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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16 16:54 수정 : 2011.03.17 09:37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내 ‘활판공방’에서 문선공이 원고 내용대로 활자를 골라 뽑고 있다.

[하니스페셜] 북하니/
파주 출판단지 ‘활판공방’의 풍경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구성진 소리가 공방을 채웁니다. 전라북도 한 창고에 버려져 있었던 활판 인쇄기가 제 자리를 찾고 신나게 돌아가는 소리입니다. ‘주조공’은 납을 녹여 활자를 만들고 ‘식자공’은 그 중 책에 쓸 활자만 골라 한자 한자 조판합니다. 활자판에 잉크를 묻혀 한지에 꾹 눌러 박으면 이제 제본을 할 차례. 색 고운 표지는 이미 작가의 필체로 장식했습니다. 곧 사람 손으로 엮은 책이 창가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파주출판도시에 위치한 ‘활판공방’의 풍경입니다. 이곳에서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코앞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보기 힘든 ‘옛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내는 전국 유일의 활판 인쇄소이자 출판사입니다.

시월 출판사의 박한수 대표와 박건한 시인, 정 디자인 대표 정병규씨가 활판공방의 문을 연 것은 2008년. 70년대에 이르러 활판 인쇄의 맥이 끊기고 90년대에는 컴퓨터와 디지털 인쇄방식에 밀려 완전히 잊혀져가던 인쇄문화가 안타까워 뜻을 모았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던 활판 인쇄기와 주조기 등도 어렵게 구하고 기술자들을 수소문해 이듬해부터 공방 가동을 시작했는데 속도는 디지털 인쇄방식의 ‘십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디지털 방식으로 책을 열 권 만들 때 공방에서는 한 권을 만드는 거죠. 그 사이 세상은 다시 변해 전자책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손 안에 수천 권의 책을 들고 다닐 수 있는 ‘스마트한’ 세계에서 활판공방 식구들이 묵묵히 옛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한결같습니다.

“전기밥솥이나 압력밥솥은 코드만 꼽으면 밥이 빠르게 만들어져. 그러니까 누구나 똑같은 맛의 밥을 만들어. 그런데 어머니가 만드는 가마솥 밥은 ‘정’과 ‘손맛’이 들어가니까 맛이 달라. 요게 아날로그지. 책도 마찬가지야. 활자를 만들고 다듬으면서 책에도 손맛이 들어가지. 인쇄를 하면서 인간의 정도 들어가니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야.”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박건한 시인의 강의는 흥겹게 이어집니다.


“손톱에 매니큐어 바르는 게 현대의 디지털 인쇄방식인 오프셋(off-set)이라면, 손톱에 봉숭아물 들이는 게 우리의 활판인쇄지. 핸드폰으로 보내는 메시지는 정보전달에 불과하지만 손에 팬을 들고 편지를 쓰면 없던 감흥이 생겨. 그런 편지 받아본 적 있나? 절대 잊을 수 없지.”

현대사회의 발전 속도는 늘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을 출판하는 업계는 비용을 낮추기 위해 보다 저렴하고 빠른 디지털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아날로그의 위치를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 박건한 시인의 생각입니다. 공방 식구들은 이제 모두 육십 대에서 칠십대인데, 이 세대가 끝나면 공방도 문을 닫을 것이라는 염려는 종종 시인을 두렵게 만듭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직지’를 인쇄한 금속활자의 종주국으로써 젊은이들이 활판인쇄문화에 흥미를 가지고 자주 이곳을 찾아오면 좋겠다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활판공방의 박한수 대표는 활판 인쇄만의 매력을 이렇게 말합니다.

“활자에서 나오는 그 느낌. 그리고 활판으로 책을 제작하는 과정은 글로는 설명하기 힘들어요. 학생들이 직접 와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직접 인쇄를 해보면 금방 알죠. 예전에는 책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니 쉽게 이해가 되죠.”

활판공방은 합정역에서 직행 버스를 타면 30분 남짓 걸립니다. 단체로 견학할 때는 사전에 예약이 필요합니다. (031)955-0085.

전현주 북-하니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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