁신은 더이상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사회의 르네상스’라 부를 정도로 사회부문의 창조와 혁신은 활발하다. 이러한 사회혁신은 정부와 기업, 사회 사이의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까지 폄훼되었던 ‘사회’가 새롭고 큰 의미를 부여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결국 사회혁신에 대한 이해와 전략은 사회와 혁신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사회가 혁신을 이끈다”는 의미다. 재단, 정부기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주민단체, 중간지원기관, 시민단체,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회혁신의 주체는 다양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와 피프틴재단을 사회혁신의 사례로 소개했다. 음식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사회적 관계를 창출해낸 올리버가 사회혁신가의 전형이라는 설명이다. 동시에 그린피스나 옥스팸, 여성운동도 사회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를 혁신한다”는 의미가 있다. 캐머런 총리가 “사회혁신을 통해 ‘큰 사회’를 만드는 걸 돕는 게 국가의 새로운 역할”이라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시가 준비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에서 ‘마을공동체’라는 것은 혁신의 주체일 수도, 대상일 수도 있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가 공동체적 가치와 관계로 맺어진 새로운 ‘사회’로 복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선 SNS-정보공개 연결
시민참여 혁신 인프라 구축 추진 마지막으로 “사회적으로 혁신한다”는 방법론적 의미이다. 오늘날 사회혁신은 ‘나’보다 똑똑한 ‘우리’, ‘미(Me) 제너레이션’이 아니라 ‘위(We) 제너레이션’을 출발로 삼는 경우가 많다. 리눅스 소프트웨어, 위키피디아와 같은 오픈 소스 방식이 ‘세계를 변화시킨 10대 사회혁신’에 선정된 것은 좋은 사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개인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며, 사회는 예전의 사회가 아니게 되었다. 그 점에서 서울시가 정보공개를 넘어 정보공유로 나아가겠다는 계획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창주 서울시 뉴미디어 특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정보공개를 연결하여 혁신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전진한 소장은 “시민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데이터 형태로 공개하는 것은 획기적 혁신”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를 통해 시민들의 시정 참여와 협력 수준이 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혁신은 사회의 경계와 역량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혁신은 새로운 협력을, 협력은 또다른 혁신을 만들어낸다. ‘사회혁신의 힘’에 세계가 주목하는 까닭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iphong17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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