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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09 09:43 수정 : 2010.09.09 09:43

[매거진 esc] 곰사장의 망해도 어쩔 수 없다

만화 〈아즈망가 대왕〉 수학여행을 앞두고 잔뜩 기대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에게 담임 선생인 유카리가 겁을 준다. “노는 걸 우습게 보지 마라. 이 중에 몇 명은 후회가 남는 수학여행이 되고 말걸.” 뼛속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살면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필연적인 행위다 보니,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하면서 살기가 쉽질 않다. 하지만 그냥 넋 놓고 있다 보면 늘 욕구 불만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뭔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노는 것을 우습게 보는 경향의 기원은, 지인의 얘기를 빌리자면, 쉬는 것과 노는 것을 착각하는 데 있다.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나에게 어른들은 늘 그만 ‘놀고’ 공부하라 꾸짖기 일쑤였다. 그저 쉬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이런 식으로 노는 것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고 나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도 그냥 재미있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토끼가 저절로 나무둥치에 부딪쳐 자빠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러고 있는데 재미가 있을 리 없다. 결국에는 인생이란 건 지루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일하기도 빡세 죽을 지경인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노는 것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저 숨을 쉬고 있어도 공기 중에 있는 산소는 자연스럽게 섭취가 된다. 마찬가지로 그냥 내키는 대로 살아도 주위에 널려 있는 어느 정도의 재미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마라토너들이 훈련을 통해 산소를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호흡 기관을 형성하듯, 이것도 단련이 가능하다. 주위에 산적해 있는 이것저것들에서 재미있는 것을 효과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위험한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달리다 보면 아드레날린에 중독된 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바라며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냥 달릴 수밖에 없게 되는 장거리 주자처럼, 현재의 소소한 재미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재미를 바라게 되는 때가 온다. 이렇게 되면 웬만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여기에 투자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엔 놀이로 돈을 벌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놀이가 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혼자 놀며 즐기는 걸 넘어 남을 즐겁게 해야 한다. 성공과 실패의 득실을 따져야 한다. 무엇보다 놀기 위해서 들여야 할 노력의 양이 막대해진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이룬, 기대치 않았던 지난해의 성공으로 승승장구한 뒤 이제 남은 건 급전직하밖에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음에도, 2010년의 9개월 동안 실제로 겪어야 했던 것은 각오한 것 이상이었다. 애초에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내걸고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문제는 생계이고 수익이라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놀이를 일로 만들어야 하는 것. 그렇다. 우리는 놀이가 일이 되는 걸 너무 우습게 보고 있었다. 과연 어디까지나 갈 수 있을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곰사장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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