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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15 21:57 수정 : 2010.06.15 21:57

“새로운 곳·사람 만나 세상에 대한 애정 생겨”

[하니스페셜] 생활사진가 고수 박진희 씨
“어느날 골목길 느낌 이끌려
눈·귀동냥으로 무작정 찍어”

2005년 가을 어느 날 대학로에서 인사동까지 걸어오다가 어떤 “공허하면서도 묘하게 따뜻한” 골목길에서 갑자기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그날 이전까지 박진희(35)씨는 사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2006년 1월 필름카메라를 구입했고 동호회에 들어서 귀동냥, 눈동냥으로 배우면서 무턱대고 찍기 시작했다네요.

강사 얘기 놔버렸더니 홀가분

-뭘 찍었습니까?

=길거리에서 마주친 것들, 그러니까 화분, 버려진 인형 등, 눈에 걸리는 것을 뭐든지 찍었습니다. 크로핑해서 부분만 찍는 것이 좋았습니다.

-사진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괜히 슬퍼지더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전체적으로 어둡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렇지만 저는 사진을 찍으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직전까지 개인적으로 방황하고 있었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세상을 좀 더 주의 깊게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세상에 대한 애정이 생겼습니다. 사진강의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훌륭한 강사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강사들의 이야기들을 놔버렸더니 그때부터 홀가분해졌습니다.


박씨는 사진찍기를 통해서 긍정적으로 자아를 치유하는 과정을 겪은 것입니다. 요즘 사진을 통한 심리치료가 이야기되곤 하는데 박씨의 경우엔 혼자서 깜깜한 터널을 지나온 셈입니다.

지면에 소개하는 사진은 박씨가 최근에 작업중인 장노출사진입니다. 4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6장씩, 보름 동안 90장을 찍어 합성한 사진입니다. 꽃병의 꽃이 시들 때까지 찍었습니다. 박진희씨는 “피었을 땐 아름답지만 지기 시작하면 보기 싫은 것이 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름 동안의 과정을 모아두었더니 지고 나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라고 밝힙니다. 주변에서 어떤 작가와 유사해 보인다는 소릴 하더라고 했습니다. 찾아보니 그런 사람이 있더라는군요. “따라한 것도 아닌데 뭐 어때요?”

자신도 모르게 치유가 된 사진

박진희 씨

노출시간을 길게 주는 장노출기법이 몇 사진가만의 고유한 기법은 아닙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렇게 찍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뭘 찍느냐, 뭘 표현하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거나 개인전을 하고 싶은 생각은?

=그런 것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진을 보내주는 일이 더 좋습니다. 맘에 드는 것을 열댓 장 골라서 카드로 만들고 손 글씨를 써서 친구들, 아는 언니, 오빠들에게 보냅니다.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살고 있는 친구들, 이름 대신 ‘아무개 엄마’로 불리는 그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편지를 보냈더니 “울컥했다”는 손 편지 답장이 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할 겁니다.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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