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스페셜] 사진마을/
[이달의 사진] 김용태 ‘빨강’ 눈이 소복이 내리는 날이면 세상은 흑백이다 수채화 같은 풍경에 등장하는 빨강은 몇 개? 한겨레가 뽑은 이달의 독자사진에 김용태(울산 울주군 범서읍)씨의 사진이 선정되었습니다. 한겨레가 마련한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디지털시대에는 필름의 제한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컬러가 보편적입니다. 예전에 흑백과 컬러는 선택의 문제였는데 지금 모든 디지털카메라는 컬러로 찍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진가들이 아직 흑백을 더 선호합니다. 흑백필름으로 찍든 디지털에서 흑백으로 변환하든 최종결과물을 흑백으로 표현하는 방식 자체에 어려움은 없습니다. 같은 대상을 찍는다고 한다면 컬러사진과 흑백사진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적합할 것인가를 따져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오직 딱 한 가지 변수인 눈 덕에 이 사진의 제목은 ‘빨강’이었습니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이 빨간색의 우산이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흑백을 더 좋아하는 분들도 눈이 내리는 날에는 굳이 흑백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은 흑과 백,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대상들은 밝고 어둡기가 다른 회색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눈이 닿는 곳은 흰색이며 눈이 잘 쌓이지 않는 수직의 표면들은 검은색 혹은 짙은 회색으로 변합니다. 이 사진은 눈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사진입니다. 실제 현실에선 (눈이 내리지 않는다면) 대단히 어수선하게 보일 공간입니다. 먼지를 뒤집어쓴 자동차의 차체와 유리창, 뒤로 보이는 회색빛 아파트와 전봇대와 앙상한 나뭇가지들, 심지어 오른쪽엔 쓰레기통도 보입니다. 가장 강렬한 색인 빨강이 등장했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어지러운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빨간 자동차와 빨간 신호등, 그리고… 그랬을 장면(사진)이 오직 딱 한 가지 변수인 눈 덕분에 상쾌하고 난이도 높은 구성으로 변했습니다. 아래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 두 대는 세차가 깨끗하게 된 상태였다고 해도 눈이 없다면 저렇게 등장시키는 것은 어색합니다. 지금은 쌓인 눈의 질감을 동반한 흰색의 면 역할을 합니다. 위에서 드리우고 있는 공룡의 이빨 같은 나뭇잎과 함께 프레임 속 프레임을 형성해서 빨간 우산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온통 하얗게 된 산과 들에서 찍은 눈 풍경사진보다 도시에서 찍은 눈 풍경이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이 사진에서 빨강은 몇 개나 등장할까요? 김용태님은 눈썰미와 상상력이 좋은 분입니다. 이 사진에 대한 사연을 이렇게 보내왔습니다. “아이가 유별나게 눈을 좋아합니다. 워낙 많은 눈이 내리는지라 멀리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두어 시간 눈을 맞으며 놀았습니다. 잠시 몸을 녹이고 있었는데 빨간색 자동차 후미등과 멀리 신호등의 빨간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옆으로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사람의 모자로 쓰라고 재활용 쓰레기통을 뒤져 빨간색 대야를 주워다 드렸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와 자리를 잡고 기다렸습니다. 빨간색 차림의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셔터 누르기를 반복하다 이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내린 눈 때문에 왼쪽의 눈사람 모자는 빨강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사연을 읽고 나니 그제야 빨간 대야 모자를 쓴 눈사람의 머리가 쑥 떠올랐습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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