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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18 10:35 수정 : 2010.11.18 10:35

소브린 힐을 방문해 선조들이 금광 광부로 일했던 채굴현장을 둘러본 중국인들이 터널을 나오고 있다.성한표

[하니스페셜] 호주 한겨레 포토워크숍/

[성한표 전 한겨레 논설주간 특별 참가기]

사진 실력만으로는 기초반이 딱이었다 그러나 참 궁금했다, 포토스토리가떠나기 전에는 꿈이 컸다 하지만 이내 깨달았다, 불가능이라는 것을그래도 건졌다, ‘남십자성의 피’의 진실을 또 허점을 크게 보는 눈도 얻었다

‘한겨레포토워크숍-호주’. 단번에 저를 사로잡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겨레’라면 믿을 수 있었던 거죠.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지 1년이 채 안 되는 저에게 ‘포토’라는 말 자체가 매우 친숙하게 들렸습니다. ‘워크숍’에서는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호주라니…. 제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가 호주였습니다.

원주민 일상 담고 싶었는데

스토리반과 기초반 중, 저는 스토리반에 신청했습니다. 사진 실력으로 말하면 기초반이 딱이었죠. 그러나 사진으로 어떻게 스토리를 만드는지가 참 궁금했고, 세상을 글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고 싶었습니다.


워크숍 기간은 지난 10월20일부터 25일까지 며칠에 불과했지만, 사진에 관해 지난 1년 가까이 배웠던 것보다 훨씬 많이 배웠습니다. 그 중 호주에서 온전히 보낸 날은 닷새였는데 첫 사흘 동안은 일행이 함께, 멜번을 중심으로 유명한 관광지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나머지 이틀은 각자 자신만의 스토리 사진을 만드는 자유시간이었습니다. 낮에 찍은 사진에 대해 강사인 전문 사진가들의 리뷰를 받고 숙소로 돌아오면 밤 12시. 매일 저녁 9시에 시작된 리뷰는 사진 10장을 골라 스토리를 만들어, 워크숍 참가자들 앞에서 설명하고, 강사들의 비평을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호주로 떠나기 전에, 백인들에 밀려 아메리칸 인디언과 같은 신세가 된 호주의 원주민(애버리진)을 만나 그들의 일상, 또는 하루 생활을 카메라에 담았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워크숍 참가자들을 위한 사전강의 시간에 슬라이드로 감상한 포토스토리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미식 사진가의 ‘희망을 노래하다’라는 작품집이었는데, 아프리카 어느 마을 어린이 합창단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방문하는 낯선 땅에서, 단 며칠 사이에 이야기가 될 만한 원주민 후손을 찾아내어 10장의 스토리 사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보다 훨씬 사진 경험이 많고, 워크숍에도 여러 차례 참가했던 분들이 왜 호주의 색깔이나 휴일 표정, 두 사람이 걷거나 앉아 있는 모습 등 비교적 단순한 주제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중국인 보호구역에 끌려

하지만 나는 원주민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호주를 배경으로 하는 본격적인 포토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의 눈에 띈 것이 워크숍 일정 첫날에 방문한 소브린 힐의 중국인 보호구역, 곧 중국인을 격리시켜 거주케 했던 지역이었습니다. ‘소브린 힐’은 1970년에 설립된 야외 역사박물관입니다. 골드러시를 이뤘던 1850년대의 금광마을을 우리나라의 민속촌처럼 재현한 곳입니다.

소브린 힐의 입구 표지판에는 큰 글자로 ‘Blood on the Southern Cross(남십자성의 피)’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현지 가이드에게 소브린 힐과 피가 무슨 관계냐고 물었지만, 가이드는 별 것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소브린 힐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장에 들어갔습니다. 교육장 복도 벽에 중국인 광부들이 보호구역에 격리되어 살았다는 설명문이 붙어 있었죠. 중국인 보호구역을 재현해 전시한 곳을 찾았습니다. 당시 광부들의 주거가 같은 시기 돼지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소브린 힐을 둘러볼 때만 해도 중국인 보호구역을 이번 워크숍의 과제물로 제출할 포토스토리의 주제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오면 보호구역 이야기를 써볼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 사진 10장을 가려내면서 150년 전 보호구역에 살았던 중국인과 지금 멜번의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부유한 중국인들을 대비시키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버린 힐을 포토스토리의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뜻밖에 쉽게 풀려버린 ‘의문’

처음에는 소브린 힐의 중국인 보호구역 사진을 5장 내외로, 그리고 멜번의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중국인 사진을 5장 내외로 하여 스토리를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브린 힐의 중국인 보호구역에 시선을 집중하기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150년의 세월을 건너 뛴 대화’라는 주제로, 150년 전 호주로 건너 온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했던 금광과 비참한 삶의 현장을 오늘의 중국인들이 둘러보는 사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 계획에 따라 워크숍 마지막 날인 25일 이른 아침 소브린 힐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소브린 힐은 멜번에서 기차로 1시간45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중국인 사진도 찍고, ‘남십자성의 피’에 대해 알아보고도 싶었습니다.

그런데 첫날 가졌던 ‘피’에 관한 의문은 뜻밖에 쉽게 풀렸습니다. 첫날 단체 관광 때는 탐방 계획에 들어 있지 않았던, 소브린 힐 옆의 금 박물관에서 ‘남십자성의 피’라는 제목의 영화를 홍보하는 책자를 팔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영화가 ‘학살의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상영된다고 합니다.

골드러시 당시 부패한 영국 정부 광산당국의 횡포와 주로 범죄자들로 구성된 경찰의 폭력으로 고통을 당하던 광부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폭동은 결국 영국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고 합니다.

22명이 죽고 나머지는 반역죄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폭동 당시 광부들은 영국 국기가 아닌, 남십자성을 상징하는 흰색 십자와 별이 푸른 바탕에 그려진, 새로운 깃발을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폭동이 진압되던 날 밤 광부들의 새 깃발도 피로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담아 ‘남십자성의 피’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소브린 힐의 별칭이 되었습니다.

학습효과는 천천히 천천히

호주 워크숍을 계기로 사진을 보는 저의 안목이 좀 높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제가 찍었던 사진들, 심지어 호주에서, 소브린 힐에 다시 가서 찍은 사진들도 지금 제 눈에 허점이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소브린 힐의 지하 금광과 보호구역을 둘러보는 중국인 관광객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바짝 가까이 다가가 생생한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나중에 서울에 와서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니 참으로 밋밋한 사진이었습니다. 소브린 힐에 있을 때 이런 안목을 가졌다면, 훨씬 좋은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그렇지만 학습의 효과는 이와 같이 천천히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론인/ hp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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