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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1.03 11:24 수정 : 2011.11.03 11:30

초기 배낭족에겐, 적은 돈으로 어떻게 오래 돌아다닐 것인가가 늘 숙제였다.

[매거진 esc] 김형렬의 트래블 기어

‘배낭족’이란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박경우라는 여행가가 1981년 펴낸 <배낭족-한국 대학생 동남아 무전여행기>란 책에서 시작된 말이다. 책에 영감을 받은 일단의 젊은이들이 자유로운 해외여행 시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 88올림픽 이듬해부터 누구나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해 봄 필자는 남대문의 한 등산용품 가게에서 파란색 로우(Lowe) 배낭을 구입하였다. 박경우의 길을 따라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배낭여행의 길을 걸어갔다. 그들은 자유로운 영혼의 선각자가 되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의 영화감독 이규형을 시작으로,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개그맨 전유성, ‘바람의 딸’ 한비야 그리고 요즘 주가를 날리고 있는 ‘나는 꼼수다’의 김어준 총수까지 90년대 배낭여행 문화의 세례 속에 셀레브리티 반열에 올랐다.

그 시절 다 그랬듯이 배낭족도 가난했다. 소득도 높지 않았던 시절 대개 학생이었던 여행자들이 넉넉했을 리 있겠는가? 그래도 여행자 정신만은 치열해서 어떻게 하면 적은 돈으로 오래 돌아다닐 수 있을지가 숙제였다. 싼 숙소, 양 많이 주는 식당, 공짜 지하철 타는 요령, 무료 박물관 정보가 늘 이 입 저 입으로 건너다녔다. 두세달쯤 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으로 들어오는 배낭족들을 보면, 서바이벌 게임에서 생환한 용사들 같았다.

2000년 이후 인터넷 여행 사이트를 중심으로 ‘트렁크족’이란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를 벗어나면서 한국 경제가 일취월장하는 때를 맞추어 여행자 문화가 드높아지기(?) 시작했다. 배낭을 메고 외국을 다니는 것이 왠지 ‘구려 보이고 없어 보인다’고 했다. 바퀴 달린 트렁크를 끌면서 선글라스 쓰고 화사한 패션을 갖추고 편하게 다니고 싶어했다. 해외여행을 위한 공항패션이란 것도 등장했다. 트렁크족에게 중요한 것은 맛집과 쇼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먹거리를 즐기고,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렵거나 더 싸게 살 수 있는 명품 쇼핑의 기회를 찾는다. 또 5성급 부티크 호텔이나 개인 수영장을 갖춘 풀 빌라에 목숨 거는(?) 언니들이 트렁크족을 리드하는 것도, 남성 중심의 배낭족과는 또다른 모습이다.

다시 10년이 지나자 이제는 ‘하이브리드족’이 등장하는 것 같다. 짐을 무엇에 담아 가지고 다니는지는 구애받지 않는다. 한 손엔 트렁크를 끌고 등에는 배낭도 진다. 배낭 자체도, 멜 수 있으면서 바퀴까지 달린 모델이 나왔고 디자인도 예뻐졌다. 여행 방법도 항공권은 인터넷에서 비교 예약을 하고, 숙소는 호스텔·게스트하우스보다는 경제성 있는 호텔을 추구한다. 외국 문화를 경제적이고 실속있게 즐기기 위한 정보를 찾는 데도 부지런하다. 여행의 모습도 시대 변화에 발맞춰 시시때때로 변해간다.

글·사진 호텔자바 이사 www.hotelja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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