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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27 20:14 수정 : 2011.03.27 20:14

서정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빈곤층
아이들도 학교 대신 돈벌이로
선거서 반대표 내기도 힘들어

[싱크탱크 맞대면]
아랍의 현실과 중동정책 방향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시민들의 손바닥 안에 들어온 21세기에 더 이상 이런 차별과 불만은 가슴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표출하고 그 힘을 정치적으로 결집할 수 있는 소통수단이 생겼다.

“도시의 청소는 우리가 담당합니다.”


정부 통계 1700만, 비공식 통계 2000만의 인구를 가진 이집트 수도 카이로를 밤마다 누비는 세 형제의 말이다. 맏형 조르지(13)와 쌍둥이 동생 아미르와 마르쿠(12)가 매일 당나귀 두 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향하는 곳은 인근의 이슬람 지역인 칼아 주택지대이다. 해가 지기 전에 출발을 해야 차량이 늘어나기 시작하기 전인 동틀 녘에야 돌아올 수 있다. 밤새 카이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이들이 모아오는 것은 종이, 빈병, 플라스틱 등 폐품이다. 운이 좋으면 낡았지만 입을 만한 옷 혹은 쓸 만한 전자제품도 주워올 수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예전에 있었던 소위 넝마주이다.

동트기 전에 돌아와 잠깐 쉬고는 바로 폐품 분리작업을 해야 한다. 3~4일 모아 재활용 공장에 넘기기 위해 종류에 따라 모아놓는다. 폐품에 묻어 있던 각종 쓰레기들이 악취를 풍긴다. 그래도 이런 쓰레기 속에서 태어나 자라왔기 때문에 아이들은 악취에 둔감한 듯하다. 모은 폐품으로 팔아 버는 돈은 하루 2달러 정도다.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빵, 쌀, 설탕, 차 등 기초 식량을 구입하는 데 거의 쓰인다. 조르지 형제는 학교도 다니지 않는다. 이집트는 중학교 교육을 의무화했지만 빈곤층은 정부의 정책에 따르지 않는다. 아니 따를 수가 없다. 일단 입에 풀칠하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밤마다 넝마주이를 하려고 일터로 나가는 조르지 형제. 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이들은 하루 2달러의 수입으로 살며, 신분상승의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들 형제는 이집트 하류 청년들의 전형적 모습으로 이번 민주화 시위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 동네 대부분 친구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아요. 좋은 대학 나와도 직장을 다녀도 우리가 버는 수입과 별 차이 없지요.” 조르지는 학교를 보내지 않는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한다. 사회유동성이 극히 미약한 이집트에서 조르지와 같은 빈곤층 서민들이 현재의 상황을 탈피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투표는 하지 않았습니까?” 경찰서를 나오면서 사미르(44)는 겸연쩍은 듯 씩 웃는다. 그가 나온 경찰서는 이집트에서 선거 장소로 자주 쓰이는 동네 경찰서다. 공안요원이 있는 공립학교와 경찰서가 주로 투표 장소로 이용된다. 이렇게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30년 철권통치를 유지했다. 2005년 직선제 이전까지 치러진 4차례 대통령 선거에서 매번 90% 이상의 찬성표를 얻었다. 그는 매번 단독후보로 나왔고, 투표방식도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였다.

불법을 행하지는 않았다. 유권자 등록 절차도 있었다. 투표 1년여 전에 일간 신문 구석에 조그맣게 유권자 등록 공고가 나온다. 인구의 30%는 문맹이고, 40%는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해, 신문을 사보거나 구독할 수 없다. 나머지 30%도 대부분 조그맣게 나오는 유권자 등록 공고를 보지 못하고 지난다. 반면 찬성표를 던질 집권당 당원, 군인 및 경찰 등은 집권세력이 알아서 등록을 해 준다.

투표일이 가까워 오면 재등록 기간도 있다. 그런데 재등록 장소는 경찰서다. 친정부 경찰간부의 따가운 시선과 불필요한 의심을 사면서까지 재등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정부가 통제하는 공립학교와 경찰서에서 투표를 행한다. 대부분 경찰서에서는 커튼이 드리워지지도 않는다. 반대표를 던질 분위기가 아니다.

튀니지와 이집트를 시작으로 중동 전역에 일고 있는 시민혁명은 위와 같은 사회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불만을 배경으로 한다. 정부가 장악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시민의 불만은 드러나지도 않았고, 정치적 힘으로 결집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시민들의 손바닥 안에 들어온 21세기에 더는 이런 차별과 불만이 가슴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표출하고 그 힘을 정치적으로 결집할 수 있는 소통수단이 생겼다. 1980년대 말 냉전의 상징이었던 동구 공산권이 붕괴됐을 때 많은 정치학자와 세계 언론은 ‘중동이 다음 차례’라고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이슬람 과격세력의 준동이 약간 있었을 뿐 아무런 정치적 변화는 없었다. 당시에도 중동 국가는 독재였고, 실업률은 높았고, 빈부 차이는 심했고, 부패는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러나 시민의 힘을 결집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알자지라와 같은 위성 티브이도 없었고 인터넷도 거의 보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0년 12월17일 튀니지 소도시의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신은 휴대폰 동영상으로 촬영돼 인터넷을 탔다. 그리고 현재 22개 아랍국 중 카타르를 제외한 21개 국가에서 정권 붕괴, 크고 작은 시위, 혹은 정치개혁 요구가 발생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자유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랍권 전체의 권위주의체제가 변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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