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15 22:20
수정 : 2010.06.15 22:32
[하니스페셜] 제1회 생물번개
15일 아침 출근시간, 서울 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에서 9호선으로 옮겨 타는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다가 “사람들만 단조롭게 너무 많구나”하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지난달 29~30일 경북 봉화에서 있었던 생물다양성 보전 탐사작전(바이오블리츠)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번 탐사작전에 영상 기자로 참여해 참가자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다른 촬영 때보다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어떻게 앵글을 잡아도 참가자들이 벌이는 활동이 문수산 자락의 녹음에 녹아들었던 것이 하나의 이유였지요. 그러나 화면의 청량감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생명체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돌아왔다는 일종의 안도감이 바탕에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도시를 벗어나 교외로 떠난 경험은 적지 않지만, 그 때 지나치는 풀은 그냥 ‘풀’이었고 날아드는 벌레는 뭉뚱그려 ‘벌레’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이오블리츠에서는 전문가들과 동행해 그들에게 렌즈를 들이대었고, ‘풀’과 ‘벌레’의 각각의 종이 구체적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심결에 지나쳤을 새소리는 우리를 경계하는 산비둘기의 외침이었고, 분주한 날벌레의 움직임은 애벌레의 집을 짓는 별쌍살벌(말벌과)의 모성이었습니다.
뭇 생명들의 이런 구체적인 삶은 야생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이번 캠프의 전문가 강연에서 한 가지 인상적인 대목이 ‘개미들의 패싸움’에 대한 류동표 교수의 설명이었습니다. 개미 무리 사이에는 먹잇감 등을 두고 종종 싸움이 벌어지는데 그 뒤에는 시체가 즐비한 살풍경이 연출되곤 한다고 합니다. 류 교수는 “도심의 평범한 길에서도 보도 위의 개미와 보도 아래 개미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잔해를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수많은 종들의 치열한 삶이 인식 속으로, 앵글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금강송, 신갈나무, 애꽃노린재, 모데미풀, 쇠살모사…. 이번 24시간 탐사작전을 통해 937종의 생명이 확인됐습니다. 안도감은 바로 그들과 함께 자연을 구성하고 있음을 느끼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다른 종에 대한 관심 따위는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것이 도시의 삶입니다. 그러나 지구의 생물종 다양성을 위협하는 종은 바로 인간이기에 그들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는 것은 우리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인지도 모릅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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