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27 08:21
수정 : 2010.12.2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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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외교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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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CO₂ 감축목표 흉내 불과
녹색정책 외교홍보에만 골몰
대선과 겹쳐 정치적 악용 우려
자격있는 국가가 개최국 돼야
[싱크탱크 맞대면] 기후변화회의 유치 필요한가
기후변화는 국가간의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때문에 당사국총회 유치는 단순한 국제회의 유치와는 차원이 다르다. 중재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되는 국가가 회의를 이끌어야 한다.
기후변화는 월경성(越境性) 문제이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뿐만 아니라 국가간 협력이 중요하고, 당사국총회는 국가간 협력을 논의할 수 있는 유일한 체계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2012년 기후변화협약 18차 당사국총회 유치 움직임은 단순히 국제회의 유치의 관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과연 현 정부가 기후변화 협력 합의를 이끌 준비는 되어 있는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현 정부가 과연 당사국총회를 개최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기후변화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는 이유는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회의를 개최하는 의장국의 중재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9위 온실가스 배출국가이면서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보다 1인당 배출량이 더 높지만 이미 칸쿤 합의에 의해 개발도상국·비의무감축국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이런 모순적인 입장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가 의장국으로서 각국의 이해관계를 중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건 무리다.
16차 총회를 개최한 멕시코는 의장국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2009년에 현재 6.8tCO₂(이산화탄소톤) 정도인 1인당 배출량을 2050년까지 2.8tCO₂로 감축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11.1tCO₂ 정도인 1인당 배출량을 2020년까지 10.6tCO₂ 정도로 만들겠다는 게 목표이다. 현상 유지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멕시코도 큰 성과를 못 남긴 판에 현 정부가 과연 전세계적인 열망에 걸맞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보기 어렵다.
유치에 긍정적인 일부 시민단체들은 당사국총회를 계기로 현 정부가 멕시코처럼 더 적극적인 기후변화대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황을 지나치게 지엽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정부는 현상 유지라는 초라한 목표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이라는 허울 좋은 숫자로 바꿔가며 비의무감축국가의 최대공약을 내세웠다는 입장을 여러번 피력했다. 게다가 오랜 기간 한국 정부의 최대 협상목표는 온실가스 의무감축국가군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총회 개최로 인한 감축목표 재설정이나 정책 변경의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오히려 현재 상황에서는 전지구적 대응 노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명박 정부가 각종 국제회의를 녹색성장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는 외교전략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G20 정상합의문에 녹색성장 추진결의를 담아냈고, 인천에는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유엔사무소가 개설될 예정이다. 당사국총회에서는 녹색성장을 통해 기후변화대응을 선도하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동아시아기후파트너십(EACP)에서도 공공연히 녹색성장 정책을 수출하겠다는 뜻을 표방하고, 한국형 녹색성장 담론을 개발하겠다고 만든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가 해외 원조를 담당하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산하로 설치됐다. 이명박 정부가 현재의 녹색성장에 얼마나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18차 총회는 녹색성장 홍보의 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중심이고, 늘어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핵발전 확대를 통해 가늠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정부가 자랑하는 기후변화대응 지원은 메콩강 유역 개발에 참여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노하우를 전수해준다는 식의 녹색성장정책 수출이 주 내용이다. 18차 총회 유치 찬성은 이명박 정부 식의 녹색성장에 동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기 문제도 있다. 2012년은 대선이 있는 해다. 18차 총회 일정은 2012년 11월26일에서 12월7일까지로 확정되어 있다. 대선은 12월19일에 진행된다. 대선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고 수만명이 참가하는 국제회의가 열리는 셈이다. G20을 “단군 이래 최대행사”라고 자평하며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전례를 감안하면, 18차 총회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 전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며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지구적 기후변화대응은 국내 정치를 위한 행사의 성격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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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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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유치 신청국인 카타르가 산유국이고 1인당 배출량이 세계 2위에 이를 정도로 문제가 있어서, 그나마 한국에서 열리는 것이 낫지 않으냐는 의견도 있다. 그런 식의 차악 선택 논리는 18차 총회의 무게에 견주어 지나치게 가볍다. 적어도 카타르는 왜곡된 녹색성장을 수출해 연쇄반응을 일으켜가며 전지구적 대응 노력에 족쇄를 채우진 않는다. 정부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포함해 녹색성장 정책을 폐기하고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배출량에 걸맞게 재조정한다면 18차 총회 유치는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한국과 카타르 모두 의장국 자격이 없으므로 제3국 개최, 실무급 회담이 진행되는 독일 본 개최 등이 대안이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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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정의·전환·지역을 키워드로 에너지·기후정책을 연구하는 진보적 싱크탱크다. ‘정의로운 전환’, ‘기후정의’의 개념을 대중화하는 등 노동자·농민·사회적 약자의 처지에서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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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크탱크 맞대면’은 한국 사회 과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고민하는 연구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정책현안들에 대한 기관의 연구성과를 원고지 10장 분량의 간결한 글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두뇌집단이 내놓은 제안이나 자료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도 좋습니다. 문의와 원고는 한겨레경제연구소(heri@hani.co.kr)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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