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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13 16:47 수정 : 2010.05.14 08:57

운명처럼 다가온 내 음악의 8할, 형이 짱

[하니스페셜 : 스페셜 콘텐츠] 스페셜 초이스





“결국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형’
음악을 좋아하던 형의 나비효과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죠
형에게 김현철의 ‘형’을 바쳐요
“내가 짱”이라고 여기던 지난날을 반성합니다”

음악을 좋아하게 된 명확한 계기나 시점이 존재할 리 없죠. 하지만 애써 기억을 복원하면 놀랍게도 다섯살 많은 친형이 나타나요. 오늘날 형에게 음악이란 오직 휴대전화 벨소리와 통화연결음의 최신가요뿐임을 상기하면 놀라움은 더 커지지만, 분명 ‘초딩’ 시절 내 음악 입문 8할은 형이었어요.

한창 팝 음악이 유행하던 시절, 형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에이스 오브 베이스의 ‘더 사인’을 기억해요. 형의 시디로 음악을 들었고, 잡지 <지구촌영상음악>의 부록 비디오테이프로 뮤직비디오를 봤죠.

신해철 곡 배껴 낸 숙제

가요도 있었어요. 형의 공일오비 2집 시디는 동시대에 음미했던 많지 않은 90년대 초중반 가요였죠(형은 선구자여서 당시에도 시디만 취급했음).


<내일은 늦으리(’92)> 수록곡 ‘더 늦기 전에’의 가사에는 위엄이 서려 있었어요. 신해철은 확실히 난 사람이었죠. 국민학교 3학년 국어 시간에 그 가사(어린 시절에 뛰놀던 정든 냇물은 회색거품을 가득 싣고서 흘러가고/ 공장 굴뚝에 자욱한 연기 속에서 내일의 꿈이 흐린 하늘로 흩어지네)를 인용해 과제를 내고 칭찬을 받았지만, 진솔한 아이였던 나는 곧바로 가사임을 실토해 선생님을 실망시키고 말았어요.

직접 테이프를 사기도 했어요. 솔리드의 ‘어둠이 잊혀지기 전에’는 ‘레알’ 아르앤비였죠. 도입부 비트박스가 강렬했던 듀스의 ‘나를 돌아봐’는 테이프를 3700원에 사서 집으로 오던 중 동네 형들에게 걸려 750원을 ‘삥 뜯긴’ 추억을 동반해요. 사실 싸우면 내가 이겼겠지만 나는 간디를 존경하던 비폭력 신사였으니까요.

모노의 ‘넌 언제나’는 상큼한 멜로디와 보컬 김보희의 수려한 외모로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에이치오티에 맞서기 위해 하나 더 많은 6명으로 결성했다는 젝스키스를 이상한 반골 심리로 좋아하며 그들의 ‘연정’을 따라부르던 ‘중딩’ 시절 나를 떠올리면, 2등을 보듬는 내 성향이 그때 비롯됐음을 확신해요.

2등 보듬는 내 성향의 뿌리

드디어 윤종신. 아직도 이별에 관한한 그보다 가사를 잘 쓰는 대한민국인은 없다고 굳게 믿는 나는, 1996년 ‘환생’의 코러스를 따라 흥얼거리며 그렇게 어른인 척 놀았어요. 그땐 <우(愚)>가 눈물 쏙 빼는 서사 작품인줄 몰랐죠. 군대에서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뒤에야 10년 만에 앨범을 다시 집었고, 뒤집어쓴 모포 속에서 ‘아침’, ‘일년’, ‘오늘’, ‘바보의 결혼’이 가요 사상 가장 아름답고 서글픈 ‘연애 패배주의 4연타’임을 아프게 깨달았어요.

진부하지만 나를 키운 것들

진부하지만 이 노래들이 나를 키웠어요.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한다는데, 이제는 유튜브와 엠피3가 있으니 다시 못 만날 일은 없어 다행이에요. 이렇게 나는 음악과의 끈을 미세하지만 끈질기게 붙잡아왔고, 그중 흑인음악에 좀 더 빠져들었어요. 그리고 힙합 책도 몇권 내면서, 그렇게 살아오고 있죠.

결국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형’이에요. 음악을 좋아하고 시디를 샀던 형의 나비효과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죠. “내가 짱”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형에게 김현철의 ‘형’을 바쳐요. 형이 짱이니까요.

글 김봉현 대중음악평론가·100비트 필진

일러스트 김양수 만화가· 100비트 필진

■ 운영자의 말

음악과의 첫 ‘키스’와 그후
100비트 필진 24명의 고백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나는 어쩌다 공부를 멈추고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나’는 ‘100비트’ 창간 기획입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나는 어쩌다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를 살짝 바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기이한 사랑’ 얘기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음악의 블랙홀에 빠져들어 급기야 지금은 비평가로 살아가고 있는 ‘100비트’ 필진 24명이 첫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지난달 5일 첫 테이프를 끊은 ‘형이 짱이다’는 김봉현 필자의 고백입니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그가 직업으로써 음악평론가의 길을 택하기까지 자양분이 된 노래들과 그 사연이 발랄하면서도 진솔한 문체 속에 녹아 있습니다. 3만이 넘는 폭발적인 조회수를 불러왔습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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