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김영수의 사기그릇] ‘잔도’를 걸으며 |
당나라 때 시인 이태백이 ‘하늘을 오르기보다 더 힘들다’고 한 촉도(蜀道)에는 절벽 곳곳에 판자를 깔아 만든 ‘잔도’(棧道)의 흔적이 남아 있다. 춘추시대부터 뚫은 것으로 전해오는 촉도는 수많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중국의 남북과 동서를 연결하는 통로 구실을 해왔다.
진시황은 역대 통치자들 중 가장 길고 많은 도로를 닦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무리한 공사로 최초의 통일제국 진의 수명을 단축했다. 그는 통일된 지역의 습속과 민심을 파악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않고 통치의 효율성에만 집착했다. 말하자면 도로가 갖는 소통의 의미를 외면한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년 뒤 사마천은 스무 살 무렵 약 3년에 걸쳐 3000년 역사의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대장정에 올랐다. 이를 통해 위대한 역사가로 성장하게 되는 그는 산천 지리의 형세와 도로가 갖는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사기>에 기록된 역대 중국의 산천 지리의 형세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사기>의 가치를 한껏 높인다.
진시황은 도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아 엄청난 대역사를 감행했지만, 강제적으로 밀어붙이다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역설적이게도 사마천은 진시황이 닦아 놓은 도로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사람이다. 진나라를 이은 한나라 초기의 안정된 정치상황과 회복된 경제력, 그리고 무엇보다 백성들을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게 하는 ‘휴양생식’(休養生息)의 정책 기조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에 구멍을 뚫고 깐 ‘잔도’를 걸으며 역사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생각해본다. 역사는 언제나 길을 뚫는 사람보다는 그 길을 통해 소통한 사람 편이었다. 중국 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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