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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8.25 17:57 수정 : 2010.08.25 17:57

[매거진 esc] 곰사장의 망해도 어쩔 수 없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겠지만, 붕가붕가레코드의 여덟 소속팀 중에 그래도 유독 애정이 가는 팀이 있다면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과 ‘눈뜨고코베인’이다. ‘새롭고 괜찮은 대중음악’이라는 붕가붕가레코드의 지향에 여덟 팀이 다 부합하는 건 사실이지만-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일을 같이 시작하지 않았겠지- 그중에서도 저 두 팀은 새롭다는 측면에서, 최소한 내가 여태까지 들었던 한에선, 세계의 어느 음악인들 중에서도 이들과 같은 음악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특히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이하 ‘불별쏘’). 아직도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사실 얕보고 있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정서부터 우리와 닮아 있었기에 일종의 동종 혐오가 작용했던 것 같다. ‘뭔가 이상하고 웃긴 건 우리가 최고야’라는 쓸데없는 자존심. 하지만 공연을 처음 봤을 때 이런 모든 생각은 사라지고 말았다. 심지어 패배감을 느낄 정도였다. 불별쏘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리더 조 까를로스의 존재감은 실로 혁신적이었다. 상당한 가창력도 놀라웠지만 소심한 듯하면서 대범하고 방어적인 것 같으면서 공격적인 그의 무대 매너는 압도적이었고, 종국에 심벌 스탠드를 껴안고서 혓바닥으로 핥아대는 에로틱한 광경을 연출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저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붕가붕가의 이데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 이데아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회사의 지향이야 앞서 말한 것과 같지만, 내 개인적인 취향은 그와 약간 차이가 있다. 불온한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데 나에게 불온함이란 “내가 바로 불온한 녀석이오”라고 전면에 대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성과 평범함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발등을 찍는 그런 것이다. 고리타분하기 이를 데 없는 내 세계를 효과적으로 전복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불별쏘의 음악에는 그런 불온함이 있다. 쇠락한 기예단원에서 일본풍의 고어 포르노를 거쳐 중년의 위기와 학살극, 그리고 무의미한 말장난을 넘나드는 종잡을 수 없는 정서가 조 까를로스 본인이 ‘Am로 시작해 E로 끝나는 고질적 코드 진행’이라 일컫는 지극히 전형적인 형식의 노래로 풀어진다. 파격과 전형의 경계, 진중함과 경박함의 경계, 그리고 비극과 희극의 경계. 그들의 첫 정규 음반을 우리 회사에서 작업하기로 했을 때, 조 까를로스가 신파에 대한 애증을 담아 음반의 제목을 ‘고질적 신파’라 하겠다 했을 때 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애정을 품고 있었기에 불별쏘의 음반 판매량이 내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처음으로 대중의 정서라는 것에 실망을 느꼈다. 웃기는 건 그저 웃겨야 하고 심각한 것은 그저 심각해야 한다는, 그런데 불별쏘는 밴드 이름이 웃기고 노래도 일단 웃겨 보이니 그저 웃긴 것일 따름이라는, 그래서 한때 웃고 즐기는 고만고만한 키치에 불과하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마주하고 나니, 이래서야 과연 재미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념이다.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해체 공연을 눈앞에 두고 괜히 센티멘털해진 모양이다.

곰사장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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