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18 11:02
수정 : 2010.11.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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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상해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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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스페셜] 사진마을/
이달의 사진
한겨레가 뽑은 이달의 독자사진에 안병선(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씨와 이수진(서울 마포구 창전동)씨의 사진이 선정되었습니다. 두 분께 한겨레가 마련한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이수진 ‘상해 뒷모습’>
1장 속에 수백 장 담겨
단편소설 1편 고스란히
<안병선 ‘꼭꼭 숨어라…’>
60년대 흑백 사진처럼
상상력과 즐거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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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선 ‘꼭꼭 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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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문 만들어뒀다는 착각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안병선님의 숨바꼭질사진은 컬러로 재현해낸 1960년대 흑백사진처럼 보입니다. 사진의 내용은 김기찬 선생의 골목에 등장하는 배경이나 아이들과 흡사합니다만 컬러라서 그렇게 보입니다. 술래가 나무에 기대어 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우고 나면 숨어 있을 아이들을 찾으러 뛰어갈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술래의 눈을 피해 구석진 곳에 숨어 있어야 합니다.
빛과 그늘을 잘 활용한 사진입니다. 빛이 없으면 찍히질 않으니 모든 사진은 빛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그늘까지 같이 등장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벽에 그려둔 그림이 이 사진에서 가장 큰 구성요소입니다. 큰 나무, 술래, 그리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립니다.
떨어진 꽃잎은 (그림 속의) 풀밭으로 떨어지고 실제 화분과 장독대로 떨어집니다. 하늘은 진짜처럼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몸을 숨기려고 하는 출입구가 오히려 더 생경하게 보입니다. 벽화 속 세상이란 것을 잘 알면서도 하늘에 문을 만들어뒀다는 착각이 듭니다.
온라인 사진마을에서 이 사진을 본 반달이아빠님은 “아이들이 그늘에 가려서 좀 아쉽다”라고 했습니다. 일부 동의합니다. 역광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의 얼굴이 보여서 더 생동감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숨바꼭질을 하는 입장이니 술래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그늘에 있어야 더 좋지 않을까요? 벽화 속 나무와 술래에게 드리워진 그림자와 전깃줄의 그림자가 이 공간을 현실처럼 보이게 한 장치였습니다. 동화 같은 상상력과 시각적 즐거움을 함께 전해준 참 좋은 사진입니다.
안병선님의 설명입니다.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로 유명해진 청주시 수암골 초입입니다. 청주 충북환경운동연합 내의 육아 모임에서 10월의 멋진 날씨가 아쉬워 찾아간 곳이었지요. 수암골 초입에 숨바꼭질하는 아이가 있더라구요. 아이들에게 얼른 숨으라고 했더니 10명도 넘는 아이들 중에서 저희 딸과 저희 딸을 친언니처럼 따르는 아이 둘이서만 문 옆에 얼른 숨더라구요. 손까지 가려 숨었지만 금방 찾겠죠?”
발견이 실력입니다.
정작 눈길 끄는 건 뒷짐 진 손
‘상해 뒷모습’- 한 시간 정도만 쳐다볼 시간이 있다면 단편소설 한 편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사진입니다. 도시, 옛 건물과 새 건물, 간판, 비가 내려서 표면이 반사되는 도로가 있습니다. 건물과 보도블록의 소실점들이 만나는 곳, 사진의 한가운데이자 사진에 등장한 모든 요소의 중심인 이곳에 한 남자가 있습니다. 제복을 입었고 모자를 썼고 완장을 찼습니다. 권위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 사진은 이 남자를 찍은 사진이 아니었습니다. 제복과 완장에도 불구하고 뒷짐 진 손이 시선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 종착점엔 차가 든 유리병이 들려 있습니다. 유리병이 자꾸 국화꽃 한 송이로 보입니다. 사진을 찍은 이수진님이 보고 싶었던 것,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바로 손에 든 유리병입니다.
사진 속의 남자는 아침에 출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병 속엔 차가 가득히 들어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걸음걸이는 차분하지만 그것으로 직업과 성격을 규정할 순 없겠고 다만 퇴근 무렵땐 저 유리병이 비어있을 것이란 것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단한 하루를 달래줄 감로수라고 할까요. 일상을 위로할 한 송이 국화꽃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지난 6월 상하이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처음 도착한 날엔 온몸이 타버릴 만큼 햇볕이 뜨거웠는데 밤사이 흠뻑 비가 다녀갔네요. 명동처럼 화려하고 시끄러운 거리였는데 이른 아침엔 조용하고 말끔한 모습입니다. 앞에 가던 아저씨…. 뭐하시는 분일까요. 돈도 잃어버리고 나름대로 곡절 많은 여행이었는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으로 돌아오니 그때가 너무 그립습니다.^^”
여행지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은 다음에 어느 한 장을 골라냈을 때 그 한 장은 여행에서 느낀 모든 상념을 대표합니다. ‘상해 뒷모습’은 내용적으로는 조화 속의 부조화를 보여주고 외형적으로는 기존질서에 강력히 대응하는 모양을 가진 사진입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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