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30 09:39
수정 : 2010.09.30 09:39
[매거진 esc] 곰사장의 망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10대를 보낸 제주도는 대중문화의 변방이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제대로 된 음반 가게가 없었기에 음악 잡지의 글을 보고 음악에 대해 상상해야 했고, 개봉하는 영화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책에 나온 영화에 대해 상상해야 했다. 극심한 욕구 불만에 시달렸던 것이 당연하다. 그때 구원을 해준 것이 인디 음악이었다. 그것이 나에게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뭐가 없으면 스스로 만들면 된다는 모델을 선사했다. 그에 힘입어 성당 같은 곳에서 연주를 배운 친구들 중에 록 음악을 좋아하는 애들을 만나 밴드를 만들게 되었고 제주도에 하나밖에 없는 클럽에서 공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뿐, 내 마음속에서도 제주는 어디까지나 변방이었을 따름이다. 살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뭘 하려고 하면 도무지 할 수가 없는 이런 좁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대학에 가게 되었고, 제주를 떠나게 되었다.
10년이 지났다. 서울 홍대에 있는 인디 레이블의 사장이 된 나는 일주일 전, 소속 팀 중 하나가 ‘부스뮤직’이라는 인디 레이블의 초청을 받아 제주를 찾게 되었다. 부스뮤직은 올해부터 ‘부스의 친구들’이라는 시리즈 공연을 통해 서울 지역의 인디 밴드들을 제주에 선보이고 있다. 매달 항공료를 비롯하여 밴드의 체류에 들어가는 비용을 다 부담해준다는 조건이라서, 입장 수입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물어보니 심지어 무료 공연, 국고의 지원이 있나 했더니만 그것도 없고, 순전히 자기 부담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었다.
하지만 공연 당일, 공연장에 꽉 찬 사람들과 정말 오랜만에 광적인 공연 분위기를 느꼈다. 뒤풀이에서 들은 그 ‘부스뮤직’의 비전은 우선 300명 정도의 제주 지역 팬들을 모두 동원할 수 있는 공연을 정기적으로 하게 하는 한편, 한국 인디 음악의 허브로 제주 지역을 부상시켜 페스티벌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이렇게 제주에서 인디 음악신이 형성되기 시작하면 한국의 어떤 지역에서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현재 홍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한국 인디 음악의 양과 폭이 커지고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리고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곳에 분명히 무엇인가 생겨나고 있었다.
물론 잘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늘 이런 식이었다. 뭔가 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뭘 만들기 시작하나 잘되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하고, 언젠가는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러다가 결국엔 망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절망이 거듭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이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버린다. 그러기에 제주에서 서울까지 한 줌의 인디 음악 사업 종사자들이 한국 음악 시장의 2%를 바라보며 음반을 내고, 300명밖에 되지 않는 팬들을 모으기 위해 공연을 한다. 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로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끝〉
곰사장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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